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CATL 유럽에서 나트륨 ESS 배터리 수주 시동, K배터리는 'EU 정책'이 기댈 언덕

▲ 중국 CATL 관계자가 21일 동유럽 재생에너지 기업 솔라프로와 ESS용 나트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CATL >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이 유럽에서 중국산 나트륨(소듐) 배터리에 기반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주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한국 배터리 3사는 유럽에 공장을 두고 ESS 사업 확대를 노리는데 유럽연합(EU)의 현지 생산 촉진 정책인 '산업가속화법(IAA)'이 기댈 언덕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현지시각) 전기차 전문매체 CNEV포스트에 따르면 CATL은 이날 동유럽 재생에너지 기업 솔라프로와 2기가와트시(GWh) 규모의 ESS용 나트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CATL은 지난 16일 네덜란드 에너지 기업 알펜과도 서유럽 지역에 5GWh 규모의 나트륨 배터리 기반 ESS를 설치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CATL은 지난 6월22일 ESS용 나트륨 배터리 상용 제품인 테너 소듐을 정식 공개했는데 한 달 새 유럽에서 대형 수주 두 건을 성사한 것이다. 

지표상에 풍부한 나트륨을 소재로 하는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희소한 리튬보다 원재료 가격이 저렴해 배터리 소재로 가격 경쟁력이 높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가 지난해 11월24일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 자료를 인용해 펴낸 보고서를 보면 나트륨은 리튬보다 지표면에서 1천 배 더 많이 분포해 있다. 

나트륨 배터리는 리튬 배터리와 비교해 제조 비용이 적게 들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다. 하지만 넓은 부지에 설치하는 ESS용으로 쓰면 이러한 단점도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CATL은 장기적으로 기존 배터리 시장의 30~40%를 나트륨 배터리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 ESS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CATL의 나트륨 배터리 상용화가 앞서 나가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한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 부담도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 태양광 산업협회인 솔라파워유럽은 지난 6월23일에 펴낸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연간 ESS 배터리 설치량은 올해 50GWh에서 2030년 138GWh로 17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다만 EU가 추진하는 산업가속화법안이 배터리 공급망을 유럽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설계된다는 점은 한국 배터리 기업에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산업가속화법안이 배터리와 ESS를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공공 조달과 보조금 사업에서 유럽산 기준을 적용토록 하기 때문이다. 유럽산이 아닌 제품이 현지에서 고객을 넓히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4일 EU 역내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조치를 담은 산업가속화법안 초안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 CATL 유럽에서 나트륨 ESS 배터리 수주 시동, K배터리는 'EU 정책'이 기댈 언덕

▲ 방문객들이 6월23일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ess 유럽 2026' 전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 LG에너지솔루션 >  

법안은 향후 유럽의회와 유럽연합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해당 절차는 최소 수개월이 소요돼 빠르면 2027년 중반에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중국 기업의 유럽 진출 자체를 막지는 않지만 중국에서 생산한 나트륩 배터리 제품을 수출하는 기존 방식은 경쟁력이 약화할 공산이 크다. 

CATL은 헝가리 데브레첸에 배터리 공장을 올해 완공하고 가동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공장은 니켈과 코발트에 기반한 전기차용 삼원계(NCM)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CATL은 스페인에도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지난해 11월 전기차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진행하고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이 더 중요한 나트륨 배터리는 기업 본산인 중국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CNEV포스트는 중국 환경 당국이 공개한 문서를 인용해 CATL이 50억 위안(약 1조1천억 원)을 투자해 푸젠성 닝더시에 연산 40GWh 규모의 나트륨 배터리 생산 설비를 갖출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씽크탱크인 몽테뉴 연구소의 조셉 델라테 에너지 연구 책임은 에너지 전문매체 다이얼로그어스를 통해 산업가속화법과 관련해 “중국 배터리 기업은 자국 공급망을 활용해 유럽 시장을 빠르게 점유했는데 이러한 모델이 도전에 직면했다”며 “앞으로 제품 가격만으로는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고 바라봤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는 이미 유럽 현지 생산기지와 공급망을 구축해 둔 만큼 산업가속화법안 시행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공장에서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4월 폴란드 자르노비에츠 ESS 설비에 쓰일 배터리를 처음 출하했다. 

이를 발판으로 지난 6월23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ESS 전시회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산업가속화법안 대응 역량을 핵심 경쟁력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삼성SDI 역시 지난해 6월11일 독일 ESS 기업 테스볼트에 컨테이너형 ESS ‘SBB’ 공급 계약을 확보하며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와 SK온은 헝가리 공장에서 전기차용 배터리만 생산한다. 그러나 산업가속화법안에서 EU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국가산 배터리는 EU산 제품으로 간주해 정책 수혜를 누릴 여지가 크다. 

결국 CATL의 나트륨 배터리 상용화는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변수지만 산업가속화법안 시행 이후에는 중국 기업 역시 유럽 현지 생산과 공급망 구축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만큼 현지 생산 체계와 규제 대응 기반을 먼저 단단히 갖춘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씽크탱크 유럽외교협회(ECFR)는 지난 5월6일자 보고서에서 “유럽은 한국이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량을 줄여 배터리를 생산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산업가속화법안으로 한국 배터리 기업이 큰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