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20일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세 번째 생일을 맞은 판다 푸바오가 사육사들이 준비한 대나무 케이크 옆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에버랜드에 사는 판다 가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특히 새끼 판다인 푸바오는 세상에 태어난 지 1년 후인 2021년에 돌잔치까지 열렸다. 돌잡이가 놓인 상에다가 나무 미끄럼틀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면서 일약 동물 세계의 아이돌로 급부상했다. 그뿐인가. 사육사가 푸바오의 사진을 넣어 펴낸 포토북도 당당하게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아마도 최근에 태어난 쌍둥이 동생들까지 비슷한 인기와 사랑을 얻을 듯하다.
내가 판다와 관련해 이토록 자세한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가 차마 웃고 넘어가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 친구의 딸이 명문대를 졸업한 뒤 취직하기 위해 자격증 스터디를 하고 있단다. 대학 들어갈 때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좋은 시절은 몇 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또 다시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앉아서 공부만 한다니 얼마나 괴로울까.
스터디를 하는 청춘들끼리 밥을 먹다가 우연히 푸바오 얘기가 나왔나 보다. 그때 누군가 질문을 했단다.
“다음에 또 태어난다면 판다야, 사람이야?”
놀랍게도 겨우 몇 명만 제외하고는 친구 딸을 포함해서 죄다 판다로 태어나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나. 그 말을 전하는 친구도 그 얘기를 듣는 우리도 마냥 배를 잡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만큼 사람으로 사는 일이 힘들다는 말 아닌가. 가장 싱싱하고 아름다울 나이에.
이 이야기는 비슷한 나이의 자식을 둔 부모들의 훈훈하고 희망찬 덕담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자격증 따고 좋은 회사에 취직만 돼봐. 판다 따위는 싹 잊어버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싶을걸?”
누가 봐도 부러운 학벌과 기다려 줄 든든한 부모를 두었으니 친구의 딸만 해도 꽤 비빌 만한 언덕을 몇 개 가진 셈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농담’이라도 나눌 여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조금만 참고 견뎌라”라거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우리 세대의 경구를 함부로 남발하면 안 될 듯하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서 원하던 곳에 취직이 되더라도 다른 차원의 시커먼 터널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서이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00년생 새내기 교사가 죽음을 선택했다.
학부모들이 모이는 자리에 강연을 나가면 종종 ‘대학의 의미’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이나 지혜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전 단계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문제는 졸업을 해도, 취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들은 여전히 대입에 엄청난 땀과 시간, 비용을 투자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은가. 만약 대학의 대안으로서, 일찌감치 취업을 택하고자 특성화 고교를 선택한다면 해결책이 될까.
2023년 초에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니 그들의 현실은 더 절박하고 처참하기만 하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현장 실습’이란 명목으로 일단 취업을 한다. 성인도 하기 힘든 일들을 감수하면서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사회로 내던져진다.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과장된 픽션 아니냐고? 2017년, 콜센터(해지 방어 팀)에서 일하던 전주의 한 고등학생이 저수지에 스스로 몸을 던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한 고등학생의 어이없는 죽음을 앞에 두고, 주위 어른들 누구 하나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담임선생이나 부모는 “원래 사회생활이란 냉혹하다”라든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잘 될 거야”처럼,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조언만 할 뿐이다.
아이가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점이 가장 힘든지 귀를 열고 한 번만 들어줬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사안은 따로 있다. 학교나 교육청, 그리고 직장 상사들처럼, 소희의 죽음을 불량스러운 태도, 일에 대한 미숙함 또는 우울증 같은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마무리하려는 태도다.
최근 요한 하리가 쓴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었는데, 책에서는 그런 태도를 가리켜 ‘잔혹한 낙관주의’라고 비판했다. ‘우리 문화나 제도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거대한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언어로 단순한 개인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처음에는 친절하고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종종 추악한 여파를 미친다. 잔혹한 낙관주의는 이 작고 얄팍한 해결책이 실패할 때 개인이 시스템을 탓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개인은 자신이 일을 다 망쳤다고, 자신이 못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로널드는 이러한 관점이 과로 같은 ‘스트레스의 사회 원인에서 주의를 돌리게’ 하고, 순식간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중에서)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면 잘못된 제도나 시스템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개인의 무고한 희생만 잇따른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아무런 질적 성장이나 긍정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음 소희'의 또 다른 주인공 형사 유진이 교육청까지 찾아가 수사 방향을 넓히지만 무기력하다. “이제 교육부로 가실래요? 적당히 하십시다”라는 장학사의 대응에 절망을 감추지 못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은 전혀 소용없는 짓인가.
영화는 아무런 진전도, 희망도 없이 끝나버리지만, 현실에서는 그나마 성과를 거두었다.
2021년 10월 또 현장실습 중 잠수 작업을 하던 홍정운 군이 사망했고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이 발의되었지만 흐지부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음 소희'가 개봉되면서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자 급진전이 되어, 현장실습생을 보호하는 개정안이 2023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를 우리가 꼭 챙겨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잇따른 또 다른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막연하고 모호한 모토는 나조차도 듣기 지겹다.
단 하나라도 작은 변화라도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제도를 마련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국가의 의지가 필요하다.
작가의 상상력을 가동시켜 보라고? 20~22세 모든 청년들이 일할 걱정, 돈 벌 걱정을 잠시 내려놓도록 생계를 지원하면서, 자연과 벗 삼으며 미래를 설계하고 심신을 단련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평생에 한 번뿐인 ‘젊은이 패스’를 지급하는 것이다.
헉! 어쩐지 군대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아서라, 드라마 'D.P'를 보니 거기는 또 다른 끔찍한 지옥이더구먼. 마녀체력
작가 이영미는 이제 ‘마녀체력’이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27년간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살았다. 한국 출판계에서 처음으로 대편집자란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지만, 갈수록 몸은 저질체력이 되어 갔다.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15년간 트라이애슬론으로 꾸준히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 경험담을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주제로 묶어 내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출판 에디터에서 작가로 변신했으며 <마녀체력> <마녀엄마> <걷기의 말들>을 썼다. 유튜브 지식강연 '세바시'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대중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