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AI가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도록 조처한 것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오픈AI가 그동안 한글과 한국 이용자들을 차별해온 것을 질타부터 하는 게 순서상 맞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오픈AI는 '챗GPT가 한컴오피스 '한글'에서 사용되는 대표 문서 형식인 hwp와 hwpx 파일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오픈AI가 지난 17일 배포한 보도자료 들머리다. 이어 '이에 따라 국내 사용자들은 별도의 파일 변환 없이 한글 문서를 직접 업로드해 내용을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알렸다.
'챗GPT 한글 hwp.hwpx 지원', '챗GPT서 한글 문서 쓴다', '챗GPT의 한국어 장벽 허물기', 'MS·구글도 외면했던 'hwp'…챗GPT는 품었다', '별도 파일 변환 없이 챗GPT에 hwp·hwpx 문서 업로드 가능' 등 갖가지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환영 일색이다. 'AI 업계 들썩' 제목의 기사도 보인다. 오픈AI의 '결단'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다만, 한글 문서편집기 '한글'을 공급하는 한글과컴퓨터(한컴)의 표정은 시큰둥하다.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이냐는 듯한 반응이 역력하다.
한컴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제라도 지원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이제서야 지원이 된 것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찌 됐든, 앞으로 '한글이 AI 기술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거나 '한글 탓에 한국이 AI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다' 등의 소리를 듣지 않게 된 점은 반긴다.
27일 한컴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오픈AI의 이번 조치는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로 작성된(확장자로 hwp·hwpx가 달린) 문서가 열리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네이버가 검색 사이트(네이버)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게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동안에는 챗GPT 사이트에서는 한글 문서가 열리지 않았다. 이를 불편해했던 챗GPT 이용자 쪽에서는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이는 챗GPT 서비스 시작 때부터 이미 이뤄졌어야 할 일이다. 그동안 이렇게 안 했다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한글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와 경쟁해 살아남은 세계 유일 문서편집기다. 한글 창제 원리를 가장 잘 살리고, 한글 꼴을 가장 아름답게 구현하며, 한글 문서를 가장 멋지게 만들 수 있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런 점을 살펴, 공식 문서를 한글로 만들고, 저장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과 국외 교포 등 한글로 문서를 작성·저장하는 사람들은 오픈AI가 그동안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게 한 것에 찬사를 보내기에 앞서,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게 순서 상 맞다.
IT 기술 발전 과정에서는 후발 주자(나중에 등장하거나 출시된 게)가 선발 주자를 지원하거나, 결과물 간 호환되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고, 상도의 상으로도 맞다.
하지만 그동안 글로벌 'AI 진영'은 이를 등졌고, 국내에선 엉뚱하게 한글에 뭇매를 가했다. 한글이 우리나라 AI 이용 대중화를 가로막고, 우리나라를 AI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다고 힐난했다.
글로벌 AI 사업자들이 한글 지원을 외면하고, 생성형 AI의 한글 문서 학습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한글 탓으로 돌린 것이다. 미국 사대주의자들이 '한국이 영어가 아니라 한글을 써 글로벌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까지 합세했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언급하며 '해결'을 주문했다.
연장선일까.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지난 24일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AI 시대 필수 과제인 개방형 포맷 전환 가속화를 위해 실제 문서가 유통되는 핵심 채널에서 AI 인식 효율이 낮은 hwp 파일의 첨부를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온나라시스템, 온메일, 공직자 통합메일을 적용 대상으로 꼽았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는 보도자료에서 "최근 오픈AI가 챗GPT의 hwp 파일 읽기 지원을 밝히는 등 한글 문서의 활용성이 일부 개선되고 있으나, hwp 파일은 개방형 포맷인 hwpx와 달리 AI가 내부 정보를 분석하고 학습하기 어려운 폐쇄형 구조를 지니고 있어, 여전히 AI 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국가AI전략위 데이터 분과에서 공공 부문에서부터 유통채널 내 hwpx가 아닌 hwp 파일의 첨부를 원천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국가인공지능전략위는 지난 3월31일 임문영 부위원장 주재로 행정안전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와 긴급회의를 갖고 이 의견을 정식 제안했으며, 이후 불과 20여 일 만에 행안부와 문체부가 세부 조치 계획과 구체적 일정을 수립하며, 속도감 있는 실행에 나섰다"고 했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챗GPT가 한글 문서에 담긴 텍스트·표·사진 등 속의 의미를 파악해 학습하는 것과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오픈AI의 이번 조처로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지 않았던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챗GPT의 한글 문서(hwp) 내용 인식률이 높아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굳이 표현하자면, 챗GPT 사이트에 한글 문서 보기(뷰어) 기능이 추가된 꼴"이라고 말했다.
한컴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hwp 문서는 비개방형이라 AI 인식률이 떨어진다. 개방형 규격인 hwpx 규격으로 전환해줘야 제대로 학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오픈AI가 이 부분을 어떻게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생성형 AI 측에서 보면, hwp는 비개방형 규격이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 설명을 빌면, '폐쇄형 구조'를 갖고 있다. 생성형 AI 등장 훨씬 전부터 사용돼와서다. 문서 모양과 문서 속 표과 그림 등을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에서 폐쇄성이 더 짙어졌다.
