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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와 SK케미칼의 5천억 독감백신 전쟁

이승용 기자 romancer@businesspost.co.kr 2015-09-06 09: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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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십자와 SK케미칼의 5천억 독감백신 전쟁  
▲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왼쪽)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녹십자와 SK케미칼이 올해도 어김없이 국내 독감백신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녹십자는 가격 경쟁력과 검증된 안정성을 내세우고 있고 SK케미칼은 신기술 방식의 독감백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독감백신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과열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녹십자가 독감백신사업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자 다른 제약회사들도 독감백신사업에 속속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독감백신시장이 과열되면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치열해지는 국내 독감백신시장

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녹십자와 SK케미칼은 국내 독감백신시장에서 치열한 영업경쟁을 벌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올해 국내 독감백신시장에서 공급량은 최소 2100만 도즈(1회 접종량)로 추산된다.

녹십자가 올해 겨울을 대비해 독감백신을 900만 도즈 생산하고 SK케미칼이 400만 도즈, 일양약품도 200만 도즈를 생산한다. 나머지 제약회사들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독감백신을 600만~1천만 도즈 가량 수입해 판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올해 국내에서 독감백신 수요를 1800만~2천만 도즈 정도로 추산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5천억 원 정도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독감백신을 맞은 사람은 1600만~1800만 명이었고 금액으로 환산하면 4500억 원 가량이었다. 식약처는 올해 홍콩독감과 메르스 사태 등으로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십자와 SK케미칼은 지난해 국내 독감백신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녹십자는 지난해 약 500만 도즈를 판매했으며 SK케미칼은 350만 도즈를 팔았다.

두 회사의 경쟁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케미칼은 세포배양 방식의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를 최근 출시해 홍보에 나섰다.

SK케미칼은 녹십자가 생산하는 유정란배양 방식의 독감백신보다 신기술로 만든 독감백신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녹십자와 SK케미칼의 5천억 독감백신 전쟁  
▲ SK케미칼은 배우 지진희씨를 모델로 세포배양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 홍보에 나섰다.
유정란배양 방식의 독감백신은 항생제에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이상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스카이셀플루는 개의 신장 상피세포에 백신을 주입해서 배양하는 방식으로 생산돼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생산기간도 기존 유정란 방식은 6개 월이 걸리지만 세포배양 방식은 2개 월이면 충분해 독감 대유행(판데믹)시 빠르게 증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SK케미칼은 배우 지진희씨를 홍보모델로 기용해 자녀를 둔 30~40대 여성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녹십자는 이에 맞서 가격 경쟁력과 검증된 품질을 내세우고 있다.

녹십자가 생산하는 유정란배양 방식의 독감백신은 생후 11일째 되는 유정란을 이용한다. 계란 윗부분을 살짝 깨 독감 바이러스를 투입하고 사흘간 배양한다. 바이러스가 대량으로 번식한 계란 속 액체 부분만 추출해 초고속 원심분리기에 넣어 바이러스 입자만 별도로 분리한다. 그뒤 바이러스의 독성을 제거하고 항생제를 넣어 최종 백신을 만든다.

녹십자의 유정란배양 방식 독감백신은 SK케미칼의 세포배양 방식보다 생산원가가 3분의 1 가량 저렴하다. 1회 접종에 3만5천 원가량 하는 독감백신 접종에서 가격은 시장구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녹십자의 유정란배양 방식 독감백신은 대량생산된 지 70년이 넘었을 정도로 안전성도 검증됐다. 미국의 의료전문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은 독감백신의 생산방식은 독감바이러스 예방결과와 무관하다는 논문을 싣기도 했다.

◆ 녹십자, 독감백신으로 재기에 성공

지난해 국내 독감백신시장에서 국산 독감백신은 53%를 차지했다. 올해 국산 독감백신의 비중이 70%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독감백신시장은 녹십자가 독감백신 사업으로 성공하자 다른 제약회사들이 앞다퉈 뛰어들어 공급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녹십자는 동물약품을 제조해 판매하는 수도미생물약품이 전신이다. 녹십자는 설립초기부터 백신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제약회사였다.

녹십자는 1983년 세계 세 번째로 B형간염 백신 '헤파박스'를 개발했다. 녹십자가 개발한 헤파박스 덕분에 전체 국내인구의 13%를 넘던 국내 B형간염 보균율이 급감했다. 헤파박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B형간염백신이 됐다.

녹십자는 헤파박스 덕분에 연매출이 20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성장했다. 녹십자는 1988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백신 '한타박스'를 출시하는 등 백신전문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녹십자와 SK케미칼의 5천억 독감백신 전쟁  
▲ 녹십자는 2006년12월 전남 화순의 백신공장 착공에 들어갔다.<녹십자>
그러나 녹십자는 1990년대 말 일대 혼란을 겪었다. 당시 조응준 녹십자 대표는 녹십자를 '토탈헬스케어'기업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워 사업재편을 실시했다.

