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통신장애의 피해 대상과 손해액의 범위를 확대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통신3사에 따르면 KT는 통신장애 피해 보상과 관련한 약관 개정 논의에 들어갔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정부의 방침이 정해지면 그에 발맞춰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KT 관계자는 “KT는 최근 발족한 상생보상협의체를 통해 약관 개정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다”며 “이제 얘기가 나온 것이고 앞으로 세부적 검토를 통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추후 정부 지침에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KT 아현국사 화재 뒤 통신 인프라가 미치는 영향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은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사들이 약관 개정을 통해 통신장애로 실질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나온다.
현재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등의 약관을 살펴보면 3시간 연속해 이동전화와 인터넷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시간당 월정액(기본료)과 부가사용료의 6배에 해당하는 금액(인터넷TV의 경우 시간당 평균요금의 3배)을 보상받게 돼있다.
유선과 무선 가입고객 외 추가 피해 대상을 놓고 약관에 명시된 내용이 없는 만큼 통신사들이 통신장애에 따른 영업 피해를 보상한 선례는 없다. 통신사가 추가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까지 나와 있기도 하다.
근거 없이 피해 보상에 나선다면 통신사 경영진들이 주주들로부터 배임 등의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 약관 개정을 통한 기준 마련이 시급한 대목이다.
하지만 약관 개정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통신을 통해 이뤄지는 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외식업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밴사, 카드회사, 각종 페이회사, 다양한 플랫폼업체 등이 통신망을 사용해 결제나 주문 채널을 마련해 놓았다.
이 때문에 통신사의 통신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를 보상의 대상으로 할지 정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손해액 산정기준을 약관에 어떻게 담을 지도 문제다.
영업 피해 등은 통신사들의 내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산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액 산정을 위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다.
또 간접 피해 보상액을 산정한다면 상인들의 카드결제액 감소액을 화재 발생 전주와 비교해야할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야 할지, 최근 평균치를 내야 할지 등 세부적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KT 관계자는 “약관 개정은 이통3사 등 동종업계 뿐 아니라 정부와 상인 단체, 관련 기관 등 여러 곳과 함께 논의해야 할 부분인 만큼 시간을 두고 진행돼야 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통신사 약관 개정을 놓고 통신사들 뿐 아니라 정부까지 압박하고 있는 만큼 약관 개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KT 화재사고 피해가 단순히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몇 시간 쓰지 못한 데 한정되지 않으니 통신장애 때문에 영업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도 구제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16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KT는 약관 개정을 검토해 통신장애 영업 피해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국민들에게 실제 손해액에 해당되는 피해액 보상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통신사들 뿐 아니라 정부 역시 현재 통신 서비스에 부합하는 방식의 손해 배상기준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추후 약관 개정도 같이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정치권의 이런 방향에 적극 공감의 뜻을 내보였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약관 개정의 필요성을 놓고 “통신은 소비자들의 삶과 국가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통신장애 보상 대상을 좁게 한정해둔 현재 통신사들의 약관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며 “관련 부처와 초안을 만들어 통신사들이 약관을 개정하도록 조치할 것이며 조만간 통신3사와 함께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과방위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황창규 KT 회장도 “법적 문제가 있어 당장 확답하긴 그렇지만 긍정적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