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그를 아끼는 이들과 이별하고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평생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기관·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돌이켜 보면 사회장으로 우리 곁을 떠난 현대사의 거목들이 여럿이다. 
 
'기관·사회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영면, 장례로 보는 한국 정치사

▲ 27일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1일 이 전 총리의 장례를 계기로 역대 국가장, 사회장, 국민장 등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인물들은 당시 정치적 상황과 국민적 평가에 따라 마지막 길에 다른 대접을 받았다.

앞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는 26일 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장례를 27일부터 31일까지 기관·사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례는 민주평통과 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관했다.

이 전 총리의 기관·사회장은 그가 평생 걸어온 행적에 걸맞는 장례 형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총리는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아울러 6선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치며 여권의 대표적 전략가이자 관리형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는 남북관계와 통일 담론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기관·사회장은 국가장과 달리 법률에 의해 명확히 규정된 장례 형식은 아니다. 기관장은 당대표나 국회의장 등 특정 기관을 대표한 인사가 별세했을 때 해당 기관이 내부 결정으로 주관하는 장례를 말한다. 사회장은 국가가 아닌 정당이나 시민사회가 중심이 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치르는 방식으로, 공식적인 결정 주체가 존재하지 않고 추진 주체들의 합의에 따라 진행된다.

반면 국장·국민장·국가장은 모두 국가가 관여하는 장례 형식이지만, 적용 기준과 위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과거 국장은 국가가 주관하는 최고 격식의 장례로 사실상 전·현직 대통령으로 한정돼 적용됐다. 국민장은 국장보다는 한 단계 낮은 형식으로 국민적 추앙을 받은 인사에게 선택됐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 장례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뤄졌다.  

다만 국장과 국민장 구별을 두고 논란이 컸다. 이에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한 국가장 제도가 도입됐으며 이후에는 전직 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일원화했다. 다만 고인이나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제도와 관행 속에서 민주화 인사나 유력 정치인의 장례는 주로 사회장으로 치러져 왔다. 사회장은 정부가 결정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장이나 국장에 비해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특히 민주화 인사들의 장례에 사회장이 치뤄진 흐름은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방식에서 국가와 사회의 거리가 어떻게 설정돼 왔는지를 드러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2011년 12월30일 사망한 김 전 장관의 장례는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중심이 돼 장례위원회를 구성하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김 전 장관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민청련) 의장으로 활동하며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까지 당했다. 그는 고문이라는 국가 폭력의 실체를 공개 증언하며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 평가받으며 15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서울 도봉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아 보건의료 개혁을 주도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역시 사회장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정의당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장례위원회를 꾸려 장례를 주관했다. 

김 전 장관이 군사정권 시절 국가 폭력에 맞선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면, 노회찬은 민주화 이후 형성된 정치 공간에서 진보정치를 제도권으로 안착시킨 상징적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노동·인권·재벌 개혁 문제를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에서 집요하게 제기하며 소수정당 정치인도 의회 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삼성 X파일 공개, 비정규직 보호 입법, 대기업 지배구조 비판 등은 노회찬 정치의 대표적 장면으로 꼽힌다.

다만 그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한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지며 정치적·도덕적 압박을 받던 끝에 2018년 7월23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금전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장은 법률상으로는 국가가 주관하는 최고 예우 장례로 규정된 바 있으나 모든 전·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국장을 적용받은 사례는 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3인에 불과하다. 

나머지 전·현직 대통령은 법률상 국장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국민적 평가’ 또는 ‘정치적 상황’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함께 국장의 예우를 받지 못했다. 
 
'기관·사회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영면, 장례로 보는 한국 정치사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행렬이 2009년 5월29일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뒤 서울광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2009년 5월23일 서거 직후 유족은 가족장을 염두에 두고 조용한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서울광장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심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향과 추모 행렬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정부는 장례 형식을 둘러싼 공식 결정을 미루는 가운데 경찰은 일부 추모 집회에 대해 불법 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통제에 나섰고 이는 오히려 사회적 반발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국민행동본부와 고엽제전우회 관계자들이 서울 시내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고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훼손·강탈하는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줬다.

결국 정부는 확산되는 추모 열기와 사회적 갈등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장례를 ‘국민장’으로 격상했고, 장례 기간 전국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약 500만 명에 이르러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는 2021년 11월23일 사망 이후 국가장(이전 국장과 국민장의 통합)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해 내란 및 반헌법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와 국민을 향한 공식 사과나 책임 인정 없이 생을 마쳤다.

 정부는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 국가 차원의 애도 기간이나 장례 주관을 검토하지 않았으며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국가 예우에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전두환 사례는 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정 질서를 중대하게 훼손한 책임이 확인될 경우 국가 장례의 대상에서 명확히 배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경우로 평가된다.

요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추모의 규모와 정치적 갈등이 한꺼번에 분출된 장례였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장은 국가가 역사적 책임을 이유로 예우를 의도적으로 거둔 장례였다.

정부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를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통합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