AI 등 새로운 기술 흐름에 따라 개방형 규격(hwpx)이 추가됐다. hwpx 문서는 AI 인식률이 높다. 한컴은 비개방형을 기본(디폴트)으로 하고 개방형을 선택하게 했다가, 5년 전쯤부터는 개방형을 기본으로 하고 비개방형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바꿨다.
▲ 오픈AI가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도록 조처한 것을 계기로 hwp 문서의 AI 인식률도 높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이런 상황은 어도비의 피디에프(pdf) 등 다른 규격 문서도 같다. 초기 버전 프로그램으로 작성된 문서는 AI 인식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라면 그동안 챗GPT 사이트에서 워드와 피디에프 문서는 열리고, 한글 문서는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픈AI는 이제서야 뒤늦게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도 열어볼 수 있게 했다.
구글 '제미나이' 사이트에서는 챗GPT보다 앞서 한글 문서가 열렸다. 물론 제미나이 사이트도 처음부터 한글 문서를 볼 수 있게 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오픈AI와 구글 등이 MS 워드를 우대했거나 한글을 차별한 셈이다.
한글은 그동안 AI 서비스 사이트에서 열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부 언론과 정치인 등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그럼 챗GPT 사이트는 왜 그동안 한글을 지원하지 않았고, 이번에 갑자기 지원하기로 한 걸까.
오픈AI 측에 물었다.
"특별한 배경은 없다. 오픈AI는 한국인들을 위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이번 hwp 문서 지원도 진행했다."
이게 전부다.
결국 업계에서 제기되는 '음모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오픈AI는 2019년부터 MS와 투자·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MS 제품에 오픈AI의 챗GPT 기술이 채택되기도 했다.
물론 오픈AI가 자체 서비스에 나서며, 한편으로는 오픈AI와 MS 사이에 경쟁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검색 등 일부 서비스가 시장에서 겹친다. 실제 MS는 2024년 연례보고서에서 오픈AI를 경쟁자로 언급하기도 했다.
MS는 1990년대부터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다. 한글이 워드의 경쟁자로 살아남아있는 것을 무척이나 못마땅해 했다.
시장에서 한글을 치워버리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쓰기도 했다. 최고경영자 방한과 업그레이드 프로모션 등을 명분으로 워드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한컴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오픈AI가 투자·협력 파트너 MS를 도와 한글을 홀대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챗GPT 사이트에서 한글 문서가 열리게 하는 게 기술적으로 크게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
물론 오픈AI가 개발 자원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글이 자연스럽게 배제됐을 수도 있다. 기술 개발 효율을 중시하다 보면, 한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한글 문서 형식까지 찾아서 지원할 여유를 갖지 못했을 수 있다.
구글 제미나이가 초기에는 한글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AI 서비스 대중화 흐름이 빨라지며 시장이 커지고, 오픈AI·구글·앤트로픽 등 사업자 간에 AI 생태계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각 AI 서비스별 이용자 점유율과 증감 추이가 집계·발표되고, 이게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모두의 AI 시대를 열어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부상하고, AI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며 정부가 AI 예산을 대거 풀어내는 한국 시장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엔비디아가 AI 신기술 공개 행사를 한국에서 연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업체는 지난 21~22일 서울 디캠프 마포(d·camp)에서 '엔비디아 네모트론 디벨로퍼 데이즈 서울 2026'(NVIDIA Nemotron Developer Days Seoul 2026)을 열었다.
돌아보면, 한글은 '죄'가 없었다. AI 기술 개발의 걸림돌이 되지도 않았고, 우리나라를 'AI 갈라파고스'로 만들지도 않았다. 뭇매를 가하려면 한글 문서를 지원하지 않은 오픈AI와 구글 등을 대상으로 했어야 하고, 한글 문서와 워드 문서를 똑같이 취급하는 해결책을 주문했어야 했다.
오픈AI가 뒤늦게 한글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언론 보도와 정부 태도를 두고도, 그동안 한글을 홀대해 한국 이용자를 불편하게 만든 점은 짚지 않고, 오픈AI가 한글과 한국 이용자에게 큰 시혜를 베푼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문제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가인공지능전략위·행안부·문체부의 'AI 시대 개방형 포맷 전환을 위한 '협력·속도·실행' 박차' 발표 보도자료를 두고도 뒷말이 많다. AI 인식률이 떨어지기는 doc 규격 문서와 초기 버전 pdf 문서도 마찬가지인데, 첨부 제한 대상으로 'hwp 파일'만 언급해 한글이 AI 기술 발전의 걸림돌이란 잘못된 인식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참 얄궂다.
전자정부와 국가 정보화를 앞세운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며 MS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사용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한컴 오피스에도 이 기능이 있는데 왜 굳이 MS 것으로 하느냐', 'MS 오피스를 쓰라고 지침을 주는 것이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토종 소프트웨어를 홀대하는 수위로 치자면 이번이 더 심했다. 이런 부류들이 다음에는 '소버린(주권적) AI'를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