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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재계 총수들과 인연도 주목된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경제분야에서 적지 않은 공과를 남긴 만큼 재벌 총수들과 좋든 싫든 인연이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부터 1998년 2월까지 14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이 가장 먼저 주목되는 기업인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경우도 김 전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닿았지만 대통령 후보로서 경쟁을 했던 정치적 측면이 더 컸다.
이건희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0월 특별사면복권을 받았다. 이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100억 원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건희 회장이 김영삼 정부 들어 특별사면을 받은 것은 당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1995년 4월 베이징에서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정치권을 겨냥해 작심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 이건희 회장과 상당히 불편한 관계라는 평가가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전 군사정권 때와 달리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낸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권에 정치자금을 대고 특혜를 받아 성장해온 국내 대기업들의 입장에서 김 전 대통령이 부담스러웠을 수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부와 재계의 긴장감을 상당부분 완화하는 화해적 제스처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을 포함해 1997년 개천절 특별사면 복권을 실시한 경제인만 23명에 이르렀다.
김 전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이 취임 초부터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 첫해인 8월 재계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이건희 회장을 독대해 김영삼 정부와 삼성그룹이 밀월관계를 형성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 회장을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관계에 균열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베이징 발언' 이후인 것으로 재계는 관측한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경제분야에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전격 도입해 한국경제를 선진화하는 발판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도 높은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계와 갈등도 적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추진했던 삼성자동차 사업은 이런 갈등이 표면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회장은 1993년 8월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뜻을 보인 뒤 이듬해인 1994년 4월 일본 닛산자동차와 기술제휴 협약서를 체결하며 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진출을 허용했는데 이에 현대차, 대우차, 쌍용차, 기아차 등 기존 자동차회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진출을 허용하긴 했지만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삼성그룹 측에 불리한 요구조건을 달았다.
대표적인 조건이 기존업체의 현직 및 향후 퇴직자 가운데 2년 이상 경과하지 않은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삼성자동차는 이 때문에 국내에서 자동차 기술력을 지닌 인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삼성자동차는 김영삼 정부에 여러 차례 인력 관련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건희 회장의 ‘정치 4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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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김 전 대통령은 베이징 발언 이후 이건희 회장을 방미 수행단 기업인 명단에서 제외하고 삼성자동차 기공식에 고위 공무원을 보내지 않는 등 노골적으로 ‘괘씸죄’를 묻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재계와 길항관계를 형성하며 경제개혁 측면에서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다. 하지만 임기 후반 들어 한보철강 부도를 시발점으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겪으며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 치적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김 전 대통령은 현세에서 모든 공과를 뒤로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건희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의욕적으로 도전했던 자동차 사업에서 실패하면서 ‘삼성이 하면 길이 된다’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랬던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23일 삼성그룹을 대표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한 시대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쥐었던 거물들 사이의 인연과 악연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부질없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