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을 꼽으라면 단연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은 금융회사 자금이 이자장사에 그치기 쉬운 부동산 등 담보대출에 머물지 않고 첨단전략산업, 벤처창업시장, 녹색금융, 지방금융 등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생산적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금융대전환을 말한다. 싱가포르는 아세안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선진국으로 생산적 금융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국가로 꼽힌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싱가포르의 금융이 발휘하고 있는 경쟁력을 직접 느껴보고 K생산적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접 모색해보고자 한다.

-현지기관 글 싣는 순서
① 통 시엔 후이 SG이노베이트 투자이사 "10년 기다리는 자본이 혁신 만든다, 성공한 스타트업이 싱가포르 미래"
② KSC싱가포르 소장 문준식 “싱가포르는 K스타트업 기술검증 최적지, 글로벌 유니콘 도약 시작점 만들겠다”
③ KB글로벌핀테크랩장 차지영 "싱가포르는 기업의 ‘페이스메이커’, K핀테크 동행 플랫폼 되겠다"
④ 싱가포르거래소 상무 이준원 “10년 전 뿌린 씨앗 결실, SGX 아시아 자본 흐름 잇는 '멀티에셋' 거래소로 진화 중”
⑤ 난양공대 조남준 교수 "아세안 자원과 싱가포르 기술의 결합, '변환경제'가 신산업 기회 만든다""

[K생산적금융을 묻다 현지기관④] 싱가포르거래소 상무 이준원 "10년 전 뿌린 씨앗 SGX, 아시아 자본 흐름 잇는 멀티에셋 거래소로 진화"

▲ 이준원 SGX(싱가포르거래소) 상무가 6월11일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싱가포르=비즈니스포스트] “싱가포르거래소는 시장 수요와 장기 흐름을 보고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 왔다. 10년 전 심은 씨앗이 이제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이준원 싱가포르거래소(SGX) 상무는 6월11일 인터뷰에서 싱가포르거래소의 ‘상품을 설계하는 힘’을 강조했다. 

이 상무는 2015년 SGX그룹에 합류해 현재 한국 회원사 및 고객 커버리지를 총괄하고 있다. 한국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 및 파생상품 거래, 주식·채권 상장, 지수 사업, 회원사 관리 및 시장데이터 판매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 상무에 따르면 SGX는 아시아 자본과 투자상품을 연결하는 '멀티에셋 거래소'로서 거듭나고 있다.

2000년 주식거래소와 파생상품거래소를 통합해 출범한 SGX는 현재 △주식 △주식 파생상품 △채권·외환·원자재(FICC) 파생상품 △지수·데이터·플랫폼 사업이 각각 전체 매출의 약 25%씩을 차지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상무는 “SGX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균형 잡힌 수익 구조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며 “멀티에셋 거래소로 가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SGX는 주가지수 파생상품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0년대 중반부터 특정 상품군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수익원 다변화에 나섰다. 원자재 파생상품을 만들고, 외환 파생상품을 적극 육성했다. 원·달러 선물도 이 시기 활성화한 대표 상품 가운데 하나다.

이 상무는 "당시에는 한국 시장에 대한 해외 투자 수요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투자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헷지가 수요가 늘어 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을 새로 만들고 홍보하고 거래량이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코로나19 전후로 그동안 준비했던 상품들의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SGX가 일일레버리지상품(DLC, Daily Leverage Certificates)과 싱가포르예탁증서(SDR) 등 경쟁 거래소들이 쉽게 시도하지 않는 상품도 선제적으로 도입해 성과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SGX는 2017년 아시아 최초로 거래소 상장형 DLC를 도입했다.  DLC는 기초자산(시장지수 또는 개별종목)의 일일 수익률을 최대 7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증권이다. 

SDR 상장 사업도 SGX가 최근 공을 들이는 분야다. SGX 회원 증권사가 기초 주식을 확보해 예탁한 뒤 SDR을 발행하는 구조로, SK하이닉스의 나스닥 ADR(미국 주식예탁증서) 상장처럼 기업이 해외 상장에 직접 나서는 방식과는 다르다.

