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백브리핑] 시련 딛고 한화오션 품은 한화, KAI 인수 도전도 계속될 듯

▲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를 14년 만에 성공으로 바꾼 한화가 이제 KAI까지 품어 '한국판 록히드마틴' 구축을 노리고 있다. <한화>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2008년 한국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던 대우조선해양(지금의 한화오션)이 매물로 나왔다.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인수 의지가 가장 컸던 곳은 한화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대내외에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지를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그해 8월 전 계열사 대표와 임원이 참석한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김 회장은 "한화야말로 대우조선해양의 강력한 프로펠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세계 제1의 조선사이자 해양자원 개발회사로 도약시키기 위해 과감한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평가하는 한화는 최약체 후보였다. 특히 포스코와 GS가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시장에서는 인수전의 무게추가 컨소시엄 쪽으로 기운 것으로 봤다.

그런데 입찰 직전에 이변이 일어났다. 포스코와 GS가 제안 가격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컨소시엄이 깨졌고 입찰 자격마저 박탈당했다. 현대중공업은 애초 인수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입찰 가격을 높게 써내지 않았다. 결국 경영권 프리미엄을 크게 얹어 6조3천억 원 안팎의 가격을 적어낸 한화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화는 11월 산업은행과 주식양수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아울러 이행보증금(5%) 3150억 원도 납부했다.

그럼에도 당시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저지로 확인실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은 양해각서에 한 가지 조항을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확인실사를 하지 못하더라도 2008년 말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거래 종결 시한인 2009년 3월 말까지 한화 측에 책임이 없는 사유로 확인실사를 완료하지 못하면 최종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줬다.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어떻게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려 했던 한화는 이를 수용했다.

이 무렵 대외 여건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세계 경제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

한화는 이대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다가는 그룹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확인실사를 하지 못한 점, 대우조선해양의 자산가치 하락, 자금 조달 여건 악화에 따른 금융비용 급증 등을 이유로 산업은행에 매각대금 분할 납부와 확인실사 이후 최종 계약 체결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행보증금을 몰취했다.

한화는 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했고, 한화는 파기환송심을 통해 2500억 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첫 인연은 끝나는 듯했다. 산업은행과 소송전까지 벌였던 만큼 한화가 다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일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대우조선해양은 '한화오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화 계열사가 돼 있다. 한화는 첫 인수 시도 이후 14년이 지난 2022년 9월 산업은행의 재매각 입찰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인수를 최종 마무리했다. 한화의 자금 여력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지만 인수 이후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사업적 시너지를 보고 밀어붙인 결과였다.

한화오션은 이후 조선업 호황기를 맞아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방산 분야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한화로서는 무엇보다 해양 방산을 강화할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미국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에도 진출했다. 미국 안보 프로젝트 협력 강화를 통한 군함 사업 진출을 추진하는 등 한화오션은 방산업체로서 위상도 굳혀가고 있다.

지금 한화에는 새로운 타깃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바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한화는 육·해·공, 더 나아가 우주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적 수준의 종합 방위산업 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등 지상 무기체계와 항공기 엔진 생산을 담당하며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군사통신, 전투체계, 감시정찰 장비, AESA 레이더 등 첨단 국방 전자·IT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잠수함과 구축함 등 해양 특수선 건조 역량을 바탕으로 해군력 증강과 글로벌 해양방산 시장에서의 위상 강화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KAI까지 더해진다면 이른바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불릴 만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

KAI는 IMF 외환위기 직후 당시 대우중공업·삼성항공산업·현대우주항공 3사의 '항공사업 빅딜'을 통해 출범했다. 현재 최대주주는 수출입은행으로 지분 26.41%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경영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KAI는 KT-1 기본훈련기,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 FA-50 경공격기 등을 개발했고 수리온을 중심으로 한 헬기 분야에서도 많은 성과를 냈다.

