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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에 이익균점권 인정, 출발부터 경제는 진보적이었다

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 2018-03-18 04: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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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그동안 모두 9차례 개정됐다. 이 가운데 경제 관련 조항의 중대한 변화는 모두 5차례 이뤄졌다.

시대에 따라 경제관련 조항이 점차 변했는데 경제 발전에 따른 경제활동 주체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 권한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졌다.

◆ 제헌헌법,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질서의 혼재

제헌헌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 제정된 헌법으로 헌법학자이자 문학자인 유진오 교수가 초안을 작성했다.
 
제헌헌법에 이익균점권 인정, 출발부터 경제는 진보적이었다
▲ 제헌헌법 사본. <국가기록원>

유 교수는 독일 바이마르헌법을 참조해 헌법 초안을 썼는데 당시 그는 우익 진영에 있으면서도 진보적 사상을 헌법에 많이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헌헌법에 경제를 독립된 장으로 구분했는데 이는 미국과 일본 등의 헌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는 자유와 계획의 대립되는 두 가지 원리의 조화 위에 건설해 나가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제헌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안에서 보장된다”고 명시했다.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국가의 부분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규정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성격이 혼재한 조항이다.

제헌헌법 제87조가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고 규정한 점에서도 당시 국가의 통제에 무게가 실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은 2013년 ‘대한민국 경제헌법사 소고’라는 논문에서 “제헌헌법의 경제질서는 동시대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공산주의와 적대적 관계라는 점에서 계획경제질서의 배척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정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경제론을 전적으로 제기할 수 없는 이중적 상황에서 내려진 개방적 경제질서”라고 평가했다.

제헌헌법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뿐 아니라 ‘이익균점권’이 포함된 노동4권이 보장됐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헌헌법 18조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며 ‘이익균점권’을 인정했다.

이익균점권은 노동자가 기업의 이윤 일부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이익공유제’보다 강한 분배 의미를 지니고 있다.

◆ 1950~1970년대, 시장경제 성격 강화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불리는 2차 개헌에서 헌법의 경제 관련한 조항이 처음으로 개정된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국영이나 공영기업만으로 기업의 능률과 생산성 향상을 끌어낼 수 없는 데다 경제를 통제하기만 해서는 외국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곤란하다는 이유로 시장경제 성격을 더하는 쪽으로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제헌헌법에 이익균점권 인정, 출발부터 경제는 진보적이었다
▲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 박정희 전 대통령.

2차 개헌에서 헌법 제87조에 적혀 있던 ‘중요한 공공성을 지닌 기업의 국·공유화’와 관련한 규정은 삭제됐으며 대외무역의 국가적 통제 방침을 육성으로 전환했다.

제88조 사영기업의 국·공유화에서 사영기업의 국·공유화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경영에 대해 통제와 관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밀한 필요에 따라 법률로써 따로 규정할 때만 예외로 했다.

전반적으로 경제적 평등보다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진 점을 두고 유진오 교수는 1957년 ‘헌정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에서 “자유경제의 확대라는 개헌안의 동기에는 찬성이지만 자연자원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점, 국·공영기업의 범위를 확대해 ‘사영의 특허’라는 무기로써 정부가 사기업에 간섭할 기회를 오히려 증가시킨 점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이 4·19혁명으로 무너진 뒤 들어선 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5차 개헌(제3공화국헌법)에서 시장경제 원칙을 헌법에 새긴다.

제3공화국헌법은 제111조 1항에서 “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경제적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제헌헌법의 우선순위였던 ‘국가의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 조항을 2항으로 옮겼다.

1항과 2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1항에서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선언하면서도 2항에서는 경제에 대한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인정하고 있다. 수정자본주의적 혼합경제체제가 헌법에 등장한 첫 사례로 헌법학자들은 평가한다.

제3공화국이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자유와 창의’를 ‘사회정의’에 앞선 가치로 보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강조했다는 평가도 있다.

제118조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에 관련되는 중요한 정책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경제·과학심의회의를 둔다”에서는 산업을 국가가 주도해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박정희 의장은 5차 개헌에서 제헌헌법에 보장됐던 ‘이익균점권’을 삭제하기도 했다.

1972년 제7차 개헌(제4공화국헌법, 유신헌법)에서는 제3공화국헌법의 틀을 유지하면서 국토개발계획과 농어촌개발계획 등에 관한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다.

◆ 1987년 ‘경제의 민주화’ 등장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개헌안 초안을 만들고 1980년 10월27일 제8차 개헌(제5공화국헌법)을 한다. 

제120조 3항에 “독과점의 폐단은 적절히 규제 조정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등장하면서 이를 헌법에 실은 것이다.
 
제헌헌법에 이익균점권 인정, 출발부터 경제는 진보적이었다
▲ 6월 항쟁으로 등장한 현행 헌법은 '경제의 민주화'를 명시하고 있다.

소작제도에 대한 새로운 조정 조항도 도입했다.

제122조에서 “농지의 소작제도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금지된다. 다만 농업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한 임대차 및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인정된다”고 했다. 제3공화국헌법부터 농지 소작제도를 원칙적으로 금지했는데 농업이 기업화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5공화국헌법은 소비자 보호운동을 보장하고 중소기업의 보호·육성 등과 관련한 규정도 포함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등장한 현행 헌법(9차 개헌, 제6공화국헌법)은 ‘경제민주화’를 처음으로 규정했다.

현행 헌법은 제119조 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2항에서는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질서의 기본 원칙을 ‘자유와 창의’로 하는 데 토대를 두면서도 적절한 국가적 규제와 조정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제헌헌법부터 써온 ‘사회정의’를 ‘경제의 민주화’라는 단어로 바뀐 점이 눈에 띄는데 당시 민주화와 관련한 시대적 요구가 헌법에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자본주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면서 경제의 민주화라는 이념에 따라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현행 헌법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는 시장경제와 사유재산권 보장, 국가적 규제와 조정 등의 개념을 포괄하는 종합적·상위 개념이라고 헌법재판소는 1996년 판단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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