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6일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지 100일이 흘렀다.
무노조경영 철폐 선언으로 노사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등 삼성그룹이 시대의 눈높이에 맞게 거듭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3일은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를 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5월6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계와 노동, 시민사회 소통 등의 문제를 놓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로부터 100일이 지난 현재 삼성그룹에서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 영역은 노동분야다. 이 부회장이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한 뒤 이에 부합하는 상징적 일들이 뒤따랐다.
대국민사과 3주 만에 강남역 철탑에서 1년 가까이 고공농성을 벌이던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삼성그룹과 합의를 이루고 내려왔다. 7월 말에는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가 해고노동자를 직접 만나는 등 과거 삼성그룹에서는 생각하기 어렵던 모습이 나타났다.
삼성그룹 노사관계에서 의미 있는 결실도 맺었다. 12일 삼성화재 노사는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다만 아직 삼성그룹에 건전한 노사문화가 완전히 정착됐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삼성화재 단체협약은 대국민사과 이전인 3월부터 진행을 하던 사안이고 대국민사과 이후 노사협상을 시작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직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단협 과정에서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절차를 밟는 등 파열음을 냈다. 심지어 한국노총 산하 삼성전자 노조는 아직 단체교섭을 진행하지도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그룹 노동조합연대는 7월 국회에서 현장사례를 발표하며 “무노조경영 폐기를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노조는 최근 광주사업장의 산재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회사에 날을 세웠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이 약속한 시민사회와 소통도 노력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사과에서 “시민사회는 기업의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며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주요계열사는 시민사회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회사 내부에 소통 창구역할을 할 전담자를 지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회사 행사에 시민단체를 초청하는 등 교류의 폭을 넓혀 이해를 높여가기로 했다.
여전히 삼성그룹이 시민사회와 거리를 좁히는데 소극적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시민사회를 대표해 위원으로 참여한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물러난 지 다섯 달이 되도록 시민사회 몫의 위원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인용 삼성전자 CR담당 사장이 위원에서 물러난 뒤 일주일 만에 성인희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총괄 사장을 선임한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시민사회 인사 중 적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단체가 삼성그룹과 여전히 대립각을 세운 것처럼 시민사회단체 역시 삼성그룹에 거리를 두고 있어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준법감시위를 설치해 온영하고 있고 대국민사과까지 했지만 삼성을 향한 시민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일각에서는 변화를 위한 삼성의 노력이 이 부회장의 재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보여주기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구해 불기소와 수사중단 권고 의견을 이끌어낸 것도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해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에서 가장 먼저 강조됐던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장기적 해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영체계 수립을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방안 등이 추진된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법을 어기는 일이나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아직 경영권 승계 문제에서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승계와 관련한 뇌물혐의로 파기환송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에는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로 받고 있는 검찰수사도 종결되지 않았다.
향후 부친 이건희 회장 유고 때 지분 상속 문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처분 문제 등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남아있는 현안으로 여겨진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