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초공천제 폐지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드디어 한 발 물러섰다. 기초선거 무공천 여부를 다시 묻기로 결정한 것이다. 안 대표는 끝까지 명분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무공천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 실리까지 챙기겠다는 모습이다.
안철수 공동대표와 김한길 공동대표는 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초선거 정당공천 문제를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여당의 일방적 대선 공약 파기로 한 선거에서 여야가 두 개의 규칙으로 경쟁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무공천 재논의의 책임이 여당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안 대표는 “저와 지도부의 소신과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당원들 간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며 “다양한 의견은 존중돼야 하지만 선거가 눈앞에 있어 논란만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9일 전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이석현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전당원투표 및 국민여론조사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두 조사 결과는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과는 10일 발표된다.
안 대표는 이번 결정이 절대 무공천 방침 철회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무공천을 다시 검토하지만 여전히 통합의 명분인 무공천은 가능한 한 그대로 끌고 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안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국민과 약속을 지켜 정치의 기본을 바로세우고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과 소신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과 당원들이 약속을 지키는 정치에 대해 선거를 떠나 흔쾌히 지지해줄 것을 믿는다”며 무공천 방침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 대표는 국민과 당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무공천 방침을 밀어붙일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그동안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무공천 찬성표가 꾸준히 60% 이상 나왔다는 점이 안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다.
전당원투표 역시 안 대표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은 방법이다. 권리당원투표 방식은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출마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무공천 폐지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투표 대상을 모든 당원으로 확대할 경우 무공천 폐지 표가 희석되거나 오히려 무공천 찬성 표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당 지도부는 50% 후반 수준에서 무공천으로 결정될 거라고 예상한다.
안 대표는 이번 결정으로 ‘무공천 수렁’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도 마련했다. 투표 결과 무공천 철회가 결정되더라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무공천 철회를 국민과 당원의 뜻에 맡김에 따라 안 대표는 안팎의 비난을 최소화하면서 탈출 전략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안 대표는 “국민들과 당원 동지들의 뜻에 맞는 길로 가겠다”며 “제 소신과 원칙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민과 당원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전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 무공천 철회가 확정되더라도 따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안 대표는 무공천을 고수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여왔다고 판단한 듯하다. 안 대표는 지속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무공천 공약을 지킬 것을 압박해왔다. 하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햇다.
선거참패를 우려하는 당내 목소리는 반대로 점점 힘을 얻어왔다. 무공천에 반발하는 의원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여당처럼 무공천을 철회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우리만 약속을 지키게 되면 새누리당에 전패할 수 있다”며 무공천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안 대표는 자신의 ‘새정치’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무공천 입장을 고수해왔기에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안 대표가 무공천을 고수하겠단 종전 방침에서 일단 한 발 물러난 것에 대해 당내와 여야 모두 엇갈린 반응들을 내놓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무공천 철회 입장을 고수하던 의원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신경민, 양승조, 우원식 최고위원은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당원과 국민의 뜻을 다시 묻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들 위원들은 농성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정세균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당원과 국민들에게 무공천 철회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정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천폐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정치개혁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정당정치를 확립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정당공천을 통해 정당정치를 살리고 박근혜정권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해주시기를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안 대표의 결정을 공격하고 나섰다.
함진규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까지 마치 무공천만이 새정치의 근본인 것처럼 말해왔고 이를 명분으로 합당까지 했던 행보에 대한 반성 없이 무공천 재검토의 원인이 마치 청와대와 여당에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신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안철수 대표는 기초공천 폐지 철수와 말 바꾸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라며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기초공천 폐지를 고집한 안 대표의 아마추어리즘과 독불장군식 리더십은 국민에게 다시 실망감을 안겨줄 것이다”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