조 대표는 백신사업을 유럽계 외국회사에 매각하는 등 녹십자의 전문의약품 비중을 줄이고 일반의약품 비중을 늘렸다. 이를 위해 일반의약품 전문회사인 상아제약과 '레모나'로 유명한 경남제약을 인수했다. 조 대표는 녹십자생명을 설립해 대신생명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녹십자의 이런 변신은 실패로 끝났다. 경남제약과 녹십자생명은 모두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 조 대표는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 뒤 허영섭 창업주의 동생인 허일섭 현 녹십자홀딩스 회장이 녹십자의 경영을 맡았다. 허 회장은 녹십자를 전문의약품 기업으로 다시 돌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녹십자는 2004년 스위스의 제약기업 베르나바이오텍으로부터 백신사업을 다시 사왔다.

녹십자가 재기를 위해 주목했던 것은 독감백신사업이었다. 당시 한국은 독감백신 생산기술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해 ‘독감백신 파동’이 매년 일어났다.

녹십자는 당시 노무현 정부가 '백신주권'을 앞세워 추진했던 국가 독감백신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자로 선정됐다.

녹십자는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화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녹십자는 전라남도 화순에 당시 세계 최대인 5천만 도즈 규모의 백신생산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150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고 전라남도는 화순에 3만 평의 대지 가운데 1만 평을 차후에 매입하는 조건으로 2만 평을 무상으로 50년 동안 임대해 줬다.

녹십자는 경남제약을 팔고 대출을 받아 1200억 원에 이르는 공장건설 자금을 마련했다. 녹십자는 영국계 제약회사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와 기술협약을 맺어 기술력도 확보했다.

정부는 GSK와 녹십자가 합작회사를 설립하길 원했지만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은 백신주권을 내세워 단독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녹십자는 2009년 국내 최초로 자체개발한 독감백신 ‘지씨플루’를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 이어 12번째로 독감백신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나라가 됐다.

녹십자는 정부와 수의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독감백신 공급처를 확보했다. 녹십자의 독감백신 매출은 2009년 생산 첫 해 500억 원에 이르렀다. 그 뒤 녹십자는 조류독감(AI)과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독감백신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 SK케미칼과 일양약품의 도전

녹십자의 이런 성공은 제약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에 따라 일양약품과 SK케미칼도 독감백신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독감백신시장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일양약품은 2009년 충남대학교 서상희 교수가 기술이전해 준 '인플루엔자 백신주 제조 및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백신사업에 뛰어들었다.

  녹십자와 SK케미칼의 5천억 독감백신 전쟁  
▲ SK케미칼은 경북 안동에 연간 약 1억4천만 도즈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백신공장 'L하우스'를 지었다.
일양약품은 충북 음성에 연간 최대 6천만 도즈를 생산하는 독감백신공장을 건설하고 2013년부터 공급에 나섰다. 첫해 37만 도즈를 생산한데 이어 지난해 150만 도즈를 시장에 공급했다.
 
일양약품은 올해 200만 도즈 판매에 도전한다.

그러나 일양약품의 독감백신은 지난해 겨울 식약처로부터 품질미달로 두 달 동안 제조중지 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일양약품은 이미지 추락과 함께 영업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다.

SK케미칼도 2010년부터 독감백신시장에 뛰어들었다.

SK케미칼은 미국의 백신 전문기업인 엑셀러렉스와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2년 2천억 원을 투자해 경북 안동에 국내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로 세포배양 백신공장 '엘하우스'를 완공했다.

엘하우스는 연간 1억5천만 도즈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어 단일생산 규모로 세계 최대다.

◆ 과잉공급 우려 제기

국내 독감백신 생산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잉공급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1년 독감백신업체들이 생산량을 합의한 것을 담합으로 보고 6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 뒤 독감백신의 공급은 매년 수요를 크게 넘어서고 있다. 2012년 660만 도즈가 초과공급된데 이어 지난해도 공급초과물량이 400만 도즈에 이르렀다.

  녹십자와 SK케미칼의 5천억 독감백신 전쟁  
▲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대구 동구보건소에 8천여 명의 노인들이 독감예방 접종을 맞으려고 몰려들었다.
올해도 300만 도즈 이상의 독감백신이 초과공급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있다.


독감백신은 그해가 지나면 유행하는 독감바이러스의 형태가 달라져 폐기처분해야 한다. 제약회사들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 떨이처분으로 재고를 처리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 많은 손실을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독감백신이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 만큼 국가차원에서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식약처는 독감백신 생산을 시장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식약처는 소비자들이 제약회사들의 담합으로 피해를 입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올해 독감백신시장의 경쟁양상이 예년과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가격만이 경쟁력이었던 예년과 달리 올해 영국계 제약회사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4가지 독감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4가 독감백신을 출시했고 SK케미칼도 세포배양방식 독감백신을 출시해 소비자의 선택권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녹십자의 가격경쟁력에 맞서 GSK와 SK케미칼의 고급화 마케팅이 얼마나 성공할지가 변수"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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