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이 100조 원이 넘는 곳간을 두고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시설투자와 인수합병 등 돈 쓸 곳이 많은 데다 높아진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는 배당여력도 마련해야 한다. 큰 돈일수록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재무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 사장. |
1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공급부족이 심화하면서 삼성전자가 해외투자를 진행하기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조만간 반도체 공급부족을 방지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반도체공장을 구축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삼성전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삼성전자의 해외투자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서 반도체공장 설립을 위해 지방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100조 원이 넘는 순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규모 투자는 이미 예고가 된 사안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 38조5천억 원의 시설투자를 집행했는데 2021년 투자를 더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최윤호 사장은 1월 말 콘퍼런스콜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원을 활용해 전략적 시설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중요한 투자를 위해 자금을 아끼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다만 대규모 신규투자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삼성전자가 평택 등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존 투자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고 중장기 물량 확보 역시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해외투자에 신중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중복투자에 따른 공급과잉 가능성이 상존하며 신규라인 물량에 장기 공급계약 체결 가능성이 아직 낮다”고 진단했다.
해외투자가 자칫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재무적 부담만 떠안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투자를 진행한다 해도 최 사장의 재무관리 능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하는 이유다.
설비투자 못지않게 중요한 지출처는 인수합병이다. 최 사장은 1월 말 콘퍼런스콜에서 3년 안에 의미있는 규모의 인수합병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현재 NXP, 인피니온,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이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미 시가총액 35조~60조 원을 넘나드는 기업들인데다 최근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기업가치가 갈수록 오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100조 원이 넘는 순현금을 들고 있다 해도 대규모 설비 투자와 인수합병을 동시에 진행한다면 재무적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 사장으로서는 주주들과 약속한 적극적 배당정책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최 사장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9조8천억 원을 배당하고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안에서 발생하는 잔여재원도 조기 환원을 검토한다는 주주환원정책을 마련했다.
삼성전자의 주주환원정책은 잉여현금흐름(FCF)을 계산할 때 인수합병 비용을 반영하지 않는다. 인수합병을 진행하더라도 9조8천억 원의 배당규모를 유지하고 추가 배당까지 지급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수합병과 배당 양쪽 계획을 정교하게 수립해야 한다.
특히 삼성전자의 배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오너일가의 안정적 지분승계와도 연관이 있어 최 사장이 소홀히 하기 어렵다. 오너 일가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상속지분과 관련해 올해부터 매년 2조 원가량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할 것으로 파악된다.
최 사장은 1963년 태어나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삼성전자 영국법인 관리담당, 구주총괄 경영지원팀, 사업지원팀, 미래전략실 전략1팀, 무선사업부 지원팀, 사업지원TF 등을 거친 재무관리 전문가다.
2020년부터 노희찬 전 사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 사내이사에도 선임돼 마찬가지로 경영지원실장 출신인 이상훈 전 이사회 의장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최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현장경영에 꾸준히 동행하는 등 존재감을 나타내왔다. 최근에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와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만나는 자리에 대표이사가 아닌 최고재무책임자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상황에서 회사 운영이 변화보다 안정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크다. 사업부를 뒷받침하는 관리자이자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최 사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