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공공주택사업과 설계·시공·감리 선정 관련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혁신방안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는 12일 인천 검단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 후속대책으로 ‘LH 혁신 및 건설카르텔 혁파방안’을 발표했다.
▲ 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오른쪽 첫번째)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LH 혁신 및 건설 카르텔 혁파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 대책은 앞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내린 지시에 따른 것으로 철근누락과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토지주택공사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제거하고 전관예우 등 특혜를 원천차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우선 토지주택공사 혁신방안에는 공공주택 공급구조를 민간과 경쟁시스템으로 재편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통해 공공주택 품질을 제고하고 토지주택공사 혁신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현재 공공주택은 토지주택공사가 단독시행하거나 토지주택공사와 민간 건설사가 공동으로 시행하는 방식으로 건설한다.
정부는 여기에 민간건설사가 공공주택 건설을 단독으로 시행할 수 있는 유형을 추가한다. 토지주택공사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민간 건설사 자체 브랜드를 공급할 수 있게 한다.
정부는 입주자 만족도 등 평가결과를 비교해 집을 더 잘 짓는 시행자가 더 많은 공공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공급계획에도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이에 따라 사실상 공공주택 독점 공급자였던 토지주택공사는 우수한 민간사업자와 경쟁을 통해 품질향상, 안정확보 등에 관한 시장 요구에 노출된다. 자체적으로 혁신을 하지 않으면 공공주택시장이 민간 중심 공급구조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분양가와 공급기준 등은 현재 공공주택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공공성을 확보한다.
단 민간 건설사가 공공주택사업자로 지정되면 주택기금 지원, 미분양 매입확약 등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정부는 민간 건설업계는 침체된 시장여건 속에서 공공주택사업으로 안정적 사업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가 주택건설 과정에서 독점하는 이권의 핵심인 설계·시공·감리업체 선정권한은 전문기관으로 이관한다.
구체적으로 설계와 시공업체 선정권한은 조달청으로, 감리업체 선정권한은 국토안전관리원으로 넘긴다. 단 법률개정 전까지는 감리업체 선정도 조달청에서 담당한다.
정부는 권한 이관을 통해 이권 개입 소지를 차단하고 품질과 가격 중심의 공정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앞으로 토지주택공사 사업에 2급 이상 고위 전관이 취업한 업체의 입찰은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토지주택공사 퇴직자 재취업 심사 대상자는 현재 2급 이상 퇴직자에서 3급 이상 퇴직자로, 대상업체도 현행 200여 개에서 4400여 개로 크게 늘린다. 재취업 판단기준부분에서는 공공기관 최초로 기관업무 심사 대상자를 1급에서 2급으로 확대한다.
토지주택공사 공공주택 안전과 품질 검증도 강화한다.
토지주택공사가 설계하는 모든 아파트는 착공 전 구조설계를 외부 전문가가 검증한다. 구조도면 등 안전과 직결되는 항목은 대국민 검증을 받도록 공개한다.
토지주택공사 현장에서 철근배근 누락 등 주요 안전항목을 한 번이라도 위반한 업체는 일정기간 토지주택공사 사업 수주를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한다.
국토부는 이날 건설카르텔 혁파방안도 발표했다.
우선 감리가 독립된 위치에서 제대로 건설현장을 감독할 수 있도록 감리제도를 손본다.
구체적으로 감리가 건축주와 건설사에 예속되지 않도록 건축주 대신 허가권자(지자체)가 감리를 선정하는 건축물을 확대한다. 감리 선정방식도 단순 명부방식에서 적격심사를 통한 객관적 방식으로 개선한다.
국가인증 감리 선정제도 등을 도입해 감리 전문성도 높인다.
국토부는 전문분야 경력, 무사고 이력 등을 보유한 감리원을 대상으로 시험 등을 거쳐 국가인증 감리자를 선정해 고층, 대형공사 등의 책임감리로 우대한다. 분야별 전문가를 보유하고 감리업무만 담당하는 전문법인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설계부분에서는 건축사가 설계업무를 총괄하되 현재 건축사가 작성하는 구조도면은 구조분야 전문성을 지닌 구조기술사 등 전문가가 작성하도록 한다. 작성 주체와 책임을 명확하게 해 부실설계를 방지한다는 취지다.
공공공사에 적용하고 있는 건설사의 설계검토 의무는 민간공사까지 확대한다.
시공 중 기초와 주요부분 설계를 변경하면 구조전문가 검토를 거치게 해 설계와 시공업무 상호 검증체계도 강화한다.
국토부는 부실시공 방지를 위해 건설현장 감독체계를 개선한다.
철근 배근, 콘크리트 타설 등 주요공정은 국토안전원 등 공공기관이 현장을 점검한 뒤 후속공정을 진행하도록 한다. 불량골재 유통 차단을 위해 채취원부터 현장 납품까지 골재 이력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건설현장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공종별 팀장은 특급, 고급 기능인 등 숙련 기능인을 배치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밖에도 공동주택 적정 공사기간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주택 사업에는 적정 감리비가 지원되도록 대가기준을 현실화한다.
사업 인허가 때 건축위원회(지자체)가 공사기간과 대가의 적정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해 과도한 공기단축과 공사비 삭감을 방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안전과 품질실적에 따라 건설공사 보증료율을 차등적용하고 불법을 저지른 건설사에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토부는 이번 대책 가운데 법률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조속히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하위법령 또는 토지주택공사 내규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2024년 상반기까지 개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김오진 국토부 제1차관은 “토지주택공사가 이번 혁신방안을 충실히 이행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기 바란다”며 “건설안전은 국민 재산과 생명에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토지주택공사 전관과 건설카르텔을 반드시 혁파해 부당이득을 국민에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