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군인들이 6월24일 클루시 훈련장에서 열린 군사 훈련에서 한국산 K-2 흑표 전차를 뗏목 형태의 도하 장비인 문교에서 육지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방산 기업은 최근 잇단 전쟁으로 각국이 국방비를 증강하는 가운데 빠른 납기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수주 성과를 거두고 있었는데 중국 희귀 광물 수출 통제가 이어지면 유탄을 맞을 수 있다.
◆ 중국 희귀 광물 수출 통제, 한국으로 가는 물량 줄어
20일(현지시각) 영국 씽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중국이 희귀 광물 수출 통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한국의 방위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IISS는 중국의 세관인 해관총서(GACC) 집계 자료를 분석해 지난해 중국산 가공(wrought) 갈륨의 한국 수출이 2024년보다 97% 감소했다고 전했다.
가공 게르마늄의 한국 수출량도 2024년 257㎏에서 지난해 30㎏으로 대폭 감소했다.
갈륨은 레이다와 5G 통신 인프라 및 미사일 방어체계 등에 필수 소재로 꼽힌다. 게르마늄은 야간투시경과 열화상 카메라, 적외선 감지기 등에 쓰인다.
이러한 군사 무기에 들어가는 광물의 수출 제한으로 한국 방위 산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중국은 세계 광물 시장에 가진 장악력을 발판으로 2023년 7월 갈륨과 게르마늄에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세계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량 가운데 중국의 비중은 각각 98%와 60%로 나타났다.
이후 중국은 안티모니와 텅스텐 등 무기에 쓰이는 다른 광물까지 통제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 한국의 방위산업 수주액이 지난해 2024년보다 증가하며 반등하고 있다. <그래픽 챗GPT로 제작>
IISS는 특히 신속한 납품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던 한국 방위 산업이 중국의 광물 수출 통제 변수에 취약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광물 공급이 늦어지고 공급 부족으로 세계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면 무기 생산 기간이 길어지거나 원가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K디펜스모니터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한화를 비롯한 방산 기업이 수직통합 체계를 갖춰 서구 기업과 비교해 생산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내 희귀 광물 수출 기업이 자국 상무부에서 허가를 받기까지 적게는 6~7주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소요된다. 그 과정도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 방산 기업의 장점인 빠른 납기가 중국발 희귀 광물 수출 통제로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귀 광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방산 기업의 원가 상승 압박을 키우는 요소로 지목된다.
IISS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중국을 제외한 지역의 갈륨 가격은 ㎏당 1850달러(약 272만 원)로 수출 통제가 도입된 2023년 7월 당시와 비교해 550% 상승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게르마늄 가격 또한 2023년 7월 약 1400달러(약 200만 원)에서 올해 6월 6100달러(약 900만 원)로 336% 상승했다.
전차의 장갑과 철갑탄 등에 쓰이는 텅스텐 가격도 중국이 2025년 2월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한 이후 현재까지 약 557%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지난해 4월 6개월치 이상의 희귀 광물 비축량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현재까지도 희귀광물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 통제가 장기화하면 공급망 불확실성이 이어져 호황을 누리는 한국 방산에 불확실성을 높일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로이터는 중국산 희귀 광물 조달이 어려워지면 한국 방산 기업은 원가가 높아져 수출 가격 경쟁력이 저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 한화시스템이 2025년 8월5일 용인종합연구소에서 연 AESA 레이다 양산 1호기 출고식에서 AESA 레이다를 플랫폼 모사장치에 장착한 모습. <연합뉴스>
한국 방산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각국의 국방비 증액으로 최근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 방위 산업은 지난해 폴란드 K2 전차 2차 이행계약과 필리핀 FA-50 전투기 등을 포함해 수주액 154억 달러(약 22조6천억 원)를 기록했다.
한국 방산 수주액은 2023년 135억 달러에서 2024년 95억 달러로 주춤했다가 지난해 반등했는데 올해 중국의 희귀 광물 수출 통제 변수를 마주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산 광물 의존을 줄이고 희귀 광물 비축을 국가 차원에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5일 ‘희토류 공급망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 따라 희귀 광물 확보부터 생산 및 재활용에 이르는 생태계 구축에 투입할 25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
방산 기업 또한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한화그룹 방산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3년 미국 광물 제련 업체인 피닉스테일링스에 약 4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방산용 자석 소재의 탈중국 공급망 구축을 시도하려 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 국방부 산하 전략자본국은 지난 6월 피닉스테일링스의 희토류 정제 및 분리 공장에 최대 5억 달러(약 7360억 원)를 조건부로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산 희귀 광물 소재를 쓰지 않는 무기도 개발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하고 한화시스템이 시제업체로 참여해 개발한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다에는 비중국산 질화갈륨(GaN)이 들어간다. 질화갈륨은 질소와 갈륨으로 구성한 소재로 레이터의 탐지 거리를 늘리는 기능을 한다.
광물 기업에서도 국내 생산을 늘리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0월19일 울산 온산제련소에 557억 원을 투자해 갈륨 회수 공정을 신설해서 2028년 상반기 시운전 후 상업 가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온산제련소에 1400억 원 안팎의 자금을 투입해 게르마늄 생산 공장도 신설할 예정이다.
결국 중국이 방위 무기에 쓰이는 희귀 광물 수출을 계속 통제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관련 기업이 얼마나 자립도를 높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IISS는 “희귀 광물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시도가 당장 한국의 원자재 공급 위험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며 공급망 탈중국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바라봤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도 "중국이 희귀광물을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며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를 대체하려 해도 수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