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국회가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를 막기 위해 합병과 상속·증여 때 주가 대신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장주식 과세에서 시가를 어디까지 배제할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챗GPT 생성 이미지>
우선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부터 보자.
상장회사는 시장가격인 주가가 있기 때문에 합병 시 주가를 합병가액(주당 합병가치)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상장회사라도 계열회사와 합병할 때는 주가뿐 아니라 기업의 자산가치와 미래 수익가치까지 반영한 ‘공정가액’을 적용해야 한다.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주가가 낮은 시점을 골라 합병하거나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이른바 ‘주가 누르기’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적용 대상은 합병에 한정되지 않는다. 분할 및 분할합병, 중요한 영업과 자산의 양수도, 포괄적 주식교환과 이전 등 기업의 주요 구조개편 때에도 공정가액 방식이 적용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산정 방식도 바뀐다는 점이다. 합병하려는 회사는 이 가격 역시 시가뿐 아니라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등을 고려한 금액을 산출해 주주에게 제시해야 한다.
합병가액뿐 아니라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 매도 가격에도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합병은 한 회사(합병 소멸회사)가 자산과 부채를 다른 회사(합병 존속회사)로 이전하고, 소멸회사의 주주가 대개 존속회사의 신주를 보상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상장회사라도 시가만이 아닌 내재가치 평가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가가 존재하는 상장사 주식에 대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세금을 매길 때도 시가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의원 발의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와 관련돼 있다.
상장기업 대주주가 상속·증여세 절감을 위해 여러 가지 수단으로 주가 누르기를 하고 있다는 의심은 시장에서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장사 대주주의 상속·증여 주식에 대한 과세기준은 상속·증여 발생 전후 2개월, 총 4개월 동안의 시가(주가) 평균이다.
![[컴퍼니 백브리핑] 두 개의 주가 누르기 방지 법안에 쏠린 눈](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608/20260824105221_41043.jpg)
이소영안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장주식이더라도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으면 상증법에서 정한 ‘비상장’ 주식 평가법, 즉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의 가중평균에 따라 과세한다는 것이다. 주가를 눌러 절세하려는 유인을 제거하겠다는 취지다.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가 누르기 의심 사례를 한번 보자.
승계 이슈가 있는 A사는 부동산과 현금 등 1조8800억 원에 이르는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시가총액이 3400억 원에 불과하다. 실질 PBR이 0.18배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B사는 올해 1월 대주주 사망일을 전후한 상속세 평가기간에 실적 하락 공시, 결산배당 중단, 자사주 외부 매각 등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악재를 잇달아 내놓아 주가 누르기 의도를 의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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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0월 상장 이후 이 회사의 주가는 꾸준히 흘러내렸고, 올해 5월 대주주는 자녀들에게 지분을 증여했다. 증여세 평가기간에도 주가는 하락 흐름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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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상장 지분에 대한 과세기준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비상장 주식일지라도 대주주 보유 지분에 대한 평가는 원칙적으로 시가를 찾는다. 불특정 다수 사이에 객관적 가치를 반영한 거래가 있었을 때는 그 가액을 시가로 간주할 수 있다.
예컨대 비상장주식 플랫폼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일정 물량 이상 거래된 주가 또는 최근 대량 블록딜을 한 거래가액 등이 있다면 시가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비상장 주식은 이처럼 시가로 간주할 만한 거래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이른바 ‘보충적 평가방식’을 사용한다. 과거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순손익가치와 순자산가치를 산출하고 이를 3대 2로 가중평균하는 방법이다. 이때 최저한도는 순자산가치의 80%다.
예컨대 회사가 창출한 과거 이익을 기준으로 산출한 주당 순손익가치가 2만 원, 최근 재무상태를 기준으로 산출한 주당 순자산가치가 4만 원이라고 해보자.
이를 가중평균한 가액은 2만8천 원이다. 그런데 이 가액은 순자산가치 4만 원의 80%인 3만2천 원에 못 미치므로 주당 3만2천 원이 과세기준가액이 된다.
아울러 상장사든 비상장사든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평가가액에는 20%의 할증이 붙는다.
