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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이 위기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 경영 수업을 받으면서 '승부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신 회장의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주력 계열사뿐 아니라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사업군도 예외 없이 사업성 검토 대상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을 상징하는 회사라고 해도 실적이 좋지 않다면 과감하게 방향성을 수정하고 있다. 새 성장동력으로 꼽았던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15일 재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롯데그룹이 전방위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롯데그룹의 주요 사업군 가운데 매출 기여도가 가장 높은 화학군의 상황은 심각하다. 화학군의 대표 기업인 롯데케미칼은 2022년과 2023년에 누적 적자 1조1천억 원을 봤다.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도 이미 2500억 원에 육박한다.
롯데그룹을 상징하는 유통군 역시 소위 ‘잘 나가는’ 계열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롯데그룹 유통군을 대표하는 계열사는 롯데쇼핑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온을 사업부로 두고 롯데하이마트와 롯데홈쇼핑 등을 종속회사로 가지고 있다.
롯데쇼핑 매출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창사 이래 2020년까지 다른 계열사에게 매출이 뒤처진 적이 없었지만 외형이 뒷걸음질하면서 2021년에는 롯데케미칼에 처음으로 계열사 매출 1위를 넘겨줬다.
롯데쇼핑이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거둔 매출은 14조5천억 원대다. 2021년과 비교해도 2년 만에 매출이 1조 원가량 빠졌다. 올해 매출 역시 지난해보다 1.6% 줄어들 것으로 증권가는 바라보고 있다.
수익성을 개선하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외형 성장이 미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중요 지표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나머지 계열사 상황도 좋은 편은 아니다.
롯데건설은 약 2년 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부도 위기까지 돌았던 회사다. 여러 계열사의 지원 덕에 위기를 넘겼지만 여전히 안심하기 힘든 계열사라는 말이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호텔롯데의 주력 사업부인 롯데면세점 역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면서 희망퇴직을 받은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는 8월 말 롯데그룹을 놓고 “향후 그룹의 주요 모니터링 요인은 화학부문의 실적 회복 수준과 그룹의 투자 전략, 재무부담 추이다”며 “화학부문 실적 회복 수준에 대한 점검과 더불어 2차전지 소재 및 바이오사업 등 그룹의 신성장 사업에 대한 실제 투자 집행과 자산 매각, 투자 유치 등의 자구계획 이행, 이에 따른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 추이를 모니터링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신용등급도 최근 2년 사이 하락세를 보였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의 최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지주에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한 것은 롯데그룹의 전방위적 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롯데그룹은 2023년 발표된 재계순위에서 13년 만에 순위 5위에서 6위로 내려가며 자존심을 구겼다.
롯데그룹을 제친 포스코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덕분에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았다는 것이 순위 변동의 주된 이유이긴 했으나 그만큼 대내외적 위상이 축소됐다는 상징적 의미로 더 많이 받아들여졌다.
신 회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일 수밖에 없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선 뒤 수십 차례의 인수합병을 통해 그룹을 재계 5위의 재벌까지 키웠다. 이런 성과 덕분에 신 회장은 혹동한 경영수업을 20년 버틴 인수합병의 승부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흔들리는 롯데그룹 앞에서 다시 신발끈을 조여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래를 위한 체질 개선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오래 공들인 노력에 빛이 바랄 수도 있다.
신 회장의 아들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 그룹 내부에서 보폭을 대폭 넓히면서 경영을 승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신 회장의 책임이 적지 않아 보인다.
신 회장은 현재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롯데그룹의 위상을 복원하기 위해 뛰고 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신 회장 전략의 핵심으로 꼽힌다. 다른 말로 하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에서 기초화학사업의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기로 했으며 그 빈자리를 첨단소재사업으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두 사업에서 만든 재원은 화학 계열사의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는 정밀화학과 전지소재, 수소에너지 등 신사업 육성에 쓰기로 했다.
그룹의 상징인 유통 계열사를 놓고는 글로벌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저출생에 따른 인구절벽을 마주한 한국에서 내수 유통만으로는 먹거리를 더 이상 찾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의 해외 진출 성공을 대표하는 사례는 베트남 하노이에 문을 연 복합쇼핑몰 롯데몰웨스트레이크하노이다. 롯데그룹은 이 복합쇼핑몰을 만들기 위해 유통군의 역량뿐 아니라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시네마 등 다양한 계열사를 총동원했다.
롯데몰웨스트레이크하노이는 오픈 9개월 만에 누적 매출 2천억 원을 넘었다. 한국 복합쇼핑몰에서 내는 매출과 비교하면 작아보일 수 있지만 베트남 현지의 소득 수준을 고려했을 때 고무적 성과라는 것이 롯데그룹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이미 국내보다 해외에서 돈을 더 잘 벌고 있다. 롯데마트가 상반기 해외에서 번 영업이익은 273억 원으로 국내에서 낸 영업손실 4억 원을 압도했다.
업황을 봤을 때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하는 사업은 과감하게 보류하는 모습도 보인다.
롯데쇼핑은 애초 경기 의왕에 있는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의왕점(옛 타임빌라스) 인근에 가전과 가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리빙 전문관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 탓에 가전과 가구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공사를 최근 중단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모태로 평가받는 식품 계열사의 글로벌 진출도 독려하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 유럽 출장에서 ‘원롯데 식품사 전략회의’를 열고 한일 식품 계열사 경영진을 불러 “해외 매출 1조 원이 넘는 다양한 메가브랜드 육성에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해 달라”고 주문했다.
식품 계열사의 선봉인 롯데웰푸드는 이미 인도를 글로벌 진출의 거점 국가로 삼고 사업을 키우는 중이다. 지난해 인도 첸나이공장에 약 300억 원을 투자해 초코파이 3번째 생산라인을 만들었으며 하반기에는 인도 푸네에 새 공장을 짓는다.
내년부터는 해외법인 최초로 인도에 롯데웰푸드의 대표 상품인 빼빼로를 내놓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필리핀펩시의 경영권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면서 주력 제품의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한 상태며 롯데GRS도 외식 프랜차이즈의 선진 시장으로 평가받는 미국과 유럽 등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롯데바이오로직스와 롯데헬스케어도 신 회장이 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계열사다.
두 회사는 롯데그룹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업 영역에 도전하는 계열사라는 점에서 롯데그룹뿐 아니라 신 회장에게도 의미가 큰 회사들이다. 롯데지주를 통해 최근 2년 동안 두 회사에 투입한 금액만 6천억 원 가까이 된다.
두 법인은 출범한지 약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집중 점검 대상에 올랐다.
롯데지주는 최근 롯데헬스케어를 놓고 사업의 지속가능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법인의 철수 여부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점찍었다 해도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면 투자를 중단할 수도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는데 신 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얼마나 고강도로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내부적으로 위기감을 환기하며 임직원들의 위기의식을 높이고 있다.
신 회장은 7월 열린 ‘2024 하반기 VCM(옛 사장단회의)’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면서 지속 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게 당부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