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매각과정에서 ‘승자의 저주’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이 지금의 사태에 이른 근본적 원인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무리한 인수합병에 따른 승자의 저주에 있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른 시일 안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25일 전까지 구체적 자금 지원 규모와 방식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채권단의 지원방식이 확정되면 매각절차가 바로 시작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매각 과정에서는 매각주체인 금호산업과 함께 산업은행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공개적으로 인수의사를 밝힌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한화그룹과 SK그룹은 물론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등 유통기업까지 인수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호남지역에 연고를 뒀다는 점에서 호반건설도 거명된다. 또 박 전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호남기업의 명맥을 잇고 가업도 지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인수후보를 고를 때 무엇보다 ‘자금력’을 우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순히 입찰에서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자금력과 의지를 품고 있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볼 가능성이 크다.
과거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 인수전에서 승리했던 기업들이 이후를 감당하지 못하고 승자의 저주에 빠진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과거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2006년과 2008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10조 원을 넘게 썼고 그 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결과는 혹독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토해냈을 뿐 아니라 그룹의 주축이던 금호타이어에 이어 이제 아시아나항공까지 내주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면 1조 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18일 종가 기준으로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3.5%의 가치는 5천억 원을 조금 넘는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과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등 자회사의 가치까지 더하면 인수가격이 훌쩍 뛸 수 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추가 자금 투입도 불가피하다. 아시아나항공의 전체 차입금은 3조6천억원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올해 갚아야 하는 돈만 1조 원을 넘는다.
이번 매각은 구주 매각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유상증자 규모만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인수전을 직접 챙기면서 당장 인수가격을 높이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꾸준한 지원 의지를 더 높이 살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 매각대금이 산업은행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산업은행이 보유한 채권 규모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동걸 회장도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당장의 자금 회수보다는 기업의 경쟁력을 우선해 왔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실질적으로 당장 산업은행에 들어오는 돈은 없다.
이 회장이 여러 차례 ‘어떤 인수자가 아시아나항공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이유에서 호남기업이라는 점도 인수전에서 전혀 이득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유화학과 호반건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두 회사 모두 호남에 기반을 뒀다는 점에서 인수 가능성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다만 이 회장으로선 기업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인수전 참가를 아예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점은 더욱 달갑지 않다. 이 회장이 기자들과 만나 아시아나항공이 매력적 매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일부 적자 노선은 조정할 필요가 있지만 조금만 보완되면 상당한 흑자를 낼 수 있는 매력적 회사”라며 “인수자는 부채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 증자를 통해 확충하면 되고 또 그 부분은 회사 정상화에 활용되기 때문에 인수자에게 매력적 투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