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6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두 가지 의문점

▲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10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에서 제1차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진상규명위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 파악을 위해 출범한 독립기구로, 오는 19일까지 10일간 운영된다. 사진은 중앙선관위 과천청사.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6월3일 실시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후폭풍이 거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국민의힘은 선거 결과를 두고 각각 이른바 ‘평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졌다면서 상대를 공격하면서 당내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큰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벌어졌던, 익숙한 풍경이다.

싸움은 시작됐고, 조만간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좋은 싸움을 벌이면 2028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 이어 2030년 대선에서도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는 예전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도마에 올랐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으로, 위원장은 국가의전서열 5위이다. 이른바 ‘5부 요인’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평상시 별 관심을 받지 못하던 기관이었는데, 갑자기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과 극우 진영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한 질주’를 시작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재선거를 주장하다, 급기야 사전투표 폐지까지 내걸었다.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당내 공격을 막을, 훌륭한 방패가 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송파구 ‘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은 부정선거론자와 극우의 ‘놀이터’가 됐다. 대한민국 제1야당이 부정선거론에 한 발을 걸치면서, 부정선거론과 혐중을 기둥으로 삼고 있는 극우 진영이 이만큼 성장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치적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먼저 ‘사건’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차분한 리뷰는 정치권 논의가 보다 생산적으로 전개되는 데 바탕이 될 것이다. 핵심적 의문은 두 가지다. 왜 투표용지를 적게 인쇄했을까, 왜 선관위는 당시 현장 대응을 못했을까.

중앙선관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중앙선관위는 대규모 선거를 앞두고 투표용지 인쇄를 약 1년 전부터 준비한다. 민간 기업에 주문해야 하는데, 국내에서 3천만 명이 넘는 유권자의 투표용지를 한 번에 인쇄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인쇄된 투표용지도 특별히 관리해야 하고, 잘못 인쇄된 용지도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야 한다.

이때 중요한 대목은 투표용지 인쇄 분량은 중앙선관위가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는 ‘지침’을 내리고 결정은 시·도 선관위(17개)와 시·군·구 선관위(255개)가 결정한다.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율이 20% 이상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본투표용 투표용지를 유권자의 50% 수준에서 인쇄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용지가 남으면 모두 폐기해야 하는데, 이는 부정선거론자들의 공격 지점이 되고 있어 폐기량을 줄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최종 투표율이 70% 이상이 될 것이라 예상할 순 없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지방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61.0% 수준이었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 유독 사전투표율이 낮았고, 유독 본투표율이 높았다. 이는 송파구에서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집중된 결과를 낳았다. 송파구 선관위는 중앙선관위 지침에 따라 본투표를 맞아 50%만 인쇄한 것이다. 반면 바로 옆동네인 서울 강남구 선관위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강남구 선관위는 중앙선관위 지침과 별개로 본투표 용지를 70% 안팎으로 넉넉히 준비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질문은 투표용지가 부족하면 다른 투표소에서 가져와 쓰면 될 일인데, 왜 그런 현장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느냐 하는 대목이다. 그 시간에 선관위 직원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선관위의 실상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도·군 선관위 직원은 보통 10명 안팎이다. 송파구는 인구가 많아 나름 선관위 직원이 2~3명 더 많다고 한다. 그 직원들은 당일 오후 모두 개표소에서 개표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후 6시 투표 마감에 맞워 곧바로 개표를 시작해야 하니까. 개표소 상황을 확인하고 개표 인력도 점검해야 한다. 이를테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맞아 현장에서 대응할 인력이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변명이 되기 힘들다. 유권자의 주권이 침해된 중대 사건으로 선관위의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선관위의 환골탈태는 일방적 선관위 공격과 정치적 선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선관위가 왜 그런 ‘느슨한’ 결정을 내렸는지, 현장 대응 체계는 어떻게 구축할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선관위는 그동안 부정선거론에 끊임없이 시달렸는데 이번 사태로 부정선거론에 스스로 기름을 부었다. 국민 모두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가 국민적 신뢰를 받는 헌법기관으로 거듭 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안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