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물러난 뒤 코오롱그룹은 전문경영인 집단경영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코오롱그룹 오너4세인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 부사장은 언제 지분을 물려받고 경영권을 승계할까?
이 전 회장은 평소 아들이 스스로 경영능력을 입증해야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이 부사장은 코오롱그룹 승계를 놓고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인가?
◆ 코오롱그룹 경영의 중심, 전문경영인 협의체 ‘원앤온리위원회’
코오롱그룹은 현재 전문경영인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그룹의 중심은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원앤온리(One&Only)위원회다. 2018년 말 신설됐다.
위원장은 안병덕 부회장이다. 2018년 초까지 코오롱그룹 지주회사인 코오롱 대표이사를 맡다가 이후 위원회에만 소속돼 있었는데 2020년 11월 인사를 통해 코오롱 대표이사로 3년 만에 복귀했다,
안 부회장은 코오롱그룹 오너일가의 복심이다. 20년가량 회장 비서실과 부속실에 있으면서 이동찬 전 명예회장과
이웅열 전 회장을 보좌했다.
코오롱그룹이
이웅열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임으로 맞이하게 된 오너경영 공백기를 전문경영인체제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그룹이 전문경영인의 협의체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코오롱그룹 홈페이지에서는 원앤온리위원회를 ‘코오롱그룹 경영의 최고 협의기구’라고 표현하며 “코오롱만의 독특하고 차별화한 기업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 계승하고 회사의 경영현안을 조율하여 더 큰 성장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코오롱그룹의 신년사가 원앤온리위원회 이름으로 나오는 점도 코오롱그룹의 전문경영인체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상 다른 재벌들은 오너가 직접 신년사를 내놓는다. 오너가 경영전면에 나서지 않을지라도 그룹의 2인자나 각 CEO가 신년사를 대신한다.
코오롱그룹도 2018년까지만 해도
이웅열 회장이 직접 신년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퇴임 이후에는 신년사가 위원회 명의로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2021년 신년사에서 “‘We Together 2021’을 올해의 ‘코오롱공감’으로 정했다”며 “코오롱 가족 모두는 공공의 문제를 공유하면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을 발휘해 창조적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웅열은 왜 코오롱그룹 전문경영인체제 선택했나
코오롱그룹은 그룹 창립 60여 년의 역사 동안 오너경영인체제를 유지해왔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이 정계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이동찬 회장과
이웅열 회장으로 대를 잇는 과정에서 오너경영의 역사는 계속됐다.
코오롱그룹이 이 역사를 잠시 단절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웅열 전 회장은 2018년 11월 말에 열린 한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퇴임 결심을 굳히게 된 배경을 “내가 따라가는 속도가 늦더라”며 “내가 (그룹의) 변화를 위해 모멘텀을 만들어주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마다 한 번씩 중장기 전략을 보고받는데 수년 전 보고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너무 슬펐다며 젊고 역동적 CEO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코오롱그룹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재계순위 20위권의 대기업집단이었다. 하지만 IMF 위기를 겪으면서 사세가 급격히 줄었다. 2020년 기준 코오롱그룹의 재계 순위는 33위다.
코오롱그룹의 주축인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글로벌은 최근 몇 년 동안 매출이 사실상 정체된 상태이기도 하다.
코오롱그룹이 성장동력 발굴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육성한 코오롱생명과학이라는 회사도 있다. 하지만 퇴행성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사태로 회사는 암흑기를 걷고 있다.
이웅열 전 회장의 말과 코오롱그룹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룹의 혁신동력을 살리려면 본인의 용기 있는 퇴장이 필요했다는 이 전 회장의 말도 수긍할 만하다.
그는 이미 2000년에 한 인터뷰에서 “코오롱처럼 기업이 40년쯤 지속되면 생존 확률이 1.6%밖에 안 된다고 한다”며 “그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도 접목시키고 비료를 주고 환경을 바꿔주고, 새로운 기법을 지닌 관리인도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전 회장 퇴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 전 회장이 퇴임하겠다고 발표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018년 12월4일, 검찰이 이 전 회장을 상속세 탈루 혐의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의 퇴임을 ‘아름다운 퇴진’으로 바라보던 세상 사람들의 시각에도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의 자진사퇴가 결국 검찰수사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이 인보사 사태를 예견하고 코오롱그룹 회장에서 물러났다는 시각도 있다.
식품의약안전처가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의 성분 논란으로 판매중단을 결정한 것은 2019년 3월31일이다. 이 전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약 석 달 만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의 성분이 바뀐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해명했지만 자회사 코오롱티슈진이 2017년 3월에 이미 미국 위탁생산업체에서 통보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해명은 무색해졌다.
이 전 회장이 이미 최고경영자로서 회사의 모든 정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 등도 부각됐고 코오롱그룹의 신뢰도도 추락했다.
이 전 회장은 인보사 사태와 관련해 2020년 7월16일 불구속기소됐다.
◆ 코오롱그룹 경영체제, 이웅열은 무엇이 좋다고 생각하나
코오롱그룹은 다시 오너경영인체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전 회장의 말처럼 코오롱그룹 미래의 경영체제는 열려있다. 코오롱그룹을 이끌어갈 사람을 오너경영인으로 낙점하는가, 아니면 전문경영인체제로 가는가 하는 문제는 이 전 회장이 오래전부터 해온 고민이다.
