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이란 전쟁, 새로운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 되나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석유 등 화석연료를 다시 국제 무대에 불러들였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2월28일 발발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1970년대 이후 국제정치를 규율해온 한 축인 이른바 ‘석유 지정학’의 고비를 보여준다. 석유가 여전히 분쟁 등 국제정치에서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는지를 가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석유 지정학이란 국제 정치와 질서에서 석유를 주요한 동인으로 보고 국제문제를 해석하려고 한다. 전후 끝없이 이어지는 중동전쟁은 석유라는 요인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기도 하다.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4차 중동전쟁 때 중동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에 대한 석유금수를 내리면서 오일쇼크를 야기해 세계 경제와 국제 질서에 큰 변동을 몰고왔다.

한꺼번에 석유값을 4배로 폭등시킨 오일쇼크는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공황에 준하는 경기침체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강대국 등 국제관계와 제도에 큰 변동을 자아냈다.

첫째, 오일쇼크는 당시 미국의 달러 체제를 수선해줬다.

1960년대부터 미국의 심각한 재정 및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금 1온스를 35달러에 바꿔주는 달러-금 태환 제도를 폐지했다. 달러 가치 하락에 더 이상 금 태환 제도를 운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조처는 당시 인플레이션을 불렀고, 특히 석유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1973년 중동전쟁을 계기로 오일쇼크로 증폭됐다. 

미국은 석유금수 조처를 주도한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해 가치가 오른 석유의 거래에 오직 달러만을 쓰도록 했다. 이로써 달러는 오일달러로 그 가치를 보존하며, 오히려 미국에게 변동환율제와 함께 달러의 유연성을 제공했다. 

미국의 달러 패권이 보존된 것이다.

둘째, 미국은 오일쇼크를 계기로 제조업 등에서 지식산업으로 이양하는 산업개조를 시작했고, 이는 미국의 경쟁력을 높였다. 

오일쇼크에 의한 경치침체는 고통스런 과정이었으나, 미국은 이 과정을 거치며 첨단 지식산업으로 혁신에 성공했다. 이 과정은 또 한국 등 신흥국들이 미국 등 기존 선진국들이 포기한 제조업을 이어받아 부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셋째, 오일쇼크는 미국의 경쟁국인 소련에게 착시 효과를 줘서 장기적으로 붕괴의 씨앗을 뿌렸다. 

오일쇼크를 전후해 소련은 시베리아 유전 개발에 성공해 최대 산유국으로 등장했다. 폭등한 석유값은 소련에게 풍부한 경화라는 달콤한 사탕을 제공했다. 서방 국가들이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동안 소련은 동구 위성국을 도와주는 한편 제3세계 진출을 가속화했다. 

무엇보다도 석유값에 취해 혁신을 도외시했다. 소련은 이미 1960년대부터 성장이 한계가 오고 에너지 투입 경제에 의존하고 있었다. 풍부한 화석연료를 투입해 중공업을 가동시키는 경제에 매달리다가 효율이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에너지 효율은 10%에 남짓인 데다 심각한 공해가 점증하고 있었다. 

석유값 폭등과 증산은 소련에게 경제와 산업구조를 혁신해야 할 필요성을 가려버렸다. 오히려 제3세계 등 대외적 진출로 나아가 국력을 과잉전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 발발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다시 폭등했던 석유값은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극적으로 하락했다. 수영장에서 물이 빠지고 나자, 누가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드러났다.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집권해 소련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 및 개방(글라스노스트)에 나섰으나, 시간은 늦었다. 결국 소련은 1991년 붕괴로 치달았다. 이런 점에서 오일쇼크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석유가 국제문제의 동인이라는 석유 지정학은 2010년 이후 셰일석유 및 가스가 개발되고, 지구온난화를 우려한 화석연료 개발 및 사용 제한이 이뤄지며, 비화석 친환경 에너지 개발로 그 힘을 잃어갔다. 

최대 석유 소비국으로서 석유값이 국내 정치에 중요한 요인이었던 미국은 오히려 수출국으로 변했다. 중동에서 분쟁은 석유값에 충격을 주기는 했으나, 곧 진정되는 패턴을 보였다. 석유는 이제 궁극적으로 퇴출될 화석연료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석유 등 화석연료를 다시 국제 무대에 불러들였다. 석유 시추, 더 나아가 석탄 개발까지 독려하는 트럼프는 지난해 재집권 뒤 석유 등 화석연료를 다시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력으로 복귀시키고, 에너지 패권을 잡으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기라고까지 폄하하며, 그 개발을 억제하려 한다.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해온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작전도 세계 최대 매장량이라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장악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번 이란 전쟁도 그런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란의 현 반미 체제를 붕괴시켜 베네수엘라에서처럼 석유 통제권을 갖는다면, 미국이 전 세계 에너지 패권을 장악할 수 있지 않냐는 계산이다. 미국이 이란을 통제할 수 있다면 사실 중동 지역 전역에 대한 장악력도 더욱 높아진다.

무엇보다도, 이란 석유에 기대는 중국을 견제하는데 효율적이다. 트럼프가 전쟁 기간을 4주 정도로 운운하는 것은 4월 초 중국 방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을 장악하고 중국에 가서 압박을 할 수 있는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과연 트럼프의 의도대로 흘러갈까?

중국은 해외로 수입하는 석유의 20% 내외를 이란에서 가져온다. 엄청난 양으로 보이나, 사실 중국이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1.5%에 불과하다는 계산도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이제 화석연료 사용에서 가장 빠르게 이탈하는 나라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중국의 친환경 에너지 개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란 전쟁은 중국으로 하여금 화석연료 사용 감축과 친환경 첨단 에너지 사용을 가속화할 변수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이란으로부터 오는 석유가 완전히 단절된다고 해도, 중국은 러시아의 석유로 대체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은 고통이 수반되기는 하나 중국 경제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당장은 미국에 고통을 줬으나 혁신의 계기가 됐고, 소련에게는 달콤한 설탕이었으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독약이 됐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구세대 에너지 패권의 복원, 이에 바탕한 이란 전쟁은 결국 미국을 중국과의 경쟁에서 낙오를 더 가속화는 “새로운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가 되지 않을까?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