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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의 오너경영, 신세계의 미래는?

임수정 기자 imcrystal@businesspost.co.kr 2014-04-29 16: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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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진의 오너경영, 신세계의 미래는?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오너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지분을 완전히 상속받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오너로서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올해 초 신세계그룹의 장기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한 것은 전문경영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너경영체제를 선언한 것이다.

신세계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뒤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전권을 맡기는 체제로 운영돼왔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마라”는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 1997년 신세계그룹이 공식 출범할 때부터 전문경영인들이 그룹을 이끌어가게 했다. 이 회장은 오너이지만 조언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한다.

정용진 부회장은 달랐다. 정 부회장은 1995년 경영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 부회장이 회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2009년 신세계의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르면서 ‘오너 책임경영’의 시대를 열었다. 그동안 신세계그룹을 이끌었던 구학서 신세계 회장은 당시 정 부회장에게 총괄대표이사를 내주고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 정용진의 오너경영과 책임경영

정 부회장은 올해 초 신세계그룹의 장기투자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2009년 부회장이 된 뒤 처음이다. 신세계그룹의 사실상 오너로서 위상을 확실히 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 부회장은 투자계획 발표를 통해 신세계그룹이 향후 10년 동안 총 31조4천억 원을 투자하고 17만 명을 채용하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부문별 투자 규모를 살펴보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12조8천억 원, 쇼핑센터와 온라인 및 해외 사업 13조8천억 원, 기타 브랜드 사업 4조8천억 원이다.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분야인 쇼핑센터와 온라인 및 해외사업은 신세계그룹의 미래성장동력으로 정 부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설 때부터 진두지휘 해온 사업부문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신세계그룹의 경영화두로 책임경영을 내놓았다. 그는 책임경영 선포식에서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 커질 것”이라며 “책임경영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더욱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오너로서 책임경영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 부회장은 책임경영 선포식을 연 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사내이사 사임은 2011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분할 당시부터 논의해 왔던 것”이라며 “각 계열사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문경영인들이 기존사업을, 정 부회장이 신사업을 맡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설명은 궁색해 보인다.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을 때는 빵집 계열사 신세계SVN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였다. 또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해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법원출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는 관측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정 부회장은 등기이사에서 사퇴하면서 올해부터 시행된 등기임원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연봉 5억 원 이상 상장사 등기임원의 경우 연봉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 부회장을 비롯해 오너 일가 대부분은 등기임원이 아니기 때문에 연봉공개를 하지 않았다.

◆ 오너 정용진과 전문경영인 허인철의 불화


신세계그룹에서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불화도 정 부회장 체제가 낳은 또다른 어두운 면이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그룹 내부에서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꼽혔던 허인철 전 이마트 사장과 불화를 겪었다. 결국 허 전 사장은 이마트 사장에서 물러났다. 재계는 허 전 사장의 퇴임을 두고 오너경영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전문경영인의 최후라고 봤다.

허 전 사장은 구학서 회장과 최병렬 전 이마트 사장의 뒤를 잇는 신세계그룹의 간판급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는 1986년 삼성물산에 입사했고 1997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겼다. 경리, 총무, 재경 업무 등을 주로 맡아 재무통으로서 능력을 쌓았다.

허 전 사장은 2006년부터 신세계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아 하이마트, 전자랜드, 월마트 등을 인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11년 신세계를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으로 쪼갠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2012년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 이마트를 이끌게 된다.


허 전 사장이 이마트를 이끈 첫 해인 2013년 이마트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줄지 않았다. 이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연결기준 13조352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6%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7351억 원으로 전년보다 1억 원 늘었다. 반면 경쟁업체인 롯데마트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줄었다.

허 전 사장이 소폭이나마 이마트의 영업이익을 끌어올린 것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정부가 지난해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 유통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고 이에 따라 유통회사들은 대부분 실적이 나빠졌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불똥이 허 전 사장의 발목을 잡았다. 허 전 사장이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소환되면서 정 부회장과 불화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허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이마트 등 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소환됐다. 그는 이 자리에서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내가 맡은 회사와 상관없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했다. 허 전 사장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난 의원들은 애초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던 정 부회장을 국감장으로 불러냈다. 정 부회장은 증인으로 참석해 “이마트 대표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정용진의 오너경영, 신세계의 미래는?  
▲ 지난해 10월 허인철(왼쪽) 이마트 전 사장이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마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허 전 사장는 불성실한 답변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증인으로 소환됐다. <뉴시스>

