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부가 기후변화센터, 클리마투스 컬리지와 함께 ‘2023년 기후환경변화 대응 청년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7일 서울 종로 JCC크리에이티브센터에서 열린 행사 모습. 맨 왼쪽부터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오준 전 유엔 대사,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박사.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만약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온실가스 감축도 우리나라가 같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청중 가운데 한 청년이 질문했다. 오준 전 유엔 대사(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가 답했다.
"북한의 온실가스 감축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세계 20대 배출국에 들어가는 한국이 감축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겁니다.”
북한 인권과 기후변화 문제를 한 번에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7일 저녁 통일부가 기후변화센터, 클리마투스 컬리지와 함께 서울 종로 JCC크리에이티브센터에서 연 ‘2023년 기후환경변화 대응 청년 토크콘서트’ 자리였다.
현장에는 오준 전 유엔 대사,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박사가 연사로 참석했다. 주요 청중으로는 서울시내 소재 대학 재학생들 등 청년들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 변화와 북한 지역의 기후위기에 관해 기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공유됐다. 북한의 온실가스 감축 선언, 식량 부족을 심화시키고 있는 북한의 가뭄과 폭우, 청년들에겐 낯선 북한 주민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북한의 인권’을 주제로 발표한 오준 전 대사는 2021년 유엔 주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관한 고위급정치포럼(HLPF)에 북한이 6년 만에 참석했던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북한은 자발적 국가별 검토 보고서(VNR)를 공개하면서 이례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에 '문제'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대표로 나온 북한 대사가 '문제'로 언급한 것은 코로나로 인한 방역과 대북제재였다.
오 대사는 “북한은 이런 상황이 오면 본인들이 사는 나라가 사회주의 낙원이라 어떤 문제도 없다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인 시각인데 이때는 달랐다”며 “북한은 자국이 이때 지속가능한 발전에 있어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때 2030년까지 8%의 온실가스 감축을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또 다른 나라들처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에 오 전 대사는 “(북한에는) 미안한 얘기지만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사실 세계 20대 주요 배출국의 문제”라며 "그 외 나머지 170개국은 줄여도 그만 안 줄여도 그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오 대사가 공유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세계 20대 주요 배출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전체의 79%를 차지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북한보다는 한국에 더 큰 문제라는 게 오 전 대사의 평가였다.
그는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까지 줄이기로 약속했는데 이것이 지켜지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며 “지금부터 모든 석탄발전소 문을 닫기 시작해도 모자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2030년까지는 7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약속한 2050년까지는 고작 27년 남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강연하는 오준 제24대 주유엔대표부 특명전권대사. <비즈니스포스트> |
‘기후위기 시대의 북한 주민의 삶’을 주제로 발표한 김영자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주요 청중인 청년들에게는 낯선 북한 주민의 삶을 전했다.
1천여 명이 넘는 탈북 난민들을 구출하고 생활 안정을 도와 올해 9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김 국장은 "최근 들어 북한의 식량 위기가 점점 더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에 있는 연락책들을 통해 공유받은 상황이라고 했다.
북한 정권은 이에 따른 주민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철조망을 세우고 공개처형을 확대하는 등 강경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탈출 후 사람들이 없는 백두산 산기슭에 숨어 살다 구출된 일가족 이야기도 들려줬다. 이들은 중국 공안에 발각돼 송환되지 않기 위해 숨어 살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구출 당시 김 국장이 “어째서 이런 생활을 몇 년씩이나 한 것이냐”고 묻자 일가족은 “그게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 국장은 이러한 실상을 공유하며 “우리는 항상 내가 그들(북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는 사람들,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속뜻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청중인 청년들에게는 북한은 여전히 다른 외국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먼 나라로 느껴지는 듯했다.
“혹시 꽃제비가 뭔지 아시냐"는 김 국장의 질문에 청년들은 고개를 젓거나 아예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국장은 이에 "꽃제비가 무엇인지는 김 박사님이 더 잘 설명해주실 것”이라며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박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 강연하는 김혁 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박사. <비즈니스포스트> |
김혁 박사는 “꽃제비는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부랑자들을 지칭하는 속어로 주로 북한에서 어린 거지나 노숙자들을 지칭할 때 쓰인다, 저도 북한 출신이라 잘 안다”고 말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탈북 난민 출신으로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김 박사는 고난의 행군 당시 식량 위기로 아버지를 잃고 2001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현재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북한의 식량 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맡고 있다.
북한의 식량 상황과 관련 그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은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각종 산업과 주민들의 생활을 위해 식량을 최소 600만 톤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생산한 식량은 매년 평균 450만~500만 톤으로 추정됐다. 매년 100만~150만 톤의 식량이 부족한 셈이다.
특히 가뭄과 폭우 피해가 컸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북한 강수량 분포를 집계한 결과 북한은 1년에 걸쳐 홍수과 가뭄이 바꿔가며 발생하는 이상기후를 겪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 평균 강수량 912mm 가운데 543mm가 여름에, 특히 444mm는 7~8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에는 홍수가 터지고 그외에 나머지 기간에는 가뭄이 찾아오는 셈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북한은 남한의 두 배가 넘는 2만3천 개의 양수장 설비를 건설했지만 문제는 전력난이었다.
김 박사는 “북한은 전력이 없어서 이들을 대부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제로 북한 전력의 대부분은 평양과 같은 대도시나 핵신 산업 공장들로 공급되다 보니 이들이 필요한 전력의 30%만이 공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북한은 주력 생산 작물을 옥수수에서 쌀로 변경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전환 역시 여의치는 않은 상황이다. 쌀을 경작할 수 있는 기후지대가 넓어지고는 있지만 물 공급 시설 부족과 이상기후가 쌀 생산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후지대의 변화는 북한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며 “당장 남한만 봐도 제가 귀화했을 당시에는 나주 배가 유명했는데 기후가 바뀐 지금은 나주 배는 영 별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과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기후에 영향을 덜 미치는 우수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고 북한은 기후지대 변화에 따른 우리가 생산하기 어렵거나 하지 못하는 작물을 생산해 교류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식량 안보를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