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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담철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2014-03-04 16: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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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온 담철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살아남고 현재현 동양 회장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 살아남았다.

남보다 먼저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웰빙과자를 탄생시켰다. 동양그룹의 첫째 사위 현재현 회장이 그룹을 그대로 승계했음에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반면, 담 회장은 동양제과 하나만 물려받았는데도 그룹을 일구었다. 그 배경에 그의 과감한 '혁신 지향'이 자리잡고 있다.

◆ ‘중국진출’과 ‘웰빙과자’로 성과 만든 독종

1989년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이 숨졌다. 담 회장은 오로지 동양제과 한 회사를 물려받았다. 첫째 사위 현재현 회장이 동양그룹을 거의 그대로 승계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출발이었다.

출발은 미약했지만 ‘중국진출’과 ‘웰빙과자’로 도약의 발판을 삼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담 회장은 동양제과 사장으로 취임한 뒤 먼저 화교 출신이라는 배경을 활용해 남들보다 앞서 중국시장 진출에 나섰다. 당시 한중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었다. 담 회장은 내부 반대가 있었지만 뚝심으로 밀고 나갔다.

담 회장은 한중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1991년 중국을 직접 방문해 시장답사를 했다. 국내 기업 오너 가운데 사실상 최초의 시장탐색이었다. 당시 담 회장은 다리를 다쳐 몸이 불편한 상황이었는데도 직접 목발을 짚고 다녔다고 한다.

1992년 중국과 수교가 체결되자마자 베이징에 사무소를 냈다. 담 회장은 중국진출을 선언하면서 ‘현금결제’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란 원칙을 세웠다. 당시 막 개방되던 중국은 국민소득이 낮아 함부로 외상거래를 했다간 시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담 회장은 “현지에 뼈를 묻어라”며 현지화에 많은 공을 들였다.

담 회장은 회사가 궤도에 오르자 2001년 동양제과를 동양그룹에서 분리했고 2003년 회사 이름을 오리온으로 바꾸었다. 중국시장에 대한 진출은 더욱 속도를 냈고 2002년 담 회장은 중국법인의 독자경영을 선포했다.

중국진출의 성과는 200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7년 1414억 원에 불과하던 중국 매출은 이후 매년 48% 증가율을 기록하며 2012년 매출 1조 원을 넘겼다. 이는 국내 매출보다 많은 액수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오리온의 경영실적을 보면 지난해 3분기 매출 6391억 원과 영업이익 728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전년동기에 비해 각각 6.2%, 22.4% 증가한 수치다. 중국시장에서 선전이 가장 큰 몫을 담당했다.

국내의 경우 웰빙 역풍을 그대로 맞으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2007년 과자가 불량식품이라는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국내 제과회사들은 매출감소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과자의 주성분인 설탕과 밀가루의 유해성이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소비자들은 과자에 등을 들렸다.

위기상황에서 담 회장은 또다시 혁신에 들어갔다. 담 회장은 늘 “아이들에게 먹는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이 즐거움에 ‘건강’을 더했다. 담 회장은 당시 자신의 주치의였던 유태우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사와 함께 ‘국민건강팀’을 결성해 ‘닥터유’를 탄생시켰다.

닥터유는 합성첨가물을 빼고 지방과 나트륨 등 몸에 해로운 성분을 가능한 줄인 국내 최초의 ‘웰빙과자’였다. 담 회장은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에 좋은 제품’이란 이미지를 앞세워 과자 논란에 정면으로 맞섰다.

담 회장의 혁신은 주효했다. 오리온은 닥터유를 통해 출시 첫해인 2008년 한해 동안 4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그 다음해인 2010년 6월에는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오리온 담철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 담철곤 오리온 회장 <사진=뉴시스>

담 회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 3세다. 서울에 있는 한국켄트외국인학교를 다녔는데 이곳에서 부인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학교 마케팅학과를 나와 1980년 동양시멘트 대리로 입사했다.

담 회장은 동양그룹 입사 후 이화경 사장과 결혼했다. 담 회장의 장인인 고 이양구 회장은 동양그룹의 창업주다. 하지만 슬하에 두 딸밖에 없다. 담 회장은 이양구 회장의 둘째 사위이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첫째 사위다.

담 회장은 결혼 후 초고속승진을 거듭해 경영승계 작업에 들어갔다. 1981년 동양제과공업(현 오리온제과) 구매부 과장으로 경영수업에 나섰고 1985년 동양제과공업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5년 만에 임원에 올랐다.

◆ 담 회장의 어두운 그림자

담 회장에게도 그림자는 있다.

담 회장은 지난해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고가의 미술품과 외제차를 법인 또는 계열사 자금으로 매입하거나 리스하는 등 총 300억 원대의 비자금 횡령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담 회장은 2011년 6월 구속기소돼 2012년 1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지난해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 이후에도 오리온 경영을 맡다 지난해 11월 돌연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부인 이화경 사장도 함께 사퇴했다. 다만 계열사 등기이사직은 유지하기로 했다.

당시 오리온 관계자는 “최대주주인 담 회장 부부가 전문경영진의 의사결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물러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의 경우 아직 오너의 책임경영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먼저 등기이사 연봉공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연봉 5억 원이 넘는 등기이사들은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 2012년 오리온 등기이사의 평균연봉은 15억 원으로 담 회장 부부의 연봉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스포츠토토사업을 계속 맡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리온은 2003년부터 스포츠토토의 최대주주로 참여해 사업을 이끌고 있다. 스포츠토토의 2012년 당기순이익은 428억 원으로 2005년부터 8년 동안 총 525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는 같은 기간 오리온의 영업이익 1조3075억 원의 40%에 달하는 액수다. 스포츠토토는 올해 7월2일 새로운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한다.

그런데 담 회장은 지난해 실형을 확정받았기 때문에 사업자로 다시 참여하기 어렵게 됐다. 오리온은 최근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관계자는 “스포츠토토는 국민의 사행심에 기반한 것이어서 사업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면서 "담 회장은 스포츠토토 사업을 계속 따내기 위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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