재계 관계자는 허 전 사장의 이런 태도에 대해 “신세계그룹 정도 되면 대 정부업무가 어느 정도 체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준비가 허술했다”며 “월급사장의 월급에 오너 대신 욕먹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허 전 사장의 태도가 너무 개념없다는 느낌을 줬다”고 말했다. 이런 말은 허 전 사장이 ‘오너는 있으나 사실상 경영하지 않는 체제’에서 전문경영인을 오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 사건의 여파로 허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 정기인사에서 이마트 단독대표에서 영업총괄부문 대표로 밀려났고 결국 사표를 썼다. 정 부회장과 허 전 사장의 갈등은 국정감사를 통해 터졌을 뿐 그 이전부터 잠복돼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허 전 사장은 지난해 3월 이마트 하도급인력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를 놓고 정 부회장과 불화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물론 정 부회장이 허 전 사장을 믿고 따르던 시절도 있었다. 정 부회장은 2009년 하반기부터 대외활동을 부쩍 늘렸다. 정 부회장은 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근 대외활동이 잦아진 건 구학서 부회장과 허인철 부사장 두 분의 제안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정 부 회장이 당시 허 전 사장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허 전 사장은 그룹 안에서 ‘상남자’로 불릴 정도로 의리를 중시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전문경영인의 판단을 존중하는 신세계그룹에서 오랫동안 일해 이마트의 전문경영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은 결국 신세계그룹이 정 부회장의 오너경영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례로 기록된다. 그 부담도 ‘오너 정용진’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 정용진 후견인 역할하는 전문경영인 구학서


신세계그룹의 오너경영체제는 정 부회장이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상속받을 때 구축되겠지만 구학서 회장의 후견인 역할이 끝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도 있다.

구 회장은 정 부회장의 후견인이기에 앞서 신세계그룹 발전의 1등 공신이다. 그는 신세계그룹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구 회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1972년 삼성전자 경리과에 입사했다.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에 몸담으면서 오너일가를 측근에서 보필하게 된다. 이때 이 회장과 처음 만났다. 1990년대 초 삼천리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 회장이 요청해 1996년 신세계 경영지원실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1999년 신세계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2009년 총괄대표이사에서 물러날 때까지 11년 동안 전문경영인으로서 신세계그룹을 이끌었다.

이명희 회장은 2005년 사보에서 “신세계는 내가 사업의 큰 틀을 잡으면 구학서 사장이 실질적 경영방침을 제시하고 각 부문의 대표 등 전문경영진이 회사별로 전략을 수행하는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구 회장을 두고 “삼성 비서실에서 아버지를 모시면서 투자와 자금운용 등을 배운 인재”이며 “모든 것을 지극히 신중하게 결정하고 일단 결정한 것은 추진력있게 끌고 가는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구 회장은 이 회장의 절대적 신임 속에서 신세계를 이끌었다. 그는 경영비시서실 전무 시절 외환위기가 닥치자 회사의 비주력사업인 코스트코홀세일 매장을 팔자고 제안했다. 매각대금이 1억 달러에 달하는 빅딜이었지만 이 회장은 구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구 회장은 코스트코홀세일 매각대금으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핵심상권에 부지를 사들였다. 이 부지가 이마트 발전의 뿌리가 됐다. 그는 또 카드, 빌딩관리, 택배 등 그룹의 핵심역량과 무관한 사업부문을 정리하면서 유통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정용진의 오너경영, 신세계의 미래는?  
▲ 왼쪽부터 구학서 신세계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07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관 개점식에 참석해 테이프 컷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구 회장이 이끄는 동안 신세계그룹은 승승장구했다. 구 회장이 이 회장에게 부름을 받았을 때 신세계는 단 2곳의 백화점 점포만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있는 동안 이마트는 100호점 돌파했고 세계 최대규모인 신세계백화점 센텀점도 설립됐다. 구 회장이 총괄대표이사로 재임기간 동안 신세계 매출은 4.8배, 영업이익은 8.8배 성장했다.


정 부회장은 구 회장의 활약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내 인생의 결정적 계기는 구학서 회장과 만남”이라며 “신세계 성공의 역사는 구 회장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정 부회장에게 구 회장은 스승이기도 했다.

구 회장에 대한 정 부회장의 존경심은 구 회장이 2009년 총괄 대표이사를 내놓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계속됐다. 정 부회장은 2011년 신세계를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로 분리하면서도 “신세계의 의사결정은 이명희 회장과 구학서 회장 그리고 제가 지금과 똑같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희 회장에게 경영권 상속을 위해 세금을 제대로 내자고 설득한 것도 구 회장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6년 “신세계는 도덕적 기반을 세운다는 차원에서 깜짝 놀랄 만한 수준으로 세금(상속세)을 낼 준비를 하는 중”이라며 “규모는 약 1조 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에게 “윤리경영을 위해서 경영진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며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모범을 보이자”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 회장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정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2007년 아버지 정재은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상속세로 3500억 원 가량을 납부했다. 이 금액은 재계 역사상 최대 상속세로 기록됐다. 구 회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은 구 회장이 신세계의 경영이념으로 내세운 윤리경영이 토대가 됐다. 구 회장은 1999년 신세계 사장에 오르면서 국내 최초로 윤리경영을 선포했다.

정 부회장의 오너경영체제는 이런 전문경영인체제의 기반 위에 서있다. 윤리경영의 토대 위에서 상속세를 제대로 냈기 때문에 여느 재벌과 달리 정 부회장이 사실상 오너로 나서도 부정적 인식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여전히 오너경영체제로 이행기에 있다. 그동안 쌓은 윤리경영의 기반 위에서 정 부회장이 내세운 책임경영이 얼마나 실천되느냐가 정 부회장의 오너경영체제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가 될 것이다. 물론 정 부회장이 이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상속세를 정상적으로 낼 것인가 하는 점도 정 부회장 오너경영체제 안착을 결정짓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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