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에 부처님 말씀이 넘치는 날이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각 정권이 불교계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특히 대통령의 종교는 개인의 믿음에 머물지 않고 때로 정부와 불교계의 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대 대통령이 남긴 불교계와의 인연을 살펴본다.
24일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축법요식이 이날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서 봉행된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올해 봉축법요식에 사부대중(스님, 비구니, 우바새, 우바미) 1만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산이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은 해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정당 대표, 대선 후보 등 정·관계 인사들이 불교계와 접점을 만드는 주요 행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도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12·3 내란의 여파로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우원식 국회의장, 주호영 국회부의장,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조기 대선 국면이었던 만큼 대선 후보들의 참석도 눈에 띄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권영국 정의당 후보 등이 조계사 봉축법요식에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의 종교는 정치권과 종교계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가 됐다.
이승만·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은 개신교 신자로 꼽힌다. 이들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시기에는 개인 신앙과 공적 권력의 거리를 둘러싸고 불교계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기에는 1954년 '사찰정화 유시'를 계기로 불교계 내부 갈등이 커졌다. 불교정화운동은 불교계 내부의 자정운동 성격도 있었지만 이 전 대통령이 '대처승은 물러가라'는 취지의 유시를 내린 뒤 정부 개입 속에 비구승과 대처승 갈등이 격화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충현교회 장로 출신이었다. 재임 초기 기독교계 인사 중용 논란이 있었으며 국방부 청사 안 국군중앙교회 예배 등을 계기로 불교계의 종교편향 반발이 커졌다. 김 대통령 재임 시기 청와대 예배실 설치를 두고 불교계 중심으로 종교편향 대책위원회가 구성된 적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망교회 장로 출신으로 서울시장 재직 당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불교계 등의 강한 반발을 샀다. 대통령 재임기에도 2008년 촛불집회 국면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검문 논란 등이 겹치며 불교계와 갈등을 빚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례명 '디모테오'를 가진 천주교 신자다. 문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김정숙 여사와의 결혼식도 성당에서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개신교 신자이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CBS라디오 연설에서 "아내 덕에 뒤늦게 주님을 영접했다"고 말하며 어머니와 배우자 김혜경 여사의 신앙을 언급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정 종교 색채가 강한 대통령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불교와 인연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무교에 가깝다고 분류된다.
노 전 대통령은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과 사찰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한 인연이 거론된다. 서거 뒤 49재가 김해 봉화산 정토원에서 불교 의식으로 거행됐고 전국 사찰에서도 49재가 봉행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무교로 알려졌지만 종교와 관련한 인연은 여러 갈래로 거론됐다. 박 전 대통령은 천주교계 학교인 성심여중·성심여고와 서강대를 다녔고 성심여중 재학 시절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불교계와도 가까운 인연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불교 신자였던 모친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불교와도 접점이 있었고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과 대구 동화사 주지 지성 스님에게 각각 법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2023년 4월9일 서울 중구 영락교회에서 열린 2023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김건희씨가 구약성경을 다 외운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 발언은 이후 정치권에서 다시 소환되며 논란이 이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불교와 접점이 많았던 대통령으로 거론된다. 박 전 대통령 시기에는 불국사 복원 등 불교계에 돕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도 박 대통령 재임 때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불교와 가까운 대통령으로 자주 거론된다.
노 전 대통령은 불교 신자로 알려졌고 불교계와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대통령으로 평가됐다. 출퇴근길 차량 안에서 금강경 독송 테이프를 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하면서 직지사 주지와 동국대 이사장을 지낸 녹원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부인 김옥숙 여사의 법명을 딴 '만덕전'이 직지사에 세워졌고 대구 동화사 약사여래불 조성에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통령 개인의 종교가 불교계와의 관계를 그대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기에는 1980년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승려와 불교 관련자들을 강제로 연행해 수사한 10·27 법난이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기 불교계와 악연을 남겼지만 퇴임 이후에는 백담사에 머물며 불교와 복잡한 장면을 남겼다.
한편 불교 대통령 후보도 있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길수 호국당 후보는 당시 '불심으로 대동단결'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김 후보를 한국 불교계 전체를 대표한 후보는 아니었지만 대선에서 불교가 전면에 등장했던 이례적 사례로 남았다.
김 후보는 당시 대선에서 5만1104표를 얻어 전체 6명 후보 가운데 5위에 그쳤다. 득표율은 0.21%였다. 당시 대선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