다시 이소영안으로 돌아가 보면 이 안에서는 상장기업 저평가의 기준을 PBR 0.8로 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가가 세법상 순자산가치(재무제표상 순자산가치가 아님)의 80% 미만인 경우다.
저평가 상장기업 대주주의 상속·증여 지분 평가 때에는 비상장주식 평가법을 적용하되 대주주 할증 20%는 면제해준다.
이소영안이 지난 5월 국회에 제출된 상태에서 이달 초 재경부 역시 자체 상증법 개정안을 세제개편안에 포함해 공개했다. 그런데 이소영안과 차이가 아주 큰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장의 반발이 일었고, 이재명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상황이다.
재경부안은 좀 복잡하다.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의 PBR이 업종별 하위 기준을 충족하거나, 최근 1년 동안 중복상장 또는 교환사채 발행 등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한 기업의 현재 시가(상속·증여세 평가액)가 최근 3년간 주가 평균보다 낮은 경우 주가 누르기 의심기업으로 일단 간주한다.
이때 PBR은 회계상 기준인 ‘시가총액÷재무제표상 순자산’이며, 주가 누르기 최종 판단은 국세청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시장데이터 분석기업 액티브홀더스의 분석에 따르면 예컨대 코스닥기업 세중과 파커스는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3차례 모두 정보기술 업종 하위 10%에 해당돼 주가 누르기 추정기업이 된다.
코스피 기업 이마트와 태광산업은 13개 반기 가운데 12차례에 걸쳐 각각 소비재 업종과 소재 업종에서 하위 25%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주가 누르기로 간주될 수 있다. 두 회사의 PBR은 0.2배 수준에 불과하다.
주가 누르기 확정기업에는 어떤 과세기준을 적용할까.
재경부안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과거 6년6개월 동안의 평균주가를 기간별로 산출해 이 가운데 최고치와 현행 평가에 따른 가액을 비교하고, 더 높은 값을 과세기준으로 정한다. 평균주가 산출 기간은 6개월,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6년6개월이다.
이소영안은 주가를 누르면 시가를 배제하고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인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를 적용하겠다는 것이고, 재경부안은 이 경우에도 시가 기준인 과거 평균주가를 활용하겠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를 보였다.
재경부안이 공개되자 너무 많은 기업이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설계됐다는 지적이 즉각 나왔다.
이소영 의원은 재경부안이 공개된 직후 페이스북에 강력한 비판을 내놓았다.
PBR 0.8 이하 기업 모두를 대상으로 하면 상장사 가운데 절반가량인 1300여 개 회사가 대상이 된다. 그런데 재경부안에 따르면 기껏해야 100여 개 기업으로 급감하고, 이마저도 최대주주가 개인인 경우로 좁히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13개 반기 가운데 딱 두 번만 하위 리스트를 벗어나면 적용을 회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6년6개월 동안의 주가를 모두 보겠다는 것이므로 오히려 지금보다 더 장기적으로 주가를 눌러야겠다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주가 누르기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주가 누르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왜 재경부는 이소영안과 이렇게나 차이가 큰 개정안을 만들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조세 시가주의라는 원칙 훼손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는 상장기업 과세에서 시가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세제를 통해 정부가 시장에서 형성된 주가를 배제하면 국내 주식시장의 신인도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셈이 된다는 이야기다.
재경부는 이번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과거 상속·증여 발생기업을 대상으로 주가 누르기 의심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의심 비중이 약 20%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일괄 기준 미달기업 모두를 비상장주식 평가법으로 과세하는 것은 과잉입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안 마련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주가 누르기와 무관하지만 시총이 낮은 경우 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다 매각해도 상속·증여세를 감당할 수 없는 사례도 포착됐다”며 “세제로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금융정책적 수단을 다각도로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 입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심혜섭 변호사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정책 중 ‘시가 당위주의’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재경부 기준에 따른 대상기업들은 대개 명목상 PBR이 0.2~0.3배 수준으로, 여기서 30%를 할증해 봐야 PBR 0.26~0.39배에 불과한데 이것이 재경부에서 말하는 ‘정상가격’이 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이처럼 논란이 거세지면서 정부안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이 이소영안을 보강해 새로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재경부안은 사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훈기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