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재계 모두 불만의 목소리···노사 임단협 개정 진통 예상
근로기준법 개정까지 갈 길 멀어···노사정 합의 여부 불투명
‘정기적·고정적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하급심에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던 ‘통상임금’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일급·주급·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이라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산업 현장에서 노사가 근로기준법이 아닌 고용노동부 행정지침(통상임금 산정기준)에 따라 상호 합의하에 통상임금의 범위를 규정하고 임금 인상액을 조정해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하급 법원 역시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사안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노사의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조가 늘어나고 노동자의 발언권이 커진지 26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런 관행이 계속돼 왔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일단 지금까지의 관행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에는 성공했다.
◆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노-사간 엇갈린 입장
|
|
|
▲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통상임금 범위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정부는 이번 판결이 “그간 현장에서 이뤄진 임금 결정 관행과 통상임금 법령, 경제사회적 파급 영향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고심이 담겨 있는 것으로 존중한다”며 ‘임금체계 단순화’로 가는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판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재계와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또한, 이번 판결에서 제시한 여러 제한 요소들로 노사간 소송과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먼저 재계에서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기업들이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며 반발했다. 지난 1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확대 판결에 따라 기업들이 매년 8조8663억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경총은 특히 판결이 적용되는 첫해에는 퇴직급여충당금 증가액 4조8846억원이 더해져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13조7509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재계는 막대한 추가부담은 물론,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 고용여력 위축, 노사관계 악화 등도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채권 소멸 시효인 3년치 소급분에 대한 청구소송을 제한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무효라면서도, 신의칙을 근거로 추가임금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재계의 입장이 반영된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과거 노사가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것은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명시했으나 과거 받지 못한 임금에 대한 청구는 "사용자 측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신의칙에 위반되는 만큼 허용할 수 없다"고 제한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밝힌 ‘임금 청구가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정도’인지 여부는 결국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어 이를 둘러싼 노사간 법정 다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임단협,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갈 길 멀어
이뿐 아니라 당장 내년 임금단체협약 개정에서도 노사의 치열한 힘겨루기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은 노사 합의는 무효라고 판결하면서 새로운 임단협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사 모두 서로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안을 주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통상임금에 해당되는 수당의 비중을 낮추려 할 것이고, 노조 입장에서는 대법원이 인정한 항목은 물론, 다른 항목들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임단협 개정을 이끌어내기까지에는 상당한 진통과 소요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각 기업장에서의 노사 합의뿐 아니라 근로기준법 개정 역시 갈 길이 멀다. 정부는 내년초까지 통상임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개정안을 제시하면 이는 노사정위원회로 넘어간다. 정부 개정안은 다시 노사정위 산하 임금·근로시간 특별위원회(특위)에서 논의된다. 노동계와 경영계 대표, 공익위원들로 구성되는 특위는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임금피크제 등 임금과 근로 형태 관련 현안을 한자리에서 다뤄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런데 노동계의 참여가 문제다. 민주노총은 불참의사를 밝혔고, 대신 노동계 대표로 참여한 한국노총 역시 내년 1월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특위에 불참해 왔다. 한국 노총이 특위에 복귀한다고 해도 노동계가 ‘노사 합의 인정’ 등으로 통상임금 범위를 제한한 정부안을 받아들일 지도 미지수다.
노사정위가 모든 난관을 뚫고 ‘대타협안’을 도출하면 이 안을 가지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를 거쳐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계법 개정이 이뤄진다.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민법 제2조 1항). 이것을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신의칙이라고 한다. 신의성실이란 사회공동생활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로마법에서 기원하였으며 특히 당사자의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채권법의 영역에서 채권행사와 채무이행에서 발생·발전한 법리이다. (출처: 법률용어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