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2019년 11월11일 피레우스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미국과 협업해 그리스 사업 투자에 나서거나 현지 업체와 협력을 늘리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그리스 진출은 미국과 중국의 해양 패권 경쟁 속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중국이 키운 그리스 피레우스항, 미국의 새로운 견제 대상 떠올라
15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논평에서 “중국의 투자로 그리스 피레우스항의 컨테이너 처리량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유럽 안보전문매체 디펜스24에 따르면 중국 해운사 코스코의 진출 이후 피레우스항의 2024년 기준 컨테이너 처리량은 투자가 이뤄지기 전인 2008년과 비교해 600% 이상 증가했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외항 기능을 담당하는 피레우스항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항구로 아시아와 동유럽, 북아프리카의 무역 관문으로 꼽힌다.
중국은 피레우스항을 유라시아를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전략인 일대일로의 유럽 관문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중국 국영 해운사 코스코는 2009년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설비 장기 운영권을 획득했다. 그 뒤 2016년 피레우스 항만청 지분 51%를 인수한 뒤 2021년 기준 지분을 67%로 늘리면서 이를 바탕으로 항만 물동량을 크게 늘렸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항만 네트워크 확대를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피레우스항을 대체할 항만 개발에 투자하며 견제에 나섰다.
그리스 동부 지중해 지역은 미국이 속한 안보 공동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전략 요충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가 발칸반도와 동유럽에 수출될 때 지나는 항로이기도 하다.
이에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는 2023년 11월7일 그리스 업체인 오넥스(ONEX)가 아테네 인근 엘레프시나에 항만을 건설하는 사업에 1억2500만 달러(약 1890억 원)의 대출을 제공했다.
DFC는 이를 놓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중국 정부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에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과 중국의 그리스 해운 경쟁 구도. <그래픽 챗GPT로 제작>
미국은 항만 건설뿐 아니라 그리스의 조선업도 지원한다. 엘레프시나에 조선소를 재건하고 연간 최대 200척의 선박을 수리하거나 건조할 계획을 세웠다.
이 프로젝트에 한화오션도 참여한다. 한화오션은 지난 5월30일 미국과 ONEX가 함께 참여하는 투자 계획인 ‘프로젝트 트라이던트’를 출범시켰다.
13억5천만 유로(약 2조3600억 원) 규모의 이 투자 계획은 ONEX 엘레프시스 조선소의 조선 역량을 확장을 목표로 잡았다.
앞서 한화오션은 지난 3월19일 ONEX와 그리스 해경 및 해군이 발주하는 잠수함 사업 등에 파트너로서 함께하자는 전략적 협력 협약을 맺었는데 이런 협력구조를 투자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HD현대그룹의 핵심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도 그리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그리스 스카라망가스 조선소와 지난 2일 '그리스 및 유럽 해군 및 해안 경비함 개발 및 건조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그리스를 군수물자와 해양물류 거점으로 육성하는 가운데 한국 조선사도 이와 관련한 협업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그리스 판테이온대학교의 콘스탄티노스 치모니스 국제관계학 조교수는 닛케이아시아를 통해 “그리스가 한국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하면 항만 관리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안전 장구를 갖춘 작업자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필리조선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한화그룹>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조선 강국인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활용해 자국의 조선 역량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군함과 상선 생산 능력을 추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화오션이 속한 한화그룹은 2024년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고 지난해 8월 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약 7조5천억 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3월30일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 설계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 또한 올해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4만1천 톤급 화물보급함 ‘USNS 리처드 E.버드’함의 정기 정비 사업을 맡았다.
이렇듯 한국 조선사가 미 해군과 협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투자를 늘린 그리스에도 함께 사업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조선사가 방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 진출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방산 수주와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캐나다 잠수함 건조 입찰 경쟁에서 방산을 비롯한 다양한 사업 협력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스 또한 해군력 강화와 미사일 방어, 탄도 미사일 방어, 드론 방어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280억 유로(약 49조 원) 규모의 국방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해 치모니스 조교수는 닛케이아시아에 “한국 기업은 그리스가 공동 생산 및 공급망 탄력성 강화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 발맞춰 안정적인 납품과 기술 이전 개방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미국이 그리스에서 중국의 조선과 해운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상황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활용해 조선 사업 영토를 넓힐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다만 방산컨설팅업체 K디펜스모니터는 닛케이아시아에 “유럽에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와 프랑스 네이벌그룹,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등 방산기업이 있다”며 한국 조선사가 유럽 함정 시장에까지 진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