2012년 정부가 KAI 민영화를 공식 추진했을 때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본입찰을 포기하면서 경쟁입찰 요건이 무너지자 정부는 매각 작업을 중단했다. 이후에도 KAI 매각설은 시장에 계속 나돌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매각 방침을 밝힌 적은 없다.

최근 KAI 매각 추진설이 급부상한 것은 한화의 지분 매입 때문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등을 인수하며 방산 사업을 확장해 온 한화는 지난해 10월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 KAI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의 지분까지 합치면 지분율은 12.44%에 이른다.

한화는 2015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인수한 뒤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보유하던 KAI 지분 10%를 매각했다. 그런데 약 7년 만에 다시 시장에서 지분 재매입에 적극 나서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화는 전략적 제휴와 시너지 창출을 지분 매수의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KAI 경영권 확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한다. 한화는 이미 지난 5월 KAI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 공시했다. 경영권 확보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한화가 KAI의 2대 주주에 머무르기 위해 조(兆) 단위 자금을 투입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정부가 향후 KAI 민영화에 나설 경우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일종의 '발판 매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한화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구체적인 매각 방침이 없는 상황에서 인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KAI와 사업적 접점이 많은 만큼 전략적 시너지를 위해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판 록히드마틴' 탄생 가능성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국가 안보를 특정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영국의 BAE시스템즈도 육·해·공을 아우르는 민간 종합 방산기업으로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과도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우려하는 쪽은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지적한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방산 역량이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국가 안보보다 기업의 이해관계가 우선될 가능성이 있고,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록히드마틴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전투기 개발은 다른 무기체계보다 훨씬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사업이다. 민간기업이 장기간의 사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가 전략사업 참여를 중단할 경우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안정적인 무기 개발 체계를 구축하려면 특정 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경쟁 구도를 유지해야 한다며, 한화가 KAI를 인수하더라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상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K-방산의 글로벌 시장 공략 강화를 위해서는 한화의 KAI 인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강하다. 정부는 2027년까지 글로벌 방산 수출 4대 강국(글로벌 점유율 5% 이상, 수출 200억 달러 이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방산기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규모 해외 수주에 대응하려면 종합 무기체계를 패키지로 제안할 수 있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산 무기는 엔진, 레이더, 항공전자, 유도무기, 위성, 정비체계 등 여러 분야의 기술과 인프라가 공동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육·해·공 무기체계를 함께 보유하면 전투기와 미사일, 방공망, 정비·교육 등을 묶은 패키지 수출에도 유리하다.

이 같은 산업적 특성 때문에 글로벌 방산업계에서는 1990년대부터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영국의 BAE시스템즈는 영국 내 주요 방산기업들을 잇달아 흡수한 데 이어 미국 방산기업까지 인수하며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방산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화는 올해 말까지 5천억 원을 추가 투입해 KAI 주식을 매입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한화의 KAI 지분율은 15.9%(15일 종가 기준)로 높아진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집단이 상장사 지분 15% 이상을 취득하면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현재 KAI의 최대주주는 수출입은행으로 26.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가 장내 매수만으로 정부 지분율을 넘어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한화는 향후 수출입은행이 공개매각을 추진할 경우 입찰에 참여해 경영권 확보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

수출입은행은 "아직은 매각을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장사 지분을 계속 보유하는 데 따른 부담은 존재한다. 주가 변동에 따른 손익이 자본에 반영되고 자산 건전성이 영향을 받으면 대출 여력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다만 매각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수출입은행이 아니라 정부다.

공개매각을 통해 한화가 수출입은행의 KAI 지분을 인수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도 적지 않다. 방위사업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고, 산업부는 승인에 앞서 방위사업청과 협의해야 한다. 방사청은 방산물자 조달과 국가 안보, 보안 요건 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산업부가 이를 반영해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한화가 이미 물밑에서 정부와 교감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살펴봤듯 한화는 시련을 딛고 결국 한화오션 인수에 성공했다. 과거에는 KAI 지분을 대거 매각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KAI를 원하고 있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KAI 인수를 향한 한화의 집요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