이 전 회장은 과거 전경련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내 아들에게 코오롱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코오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자칫 자식에게 ‘굴레를 씌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선대 회장을 이어 거대한 그룹의 경영을 맡는다는 것이 부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아버지 뒤에서 그룹 부회장으로 따라다닐 때는 뒤에서 많이 졸았지만 회장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못 졸았다고 한다. 그룹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를 망가뜨리면 안 되는 존재기 때문에 졸지 말아야 하는 의무만 지니지 졸 권리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전 회장은 퇴임의 변을 밝히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라며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라고 말했다.
모두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굴레를 씌우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과 맞닿아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못 박은 적도 없다.
이 전 회장은 2018년 12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규호 전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저보다 훨씬 잘할 것 같다”라며 “뭐든 집중해서 파고드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 코오롱그룹 지배력 ‘0’ 이규호, 지분 승계는 어떻게 되나
코오롱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분 승계 문제다.
코오롱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지주회사 코오롱 밑에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환경에너지 등이 놓여 있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 지분 45.8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규호 부사장은 2020년 5월 기준으로 코오롱그룹 계열사에 지분을 사실상 보유하고 있지 않다.
2018년 초 설립된 리베토코리아의 우선주 15%를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해 11월에 이 지분을 새로 설립된 리베토싱가포르법인에 현물출자하면서 해외법인의 지분 15% 정도만 들고 있다.
리베토싱가포르법인의 규모가 미미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부사장의 코오롱그룹 지배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통상 다른 재벌기업이 자녀들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를 만들고 일감을 몰아줘 덩치를 불린 뒤 배당을 통해 지분 승계의 재원을 마련해주는 방식을 써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코오롱그룹의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이규호 부사장이 이른 시일에 이 전 회장 보유 코오롱 지분을 승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코오롱 지분 관련 증여세만 해도 수백억 원인데 이를 당장 이 부사장이 마련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물론 증여받는 지분을 담보로 증여세를 납부하는 방법이 있다. 그래도 부담이 된다면 국세청의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5년 동안 증여세를 나눠서 내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 부사장은 아버지에게 지분을 언제 어떻게 물려받게 될까?
이 전 회장은 퇴임선언 직후 열린 신문방송인협회 오찬에 참석해 “아들의 경영 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주식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며 “지금도 한 주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만 아버지로서 재산을 물려줄 수 있다고는 덧붙였다.
물론 이 전 회장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언제까지나 이 전 회장의 발언은 발언일 뿐 아들의 경영능력과 별개로 지분 승계를 위한 명분은 나중에라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의 발언에서 이 부사장이 느낄 책임감은 막중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전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동찬 전 회장에게서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코오롱 지분을 대거 증여받았다. 이후 지분 매입과 상속 등을 통해 코오롱그룹 지배력을 늘렸다.
◆ 코오롱글로벌 새 출발한 이규호, 어깨 위 책임 무겁다
“코오롱그룹 4세경영 속도.” “코오롱 4세경영 막 올라.”
코오롱그룹이 2020년 11월26일 실시한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규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코오롱글로벌의 자동차부문을 담당하게 되자 나온 반응이다.
그의 승진이 초고속인 데다 오너4세이다 보니 당연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부사장은 1984년 태어나 2012년에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해 2015년에 상무보로, 2017년에 상무로 승진했다. 2018년에 전무로 승진한 데 이어 다시 2년 만에 부사장 직함까지 달았다.
하지만
이규호 부사장의 게임은 이제부터다. ‘4세경영 본격 속도’라는 평가가 나오고 '초고속 승진'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규호 부사장에게는 이를 차치하고라도 앞으로 경영능력을 보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부사장은
이웅열 전 회장의 퇴임과 동시에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며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았다.
당시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 전무에게 그룹의 경영권을 바로 물려주는 대신 그룹의 핵심사업을 총괄하고 운영하도록 해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향후 그룹을 이끌 때까지 경험과 능력을 충실하게 쌓아가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9년과 2020년 코오롱인더스트리 패션부문의 실적은 좋지 못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9년 패션부문에서 연결기준으로 매출 9729억 원, 영업이익 135억 원을 냈다.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연매출이 1조 원 밑으로 떨어진 것이며 영업이익은 2018년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었다.
2020년 실적은 더욱 심각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1~3분기에 패션부문에서 매출 5814억 원, 영업손실 272억 원을 냈다. 2019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2% 줄었고 적자로 전환했다.
아웃도어시장 침체 장기화, 코로나19 사태 직격탄 등 외부 악재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부사장이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규호 부사장의 경영 성적표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 부사장은 코오롱하우스비전의 커먼타운사업부문이 인적분할돼 2018년 초 설립된 리베토코리아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리베토코리아의 성과를 통해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입증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리베토코리아는 2018년에 매출 12억 원, 영업손실 48억 원을 낸 데 이어 2019년에도 매출 35억 원, 영업손실 46억 원을 보는 등 실적이 좋지 않았다.
이규호 부사장은 2020년 7월 말에 리베토코리아 대표이사에서 슬그머니 물러났다.
이 부사장이 앞으로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을 이끌면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은 BMW를 중심으로 하는 수입차 유통·판매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2020년 실적도 1~3분기 매출 9768억 원, 영업이익 336억 원으로 탄탄하다.
코오롱그룹은 2014년까지만 해도 수입차 딜러사 가운데서 가장 많은 매출을 냈지만 2015년부터는 효성그룹에 뒤처졌다. [채널Who 남희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