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되면 회장 재임기간에 은행장 선임이 필수로 이뤄져 행장 자리를 위한 줄서기나 알력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회장이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지난해 말 위성호 전 신한행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게 된 배경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위 전 행장은 “회장후보군 5명 가운데 4명이 퇴출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용병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위 전 행장에 이어 진 행장의 연임 여부도 조 회장이 결정하게 됐다.
은행장의 임기가 짧아진 데 따른 부작용은 내부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불거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사태 역시 짧은 임기로 당장 눈 앞의 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은행장의 조급함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있다.
회장이 오랜 기간 자리를 공고히 지키는 사이 회장과 회장후보군의 그룹 내 입지와 경험, 연륜 등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점 역시 문제다. 회장 한 명의 카리스마가 강해지면서 연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중은행에 다니고 있는 한 직원은 “회장의 뒤를 이을 만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아직은 회장을 대체하기 어려운 만큼 회장이 연임할 것으로 보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 외풍 막고 자율성 독립성 보장하는 장점도 있어
물론 장기 집권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조금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오래 임기를 지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금융지주가 관치와 낙하산 등 외풍에 취약할수록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진출과 인수합병이 금융지주에게 필수로 떠오른 지금 꾸준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글로벌 금융회사에는 장수 CEO가 많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2005년부터 15년 동안 JP모건을 이끌고 있다. 그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골드만삭스 CEO도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오랫동안 임기를 지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여러 차례 연임하는 과정에서 한 명에게 권한이 집중되면서 폐해가 생기고 물러난 뒤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나금융지주에서는 김승유 전 회장이 물러난 뒤에도 한동안 ‘고문’을 유지하며 그룹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정태 회장 역시 더 이상 연임은 불가능한 만큼 이번엔 물러나더라도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9년 동안 사실상 김정태 회장 1인체제가 유지됐는데 김 회장의 존재감을 단번에 지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장후보군에 들어있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물론 주력 계열사 CEO 모두 김정태 회장 재임 시절 선임된 인물들로 이른바 ‘김정태 라인’으로 분류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