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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Who] 대한항공 위기, 몰락한 팬암의 길과 부활한 JAL의 길 기로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20-06-10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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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져있다.

대한항공은 1분기에 영업손실 566억 원을 내며 세 분기 만에 적자로 전환했는데 이보다 더 뼈아픈 것은 현금이 마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는 뜻이다.

대한항공의 1분기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흐름은 –181억 원이다. 분기별로 못해도 5천억 원, 많으면 8천억 원까지 벌어들였는데 사실상 현금에 동이 났다고 볼 수 있다.

대한항공은 임원 급여 50% 삭감, 직원 70%의 6개월 휴직 등을 통해 총 2조2천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나섰지만 앞으로 상황도 종잡기 힘들다.

대한항공은 어떻게 될까?

◆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사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팬암’

팬암은 ‘팬 아메리칸 항공’이라는 항공사의 애칭이다.

항공산업이 막 태동하던 1927년에 설립됐던 회사로 1991년까지 지속한 초기 항공산업의 선구자다. ‘개척자’라는 타이틀이 항상 따라붙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횡단하는 정기노선과 세계일주 정기노선을 최초로 만들었으며 광동체나 제트기 등 크고 빠른 대형 여객기를 최초로 서비스하기도 했다.

항공권 좌석 코드의 비즈니스클래스 고유 코드가 ‘Business’의 앞글자 B가 아닌 C로 명명된 이유도 팬암 때문이며 세계 최초로 IBM과 협력해 컴퓨터 예약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팬암의 영향력은 미디어 곳곳에 남아 있다. 영화 캐치미이프유캔과 블레이드러너, 2001스페이스오딧세이 등에 팬암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최근 사례를 보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에서 스타크인더스트리의 본사로 쓰인 건물이 팬암의 본사 건물이었다.

하지만 팬암은 1970년대부터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보잉 747을 도입해 세계를 선도하는 항공사로 도약하려고 했지만 1973년 중동발 1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유류비 부담이 급증했고 경기까지 침체되면서 팬암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사태로 승객을 확보하지 못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팬암을 더 흔든 것은 바로 개척자 정신이다.

팬암은 1976년 태평양과 북대서양 노선에 보잉747 항공기만 투입하겠다고 나선다. 심지어 개인 수화물 무게가 기준을 초과할 때 추가 요금을 부과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한다.

하지만 생각했던 대로 여객 수요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재정상황도 급격하게 악화한다.

1978년에 5천억 원을 주고 인수한 내셔널항공을 통한 시너지도 생각만큼 나지 않으면서 재정 부담은 더욱 심화하는데 이후 수차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온 힘을 쏟지만 한 번 무너져가는 기업이 다시 서지는 못했다. 결국 1991년 12월 마지막 운항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팬암이 무너진 데는 분명히 외부 작용도 존재하지만 내부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량이 현저하게 저하됐다는 점이 팬암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평가가 많다.

◆ 일본항공(JAL), 일본 최대 규모의 파산기업에서 최단기간 회생기업으로

일본에는 ‘최대 규모의 파산기업’에서 ‘최단기간 회생기업’으로 탈바꿈한 일본항공이라는 항공사도 있다.

흔히 JAL이라고 불리는 일본항공은 몰락에서 재기에 성공한 대표적 항공사다. 1951년 처음 만들어진 뒤 1953년부터 반관반민의 형태로 운영된다.

일본경제 성장기인 1960년대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1972년 날개까지 달았다.

일본 정부가 이른바 ‘항공헌법’으로 불리는 45/47체제를 도입하면서 일본항공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하는데 국제선 노선 운영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그야말로 독주체제를 굳힌다.

1987년 완전 민영화된 뒤에도 한동안 성장하다가 2002년에는 일본에어시스템과 합병하면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항공사로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일본항공에도 곧 위기가 찾아왔다.

세계에서 6번째로 큰 항공사가 됐다고 박수를 친 지 1년 만인 2003년, 일본항공은 우리나라 돈으로 순손실 약 1조500억 원을 내며 사상 최대 적자를 본다. 2008년에도 5년 만의 최대 손실인 7천억 원을 또 보며 휘청댄다.

일본 정부가 일본항공을 살리기 위해 2009년에 긴급 구제금융으로 1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해 2분기에도 순손실 990억 엔을 내며 몰락의 길에 접어든다.

결국 일본항공은 2010년 1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2월에는 일본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돼 자존심을 구긴다. ‘하늘의 일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일본항공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때의 부채는 모두 23조6천억 원이었다.

일본항공이 몰락했던 원인을 살펴보면 팬암과 닮은 점이 많다. 무리한 항공기 도입과 무리한 항공사 인수 등이다.

국영기업의 체질도 문제였다. 민영화된 뒤에도 관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탓에 의원들의 입김을 받아 지방항공에도 마구잡이로 취항하면서 재정부담이 늘어난다.

낙하산인사들도 일본항공을 망친 주범으로 꼽힌다. 민영화 이후 늘어나는 자회사에 일본 전직 관료들이 오면서 오로지 보수랑 연금만 챙기다보니 일본항공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항공은 무너지지 않고 재기에 성공했다.

일본항공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최고경영자로 부임한 사람은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본항공은 경영철학과 목표, 전략도 없는 부실 덩어리 자체”라고 독설을 날리며 체질을 확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다.

위기의식도 높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회사를 망가뜨린 사람들이다” “사실은 지금 직업소개소에 다니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질책한다. 회사 망가뜨린데 너희 책임이 있으니까 감사한줄 알고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이나모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일본항공은 금방 심폐소생한다.

법정관리 돌입 1년4개월 만인 2011년 4월에 법원에 제출했던 회생전략의 3배를 웃도는 영업이익을 냈고 2012년 9월에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재상장해 완벽한 부활에 성공한다.

◆ 대한항공은 ‘대마불사’인가, 오너 리스크도 위기 부추겨

대한항공은 현재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 1조2천억 원이 지원된 만큼 더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대한항공이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특수상황 탓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곪아왔던 문제들이 지금에서야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대한항공 내부적으로는 수 년 전만 하더라도 ‘마케팅이 필요 없다’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표를 팔아 분기마다 현금 7천억~8천억 원을 벌었다. 그만큼 위기의식을 품을 틈이 없었다.

대한항공의 가장 큰 위기는 오너일가에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항공의 수장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현재 경영권 분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분쟁의 상대방은 땅콩회항 사건으로 유명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누나와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놓고 싸우고 있다.

대한항공을 살리기 위해 역량을 모아도 모자한데 경영권 분쟁까지 신경써야 하니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조원태 회장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나모리 회장은 일본항공의 구조조정을 이끌면서 “사업의 목적과 의미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강력한 열망을 마음에 품고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노력을 할 것” “매상을 최대한 늘리고 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일 것” 등을 강조했다고 한다.

공항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 등과 자주 대화하며 경영철학을 설파했고 이런 것들은 현재 모두 ‘JAL 필로소피’, 일본항공의 철학으로 정착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항공에는 이런 문화들이 있는지 돌이켜봐야 할 시점일 수도 있다.

대한항공이 그래도 국적 항공사인데 설마 없어지겠느냐, 정부가 나서지 않겠느냐 라는 마음을 지닌다면 일본항공이 부채를 떠안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채널Who 기자 남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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