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일정 기간 강경기조를 유지하면서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국의 협조를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오려는 노력을 물밑에서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17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매우 무례한 어조로 폄훼한 것은 몰상식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수석은 북한이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 비공개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을 두고도 “비상식적 행위이며 대북특사 파견 제안의 취지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처사”라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북한을 향한 강한 경고 메시지는 정부 부처에서도 이어졌다.
국방부는 “북한이 실제 군사행동에 나서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고 통일부도 “북측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잇따른 적대적 발언에도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보였지만 적대행위가 본격화한 지 하루만에 강경대응으로 돌아섰다.
앞서 15일 문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기념행사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한반도 운명의 주인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야 할 때”라며 독자적 경제협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는 추가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어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북한의 일방적 태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충성심 경쟁으로 당분간 남북관계 악화는 불가피하다”며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복구하고 서해와 동해에서의 포사격과 미사일 발사 실험 그리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훈련도 재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문 대통령이 상황을 반전할 묘안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대북정책 기조를 강경한 방향으로 선회한 만큼 당분간 강대강의 대치상황은 불가피해 보인다. 북한의 행태를 비판하는 여론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돼 섣불리 대화에 나섰다가는 내부의 반대여론에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벼랑 끝 상황에서 극적 대화국면으로 전환된 사례가 많은 특수성을 지녀왔던 만큼 문 대통령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북한의 거센 도발을 경험한 적이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나흘 만인 2017년 5월14일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잇따라 군사적 긴장을 강화하는 적대행위를 지속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미국 등 주변국과 공조하며 북한에 압박을 이어갔다.
지금처럼 남북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고 당국회담을 열 뜻을 보였고 문 대통령이 이에 호응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적대적 대치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된 셈이다.
북한은 2010년 11월28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일으켰지만 한달 남짓 지난 2011년 1월1일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북관계 복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도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김정은 위원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극적 반전의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희망을 던져준다. 북한이 대화에 나서기 위한 마지막 카드는 아껴두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도발 수위가 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상당기간 남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북한이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한 데서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분간 북한과 냉각기를 가지면서 외교적 역량을 동원해 관계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북관계 회복의 열쇠를 미국과 중국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만큼 문 대통령은 외교력을 동원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한편 북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공을 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이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매체 요미우리는 17일 “북한의 한국을 향한 적대행위는 미국 대선까지 경제제재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북한이 긴장상황을 연출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