이 상무는 "2023년 태국을 시작으로 홍콩, 인도네시아 등 주요 아시아 국가 주식이 SDR 방식으로 SGX에 상장했다"며 "한국 주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 SDR 도입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주가 분할하거나 배당을 하면 SDR 투자자도 동일한 권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싱가포르와 한국의 예탁결제원 간 실무 절차를 점검하고 있다"며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K생산적금융을 묻다 현지기관④] 싱가포르거래소 상무 이준원 "10년 전 뿌린 씨앗 SGX, 아시아 자본 흐름 잇는 멀티에셋 거래소로 진화"

▲ 싱가포르거래소(SGX) 본사는 마리나베이 금융지구에 자리 잡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SGX는 주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나스닥과 손잡고 SGX와 나스닥에 동시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 기업 그랩(Grab)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유망 기업들이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흐름 속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했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아시아 기업은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고 미국 기업도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며 “동시상장 제도는 양쪽 수요를 모두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스닥에 상장하려면 약 10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가 필요하지만 동시상장 제도를 거치면 최소 시총이 약 2조 원(약 20억 싱가포르달러)만 되면 된다”며 “기업들이 빠르게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상장 주식 가운데 최소 15%만 SGX에 두도록 해서 기업들의 부담을 낮췄다"며 "나스닥 기준을 충족한 기업은 SGX에서 중복 심사 부담을 줄이고 상장할 수 있도록 두 거래소 간 규정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K생산적금융을 묻다 현지기관④] 싱가포르거래소 상무 이준원 "10년 전 뿌린 씨앗 SGX, 아시아 자본 흐름 잇는 멀티에셋 거래소로 진화"

▲ SGX는 공개 시장을 넘어 장외시장 영역으로도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SGX는 공개 시장을 넘어 장외시장 영역으로도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상무는 "구조적으로 SGX 라이선스로 직접 수행하기 어려운 장외 외환거래(OTC FX), 디지털 자산 트레이딩, 탄소배출권 거래 등은 자회사로 두거나 합작 플랫폼을 설립해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간 장외 외환거래 규모가 거래소 장내시장보다 훨씬 큰 만큼 SGX는 장외 플랫폼을 직접 품는 방식으로 외환시장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SGX는 운용사·헤지펀드 등 바이사이드(buy side) 고객 기반 '비드에프엑스(BidFX)'와 증권사·투자은행 등 셀사이드(sell side) 고객 기반 '맥스트레이더(MaxxTrader)' 플랫폼을 순차적으로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채권과 디지털자산 인프라 영역에서는 테마섹과 함께 FICC 트레이딩 플랫폼 마켓노드(Marketnode)를 세워 채권, 펀드, 구조화상품의 발행부터 예탁·결제, 토큰화, 자산관리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K생산적금융을 묻다 현지기관④] 싱가포르거래소 상무 이준원 "10년 전 뿌린 씨앗 SGX, 아시아 자본 흐름 잇는 멀티에셋 거래소로 진화"

▲ 탄소배출권 시장도 SGX가 장기적으로 보고 있는 영역이다. 사진은  SGX 내부. <비즈니스포스트>

탄소배출권 시장도 SGX가 장기적으로 보고 있는 영역이다.

SGX는 2021년 DBS·테마섹·스탠다드차타드와 함께 자발적 탄소시장 플랫폼 ‘CIX(Climate Impact X, CIX)’를 공동 설립해 탄소 크레딧의 현물·경매·프로젝트 거래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이 상무는 "한국은 제조업 기반이 크고 탄소배출 규제를 받는 기업이 많아 의무적 탄소배출권 시장이 중심이지만 싱가포르는 대규모 제조업 기반이 작아 규제시장보다는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은 기업이 의무가 없어도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크레딧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산림 조성, 재생에너지, 탄소저감 기술 등이 크레딧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이 상무는 “탄소배출권 시장은 SGX만의 전략을 넘어 싱가포르의 국가 전략에 가깝다”며 “궁극적으로 국가 간 탄소배출권 거래가 허용되면 싱가포르가 그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이 나뉘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이나 상장지수펀드(ETF)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상무는 HSBC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삼성선물과 신한금융투자(현재 신한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에서 글로벌 파생상품, 해외투자 관련 업무 등을 담당했다. 2015년 SGX에 합류해 한국 회원사 및 고객 커버리지 총괄을 맡고 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