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들어 경제민주화 법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물 만난 듯 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당과 재계의 반발이 만만찮다.
야권도 달라진 정치구도를 기회로 그동안 통과가 힘들었던 법안들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강해 경제민주화 법안을 놓고 여야가 격렬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도 긴장하며 경제민주화 법안의 운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여당과 재계 반발, 경제민주화 가시밭길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6일 개원 100일을 맞았는데 그동안 2194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는 19대보다 26%가량 많은 것이다. 같은 기간 19대 국회에서 1631개 법안이 발의됐다.
20대 국회는 16년 만에 여소야대로 출발했다. 여소야대의 지형에 경제민주화의 욕구가 강해지면서 야당 의원들은 민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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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석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6월 첫 임시국회를 시작하면서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이야말로 시대적 과제"라며 "재벌총수의 독선을 막기 위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고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국민총소득 가운데 가계소득으로 분배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라며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관행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반면 경제민주화를 대선공약으로도 내놨던 새누리당은 태도를 바꾸고 있다.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은 양극화를 오히려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활성화’를 이슈로 제기하고 있다.
김종석 유민봉 강효상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회관에서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 – 트럼프 현상의 뿌리와 한국경제의 대안’ 세미나를 열어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을 비판했다.
김종석 의원은 “야당의 일방적인 재벌통제만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다”며 “규제완화 등을 통해 관료·노조 등에 쏠려있는 경제권력을 시장에 돌려주는게 오히려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경제민주화 법안은 명예근로감독관을 위촉해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위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등을 감독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 있는데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재계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지나친 규제는 ‘기업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성장동력을 약화시킨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은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발의된 기업관련 법안 가운데 3분의 2가 규제법안"이라며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규제폭포' 같은 상황이라 기업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자료를 내고 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을 하나씩 비판하기도 했다. 전경련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대해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 규제강화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당과 재계가 날을 세우면서 경제민주화 법안들의 국회 통과는 난관이 예상된다. 여소야대로 예전 국회보다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과반 의석만으로는 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 대표도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경제민주화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봤다. 국회에 재벌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8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산업과 좋은일자리 포럼 창립총회' 강연에서 "재벌들은 300명의 국회의원을 다 선별하고 있다"며 "입법 과정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대국회 경제민주화 법안 뭐가 있나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2194개의 법안 가운데 경제민주화 법안은 130여 개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이 91개, 국민의당 30개, 새누리당 8개, 정의당이 4개를 각각 발의했다.
더민주는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종인 전 대표가 앞장서고 121명의 의원이 참여해 상법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의 의무화 등을 뼈대로 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30대그룹 상장기업의 사외이사 5명 가운데 1명이 재선임의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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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
더민주는 17대부터 19대국회까지 비슷한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이와 비슷한 개정안을 내놔 야3당이 상법 개정에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법인세를 올리는 취지의 법인세법 개정안도 줄줄이 내놨다. 박영선 윤호중 박주민 더민주 의원, 박주현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6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법인세 정상화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더민주는 과세표준 5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율을 25%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더민주 의원들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도 겨냥하고 있다.
이종걸 더민주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임기만료로 폐기됐던 보험업법 개정안을 다시 내세웠다. 일명 ‘삼성생명법’인데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일부를 매각할 수 밖에 없다. 삼성생명이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지배구조가 흔들리게 된다.
박용진 더민주 의원도 지주회사 전환 시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삼성전자는 상당기간 자사주를 매입해 왔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전자는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최운열 더민주 의원은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를 3년 안에 해소하도록 강제하는 독점규제법 개정안을 내놨다. 순환출자가 지배구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현대산업개발 등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법안이다. 삼성그룹도 순환출자 해소에 1조8천억 원 규모의 지분이 필요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공정성장 3법‘을 꺼내들었다. 국민의당은 공정성장과 격차해소를 강조하고 있다.
공정성장 3법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독점규제법 개정안 △창업활성화 기반 마련을 위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벤처기업 재창업을 돕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다.
안 전 대표의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청에 벤처육성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창업 3년 안에 벤처기업법에 따라 벤처기업으로 확인받은 기업이 '제2차 납세의무'를 지지 않도록 해 실패한 벤처인들의 재창업을 돕는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법인에 근무하는 임직원의 임금 상한이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최고임금법안,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을 발의했다. 정의당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0대그룹 상장사 78곳의 경영자들이 받는 보수는 일반직원의 35배, 최저임금의 180배 수준이었다.
심 대표는 ‘살찐 고양이법 2탄’도 내놨다. 공공기관 임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10배로 제한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심 대표는 대기업이 협력기업과 이익을 나누도록 하는 초과이익공유제도 추진하고 있는데 김경수 더민주 의원도 이에 앞서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