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서울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인허가 권한을 기초자치단체장에게 넘기는 제도 개선에 나선다. 

서울시가 쥐고 있는 정비사업 초기 단계 권한을 자치구로 분산해 민간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권한을 약화하려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서울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비사업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간 충돌이 벌어지는 셈이다. 
 
당정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 '첫 관문' 구청장에 넘긴다, 오세훈 서울시와 충돌 불가피

▲ 한성숙 국무총리(뒷줄 맨 오른쪽)가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당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부터 한 총리,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24일 여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민주당과 정부는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의 인허가 권한을 기초단체장에게 이양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질하고 국회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날인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고위당정 결과 브리핑을 열고 “서울시 구청장들의 요구 등을 종합해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에 대해 기초단체장에게 권한을 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하겠다”며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어 “서울시 25개 구청장이 다 (권한 이양을) 원한다고 한다”며 “500세대 이하의 경우 기초단체장들이 (재개발·재건축) 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민간 재개발·재건축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당정이 추진하는 제도개편의 실질적 핵심은 재개발·재건축의 ‘첫 관문’인 정비구역 지정 단계의 권한을 서울시장에서 기초단체장으로 내려보내는 데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8조에 따르면 특별시에서는 특별시장이 정비구역을 지정한다. 그 이전에 자치구 구청장은 정비계획을 입안해 서울시장에게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주민 제안 등 → 구청의 정비계획 입안 → 주민공람·구의회 의견청취 등 → 구청장이 서울시장에게 정비구역 지정 신청 →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등 심의 → 서울시장이 정비계획 결정·정비구역 지정 등의 과정을 거친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 추진위원회 승인과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계획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은 구청장이 담당한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500세대 이하 사업은 자치구가 정비계획 수립부터 정비구역 지정, 이후 인허가까지 모두 연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여권과 자치구 쪽에서는 서울시에 집중된 정비구역 심의·지정 절차가 정비사업 초기 단계의 병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서울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472곳 가운데 정비구역 지정 단계가 54곳, 추진위원회 설립 단계가 61곳, 조합설립 단계가 119곳으로 전체의 49%가 초기 단계에 머물렀다. 착공 단계를 넘어선 사업장은 60곳으로 전체의 12.7%에 불과했다. 

이번 권한 이양 요구는 고위당정에서 갑자기 등장한 카드는 아니다.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올해 4월29일 재개발·재건축 공약을 발표하면서 500세대 미만 정비구역의 지정 권한을 자치구로 이양하고 정비사업 기간을 현재 15년 안팎에서 10년 이내로 줄이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이후 민주당 소속 구청장들을 중심으로 권한 이양 요구가 이어졌다. 류삼영 동작구청장은 지난 12일 제203차 서울시구청장협의회 정기회의에서 ‘정비구역 지정 및 변경에 대한 자치구 권한 이양’을 정식 안건으로 제출했다. 류 구청장이 제안한 방안에는 500세대 미만 소규모 사업의 정비구역 지정권을 자치구에 위임하고 자치구가 자체 처리할 수 있는 변경사항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반면 서울시는 500세대 이하 사업 권한 이양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당정 500세대 이하 재개발·재건축 '첫 관문' 구청장에 넘긴다, 오세훈 서울시와 충돌 불가피

▲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서울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열린 K-문화 스테이션 개장식에 참석해 설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24일 입장문을 통해 “서울의 정비사업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구호일 뿐”이라며 “서울에서 추진 중인 정비사업의 규모와 실제 인허가 절차를 감안하면 500세대 이하 사업의 권한을 자치구로 이양한다고 해서 주택공급이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거나 사업 기간이 단축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어 “서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거대 생활권”이라며 “구역지정 권한을 자치구에 이양한다면 서울시 상위계획과의 정합성이 저하되고 자치구별 개별 정비사업에 따라 잣대가 달라져 도시 관리 정책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담당하는 2개 심의에 걸리는 기간은 약 4개월로 전체 정비사업 기간을 12년으로 볼 때 2.7% 수준이다. 또 현재 서울에서 추진 중인 500세대 이하 정비사업 193곳 가운데 구역지정 단계에 있는 사업은 31곳으로 16%다.

국민의힘은 이번 권한 이양이 정비사업 효율화를 넘어 서울시와 자치구 사이의 정치적 권한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6·3 지방선거 결과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민주당이 17곳, 국민의힘이 8곳의 구청장을 차지했고 서울시의회에서도 민주당이 전체 118석 가운데 81석, 국민의힘이 37석을 확보했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정을 이끌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와 시의회에서는 민주당이 우위를 차지한 구조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정부·여당이 500세대 이하 주택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인허가 권한을 기초단체장에게 이양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서울시를 패싱하고 주택공급 정책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던 정부가 자성 대신 완력을 휘둘렀다”며 “이번엔 아예 서울시장의 인허가 권한 자체를 구청장들에게 넘기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논의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정은 고위당정에서 정기국회와 예산안 심사 일정에 맞춰 민생·개혁 및 국정과제 법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입법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