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창규 KT 회장 취임 후 100일간 KT는 요동쳤다. <뉴시스> |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6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황창규 회장은 1월27일 주주총회에서 KT 회장으로 정식으로 선임됐다.
황 회장 취임 이후 100일 동안 KT는 전례없이 요동쳤다. 임원들이 대거 물갈이 됐고 대규모 인력감축이 이뤄졌다. KT 직원 4명 가운데 1명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대대적인 감원이었다.
혼란은 구조조정에서 그치지 않았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지고 자회사의 대출사기 사건도 겪어야 했다. 불법보조금 때문에 영업정지도 당해 30% 시장 점유율이 무너지기도 했다.
황 회장은 이 모든 혼돈을 ‘일등KT로 가는 성장통'으로 보는 듯하다. 이석채 전임 회장은 KT의 탈통신을 주도했다. 그러나 황 회장은 다시 통신시장에서 일등KT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황 회장 취임 100일이 지났는 데도 KT는 여전히 혼란상태다. 일등KT의 비전은 안갯속이다 보니 황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이 묻어나기도 한다. 황 회장은 도대체 KT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 황창규 100일, 혼돈의 KT
황 회장은 KT에 취임하자마자 급여의 30%를 반납하고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황 회장은 “현재 KT는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사활을 걸고 경영정상화에 매진할 것”을 요구했다.
황 회장은 취임 직후 전체 임원의 27%를 줄이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석채 전임 회장의 색깔을 지우기 위한 조처였다. 그뒤에도 황 회장은 수시로 임원을 교체했다. 특히 삼성 출신 외부인사를 영입한 것이 눈에 띈다. KT 관계자는 “워낙 인사가 수시로 이뤄져 누가 나갔는지 모를 정도”라며 “임원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황 회장의 인사정책은 KT를 긴장 분위기를 몰아넣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묻지마 인사’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윤리경영실 경영진단센터장으로 선임된 삼성생명 출신 최성식 전무는 성추행 전력이 문제가 돼 사임했다. 그 바람에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영입했다며 황 회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몰렸다.
황 회장이 비상경영을 선포했지만 각종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월 KTENS의 협력사 직원이 3천억 원이 넘는 대출사기를 저질러 물의를 빚었다. KTENS 직원도 연루된 데다 회사의 인감도장이 사기대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3월 KT 사이트가 해킹을 당해 1천2백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터졌다. 규모도 컸지만 1년 동안 해킹이 계속됐는 데도 몰랐다는 점에서 KT의 허술한 보안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태의 여진이 남은 터라 KT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거셌다. 황 회장은 “KT 전 임직원을 대표해 머리숙여 사죄드린다”며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다.
▲ 황창규 KT 회장은 3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뉴시스> |
황 회장은 대규모 명예퇴직에 대해 KT의 방만한 인력체계를 손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KT 직원 3만2천 명 중 유선통신 인력은 2만여 명이었다. 전체 매출에서 유선사업 매출 비중은 30% 안팎인데 유선사업분야 인력은 60%가 넘는 구조였다. 황 회장은 유선사업 수익성 제고를 위해 인건비를 줄이는 선택을 했다.
이 과정에서 KT 내부는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특히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과정에서 회사가 직원들에게 퇴직을 종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KT 새 노조는 8일 광화문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황창규 회장이 이석채 전 회장 시절의 독선경영으로 역주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KT 새 노조는 회사가 “명퇴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노동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비연고지 발령, 직무 외 영업 등으로 명퇴 거부자들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명예퇴직을 피해간 직원 한 명이 자택에서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KT 새 노조는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과 고민, 그리고 격무에 의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KT는 대규모 명예퇴직 계획을 밝힌 직후 자살방지를 목적으로 본사 옥상을 폐쇄하기도 했다.
KT는 황 회장이 취임하고 100일 동안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 털어낼 것은 다 털어냈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 황 회장이 보여줘야 할 때라는 얘기도 나온다. "황 회장이 KT를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지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 황 회장은 언제 청사진을 내놓나
이석채 전임 회장은 레드오션이 된 통신시장만으로 KT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이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KT와 KTF를 합병해 유선과 무선통신을 통합했다. 그리고 사업확장에 나섰다. 2009년 초 30개였던 계열사는 지난해 말 53개까지 늘어났다. 이른바 탈통신 전략이었다.
탈통신 전략이 추진되면서 BC카드, 렌탈, 부동산, 야구단 등 통신과 무관한 사업들까지 KT의 이름 아래 모이게 됐다. 2010년 스카이라이프와 금호렌터카를 인수했고, 2011년 BC카드를 인수했다. 부동산 개발회사인 KT에스테이트와 부동산자산관리회사 KTAMC를 설립하는 등 자회사로 독립한 회사도 있었다. 재벌식 문어발 확장이라는 비난도 들었고 중소기업 골목상권 침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석채 전임 회장의 이런 탈통신 전략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사업다각화를 통해 KT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는 평가와 이런 전략으로 KT의 안마당인 통신시장에서 KT의 위상만 깎아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 이석채 전 KT 회장은 탈통신을 주창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
하지만 이석채 전임 회장 인사들은 “유선시장은 사양사업이고 무선시장도 이미 포화된 시장이라 결국 탈통신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며 “시너지를 내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반박한다.
황창규 회장은 이런 탈통신 전략을 백지화했다. 그리고 KT를 다시 통신으로 돌려세웠다.
황 회장은 1월27일 회장으로 선임된 임시주주총회 자리에서 “우리의 주력인 통신사업을 다시 일으켜 융합의 영역으로 발전시켜 1등 KT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통신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유사 중복사업을 통폐합하고 계열사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황 회장이 취임 이후 100일 동안 KT가 혼돈의 도가니를 경험한 것은 통신이라는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 사전조처라고 본다. 한 애널리스트는 KT의 대규모 인력감축에 대해 “과거에 통신을 배제한 비통신사업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에 통신을 중심으로 한 사업 포트폴리오에 치중해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KT가 무작정 통신에만 얽매일 수는 없는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무선사업만 해도 이동통신시장을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5:3:2로 분할하고 있는데 이 구도가 쉽게 변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1강 1중 1약 시장 구도가 1강 2약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만큼 이동통신시장에서 KT가 설 자리가 넓지 않다는 시각이다.
황 회장이 일등KT라는 선언적 비전 외에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황 회장이 나아갈 방향은 평소 황 회장이 강조해온 ‘기술융합’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기술융합에 대해 목소리를 높혀왔다. 전문가들은 황 회장이 지식경제부 연구개발전략기획단장으로 있을 때 제시했던 ‘스마토피아(스마트+유토피아)’라는 용어에 주목하고 있다.
스마토피아는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IT융합 등의 개념이 집적된 것으로 최근 화두인 사물인터넷과 유사하다. 황 회장이 앞으로 KT의 유무선 네트워크를 활용해 통신기반의 신사업을 구축해 나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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