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업뿐 아니라 일반기업에서도 사외이사 영입에 객관적 절차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형 헤드헌팅회사를 중심으로 기업들의 사외이사 추천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사외이사제도는 외부 전문가를 통해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하라는 취지로 도입되었지만 경영진과 대주주가 동일할 때가 많다 보니 경영진의 의견을 지지해 줄 사람이 사외이사로 선임될 때가 자주 있어왔다.
이런 부작용을 고치려고 최근 정부는 사외이사 선출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9일 비즈니스포스트는 최근 사외이사 추천 의뢰를 많이 받고 있는 한국 최대 헤드헌팅회사 커리어케어의 전문 컨설턴트들을 만나 기업들의 사외이사 선임 현황을 들었다.
이 자리에는 이용환 전무(Finance&Convergence 부문장), 우경아 상무(Consumer&Life 부문장), 이진영 상무(Finance&Digital 부문장)가 참석했다.
- 최근 재계의 사외이사 채용 관련한 이슈들을 간단히 얘기해 달라.
이용환 “과거에는 기업에 집행임원들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집행임원만 수십 명이었다.
감독당국은 집행임원을 줄이고 사외이사가 기업 감사업무를 강화하라는 취지에서 사외이사제도 도입을 독려해 왔다. 지금은 시중은행에도 집행임원은 행장, 감사, 부행장 정도이고 사외이사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제까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절차에 아무 제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제도의 형식은 있지만 어떤 절차를 거쳐 선출하는지에 제한이 없었고 누구도 관여하지 않았다.
기업에서 실권자인 경영자가 입맛에 맞게 임의로 선임했다. 이들로 임원추천위원회, 평가보상위원회, 리스크위원회, 감사위원회를 다 꾸리면 경영자의 회사경영에 누구도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가 없다.
최근 감독기관은 사외이사 선임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하고, 평가점수도 공개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 요즘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 체감하는 변화가 있는지?
이진영 “확실히 기업의 사외이사 추천 요청과 평판조회 의뢰가 많이 늘었다.
지주회사는 물론 계열사들까지 모두 사외이사 추천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고 시중은행뿐 아니라 지방은행, 중견규모의 기업도 문의가 많다.”
우경아 “소비재와 서비스분야 기업들은 금융기업들처럼 헤드헌팅회사 같은 외부 전문기관을 이용해서 추천을 받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개 절차적 측면을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에 치중하고 있다.”
이용환 “맞다. 금융기업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일반기업이 뒤따라 가고 있다.”
우경아 “일반기업들도 금융기업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사외이사를 추천할 때 어려운 점은?
이진영 “상법의 요건에 맞는 후보자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조건이 많기 때문에 수 많은 후보자를 일일이 확인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우경아 “여러 요건 중에 독립성이 제일 어렵다.
사외이사를 찾는 기업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주 작은 거래관계라도 문제가 된다.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외부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데 거래관계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 회사에 근무했던 사람은 제외된다.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을 제외하고 나면 결국 교수밖에 안 남는다. 과거에 자격요건에서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선임했지만, 요새는 자격요건에 맞춰 정확하게 선임하는 추세다.”
- 법에서 정하는 조건 외에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이 있다면?
이진영 “여성과 외국인 비율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적합한 여성 후보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 비율을 필수적으로 맞추려다 보면 오히려 역차별이 생기는 분야도 있다.”
이용환 “출신 구성도 다양하게 본다. 적게는 3가지부터 많게는 10가지까지 전문분야마다 각각 교수, 법조인, 금융 등 다양한 출신후보를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이진영 “나이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아야 한다. 요새는 CEO, 회장, 사장들이 예전만큼 나이가 많지 않다. 디지털분야의 사외이사를 찾는데 대상자들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꺼려질 때도 있다.”
이용환 “금융회사 사외이사는 대관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그 외에 산업별 기준은 없고 회사마다 제각각이다. 회사 규모가 클수록 원하는 사외이사의 수준도 영향력 있는 저명인사를 찾는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외이사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명인사, 어디 최고위원장과 같은 분들을 선임하려고 한다.
- 후보자들의 반응은 우호적일 것 같다.
이용환 “사외이사는 명예로운 보직이다. 기업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본업과 병행할 수 있다. 또 등기이사다. 누가 마다하겠는가.”
우경아 “싫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후보자에게 의뢰한 기업을 밝히지 못할 때가 많다.”
이용환 “기업명을 밝히고 진행했다가 선임되지 못하면 후보자와 해당기업 간 사이가 나빠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명 대신 산업분야에서 위상 정도만 밝힌다.
후보자들 중에서 스스로가 업계 vip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기업명을 밝히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
- 사외이사 추천 업무와 평판조회 업무는 다른가?
이진영 “다르다. 추천한 사람이 평판조회도 하는 건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나.
따라서 사외이사 추천과 사외이사 평판조회를 각각 다른 기관에 의뢰하는 때가 많다.”
이용환 “금융회사는 사외이사 추천을 주로 의뢰하는 편이고 일반기업들은 기업문화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리스트보다는 평판조회를 의뢰할 때가 더 많다.”
- 사외이사 평판조회와 일반적 평판조회는 차이가 있는가?
우경아 “일반적 평판조회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좀 더 까다롭고 예민한 부분이 있다.
사외이사는 도덕적 윤리적 흠결이 절대 있어선 안 된다. 대주주와 관계, 정치색, 지연, 학연. 관련된 경험이나 지식 등 고려해야 할 기준들이 굉장히 많고 또 기업마다 다양하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구설에 오르지 않을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제도가 어떻게 자리잡아 갈 것이라고 보나?
우경아 “큰 흐름은 사외이사제도의 본래 취지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사외이사 선임절차를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인을 추천할 때가 많았지만 대체로 그런 관행은 없어질 것이다. 자격요건에 맞춰 객관적 절차로 선임할 것이다.”
이진영 “기업들은 사외이사제도를 임의로 선임하고 불투명하게 운영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임명절차부터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임명에 대한 객관성이 강해지고 시비거리가 없어진다.”
이용환 “동의한다. 사외이사를 알음알음으로 영입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대외적으로 투명한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
감독기관도 아직까지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한 취지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머지 않아 사외이사와 관련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이다.
또 앞으로 후보자의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이다. 사회적으로 투명성이 많이 요구되고 있어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선임했다가 구설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오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