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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재철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추진하는 중동 등 신흥시장 중심 매출 확대 전략인 ‘글로벌 사우스’가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 LG전자 >
LG전자는 중동 지역에서 프리미엄 가전 중심의 소비자(B2C) 사업에 더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솔루션을 앞세운 기업간(B2B) 사업 영역까지 확대하며 현지 사업 기반을 넓혀왔다.
하지만 전쟁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현지 소비 심리 위축과 기업 투자 지연이 이어질 수 있어 사업 전략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중동 사태가 지난해 말 LG전자 사장에 오른 류재철 사장의 첫 해외 경영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LG전자는 글로벌 사우스 전략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브라질에서 장기적으로 매출 기반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선진국에 치우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인구와 자원이 집중된 시장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의 2025년 인도·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의 합산 매출은 6조2천억 원으로, 2020년보다 20% 이상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류 사장도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처음 발표한 올해 신년사에서 신흥시장 공략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인도, 사우디, 브라질 등을 집중 육성해 2030년까지 매출을 2배로 키우겠다”고 했다.
특히 중동은 글로벌 사우스 전략에서 핵심 축으로 꼽히는 지역으로, LG전자가 오랜 기간 공을 들여온 시장이다.
LG전자는 1990년 이집트 북부 이스마일리아에 생산법인을 설립해 TV 부품 생산을 시작했고, 1995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에어컨과 공조 설비를 생산하는 법인을 추가로 세웠다.
현재 LG전자는 중동 지역에서 14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삼성그룹의 28개 법인에 이어 국내 대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것이다.
LG전자는 중동 진출 초기부터 현지화 전략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왔다.
1995년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가전 유통사 셰이커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어 현지 판매망을 확보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이라크·이란·레바논·요르단·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에 고급 가전 매장을 잇달아 열며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졌다.
2024년에는 4년 만에 지역 밀착형 신제품 발표 행사인 ‘LG 쇼케이스’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며 마케팅을 강화했다. 올해 2월에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LG 이노페스트’를 개최해 신제품을 공개하며 현지 사업 전략 방향을 공유하는 등 시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같은 사업 확장에 힘입어 2019년 2조1521억 원까지 떨어졌던 중동·아프리카 지역 매출은 2022년 3조3572억 원을 기록하며 3조 원대를 회복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가전 중심 사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솔루션 서비스 공급자로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LG전자는 2025년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냉각 솔루션을 공급하고, 아랍에미리트 스마트시티에는 첨단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과 AI홈 허브 기반 스마트홈 솔루션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중동 지역 소비와 투자 위축이 가시화할 경우, LG전자의 중동 사업과 매출 확대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올해 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LG 이노페스트에서 현지 소비자들이 LG전자 세탁기를 살펴보는 모습. < LG전자 >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제품 공급망 부담이 커지고, 물류비와 유가 등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고, 전쟁 여파로 중동 소비 위축과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연된다면 LG전자의 매출 확대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해 수십 개의 기뢰를 설치한 것으로 전해지고, 미국이 이에 대응해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예고하는 등 두 나라 사이 충돌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 기술 투자에 대한 지출이 연기돼 현지에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 규모가 기존 예측보다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놨다.
IDC는 보고서에서 “장기적 갈등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공급망 교란을 초래해 가용 자본과 자원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현재 중동 전쟁이 글로벌 사우스 전략 전반을 흔들 수준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중동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회사는 중동 지역 임직원의 안전 관리 조치를 강화하고,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에 대비해 대체 물류 경로를 검토하며, 경영 환경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사우스 전략은 여러 신흥시장을 포괄하는 만큼 이번 사태가 전략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물류비나 유가 등 단기 변수는 있지만, 장기 전략 자체가 영향을 받을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