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인지과학 교수가 5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공동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바라본 기후 변화 대응과 인공지능(AI)의 공통점이다.
이는 지난 5일 개막한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정 교수가 개막작으로 다니엘 로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AI: 나는 어떻게 종말낙관주의자가 되었나'를 고른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개막작 공동 인터뷰는 관례상 감독이 나서지만 로허 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방한하지 못했다.
이에 공동집행위원장이자 AI 분야 전문가로서 정 교수가 공동 인터뷰에 나서 기후 변화 대응과 AI 규제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 사회가 생각해야 할 화두를 던졌다.
◆ 환경과 떼놓고 볼 수 없는 AI
정 교수가 고른 개막작 ‘AI: 나는 어떻게 종말낙관주의자가 되었나’는 아이를 가지게 된 로허 감독 부부가 AI에 관한 여러 소식들을 보게 되면서 만들어졌다.
로허 감독 부부는 AI가 빠른 속도로 무섭게 발전하고 있고 이대로 있다가는 언젠가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지게 됐다.
이에 로허 감독은 AI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하는데 제목에 나오는 '종말낙관주의자'라는 결론에 이른다.
종말낙관주의자란 종말적 위기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로허 감독 역시 결국 AI발전은 어떻게 하든 막을 수 없으며 단지 AI가 종말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인류가 합의해야 한다고 바라본다.
이와 관련해 정 교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AI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는 AI와 환경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AI는 지구의 이상기후를 예측하거나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전기 낭비를 줄이기도 하지만 막대한 전기를 사용해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유엔대학교 물·환경·보건연구소가 미국 현지시각 지난 3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는 AI 연산을 위한 데이터센터들이 연간 9조3천억 리터에 달하는 물과 945TWh에 달하는 막대한 전력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AI용 데이터센터가 약 13억 명의 인구가 마실 수 있는 물을 쓰고 한국이 매년 소비하는 전력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전기를 소비하게 되는 셈이다.
정 교수는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것에 AI의 기여도가 10, 20%라고 한다면 데이터센터 냉각이나 가동을 위한 전기를 쓰면서 만드는 문제는 두,세 배씩 커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AI를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지는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굉장히 심각한 이슈”라고 말했다.
◆ 기후위기와 닮은 꼴인 AI위기
로허 감독의 영화 말미를 보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AI 사용 규제를 각국 정부에 요구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현재 AI 개발에 나서고 있는 기업과 국가들은 ‘인공 일반 지능(AGI)'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이 AI경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AGI는 모든 인지 작업에서 인간의 능력과 같거나 능가할 수 있는 AI를 말한다.
영화에 나오는 샘 올트먼 오픈AI최고경영자는 AGI가 독재국가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을 사실상 종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 때문에 로허 감독 부부는 영화에서 AI를 인류 공통의 이익을 위해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과거에 시민사회가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세상이 파괴될 것을 우려하고 규제를 촉구하는 행동에 나섰던 것과 유사한 구도다.
정 교수는 “ 기후위기와 AI 이 두 가지 문제가 굉장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후위기처럼 AI도 자본이나 권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이 매우 뚜렷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후 변화가 실존하고 그 원인이 화석연료 사실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여러 차례 입증돼 있다. 그럼에도 화석연료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석유 메이저들과 그들의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화하고 논란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 변화를 부정적하면서 화석연료를 옹호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AI도 AGI에 도달했을 때 AI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이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지배적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매우 명확하다.
▲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제23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개막식. <환경재단>
정 교수는 “문제는 기후변화 대응처럼 AI도 결국 얻게 되는 단기적 이익과 그 이익을 얻을 주체는 매우 명확한 반면 그에 동반될 손실과 고통은 매우 먼 미래로 미뤄져 있고 광범위해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단기적 이익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개최된 유엔 기후총회들은 계속 단기적 이익과 손실 방지에 초점을 맞춰 필요한 만큼 기후 대응 합의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에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아래로 억제하기로 약속한 ‘파리협정’이 나왔는데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온상승의 주요 원인인 화석연료를 퇴출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정 교수는 AI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걸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이런 기후총회라는 게 비협조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에 잘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은 항상 크다”며 “AI같은 경우에는 특정 기업이 수혜 대상자인 만큼 더 타협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영화에서도 로허 감독이 결론을 내린 것처럼 시민들이 스스로 기후와 AI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서는 것밖에 없는 셈이다. 환경재단이 이번 개막작으로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것도 시민들에 이 문제를 알리고 함께 고민해보기 위한 의도를 담았다.
정 교수는 “AI와 관련된 환경 문제들이 시민들 사이에서 좀 이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았다”며 “이것들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자 개막작으로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