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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왼쪽)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피아트 망령’과 싸움에서 승리할까?
현대차와 기아차는 내수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안티 현대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사랑받는 현대차가 되자”고 강조한다.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예상보다 빠르게 낮아지면서 내부에서도 이탈리아 '피아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한때 내수에서 점유율이 80%에 이르기도 했다. 독점에 가까운 높은 점유율은 현대기아차가 해외에 진출해 글로벌 톱5의 반열에 설 수 있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내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내수에서 위상이 흔들리면 피아트가 그랬듯 현대기아차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 부회장이 ‘사랑받는 현대차’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해명에서 수용으로, 달라진 현대차
현대차가 최근 출시한 신형 아반떼는 초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의 추세가 이어질 경우 현대차가 당초 내세운 내수 5만 대 판매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신형 아반떼를 출시하며 안전과 주행성능 등 기본기를 중점적으로 내세웠다. 한동안 역차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장착했고 모든 면에서 내수용과 수출용에 차이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그동안 현대차를 향해 쏟아냈던 불만들을 이번에 대거 개선한 것이다. 어드밴스드 에어백은 현대차가 한때 일부 고급차와 수출용 차에만 장착해 논란을 일으켰던 에어백이다.
현대차가 조만간 신형 아반떼를 대상으로 쏘나타 충돌실험과 비슷한 파격적 실험을 진행할 가능성도 높다.
현대차는 지난 7월 내수용 쏘나타와 수출용 쏘나타를 직접 충돌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내수차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앨라배마공장에서 만든 쏘나타와 충남 아산공장에서 만든 쏘나타를 소비자가 모인 자리에서 정면으로 충돌시켰다.
기아차도 최근 신형 스포티지를 출시하며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장착했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에어백 차별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미국과 국내의 법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해왔다.
김충호 현대차 사장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에어백은 법규의 차이가 있다”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최근 출시하는 모든 신차에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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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용 쏘나타와 내수용 쏘나타의 충돌실험. |
◆ 현대기아차, 파격적 실험 나선 까닭
현대차의 쏘나타 충돌실험은 세계 자동차회사 역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파격적 실험으로 꼽힌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시 “위험 요소가 너무 많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내가 현대차 책임자라면 결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돌결과가 예상과 다를 경우 그만큼 후폭풍도 거세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실험이라는 얘기다. 현대차 내부에서조차 너무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대차가 전문가마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실험을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진행한 것은 그만큼 현대차가 절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수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반열에 올라섰다. 2014년 현대기아차 전체 판매량 800만 대 가운데 국내 판매량은 100만 대를 조금 넘는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에게 내수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내수가 현대기아차의 해외공략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선 부회장이 내수시장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과거 80%에 가까운 내수 점유율을 토대로 해외에 진출해 판매량 기준 세계 5위의 자동차회사로 발돋움했다. 내수에서 거둔 이익을 토대로 해외에 투자하는 전략을 써왔다.
현대기아차의 전체 판매량에서 해외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80%를 넘어섰다. 하지만 해외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5% 정도에 불과하다. 아직 해외생산 체제를 완전하게 구축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성장의 토대가 됐던 내수시장 점유율은 2014년 60%대로 떨어졌다. 현대기아차로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7월 현대차의 성공을 이끌어 온 요인들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대차는 내수시장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해외사업에 투자하는 경영을 추구해 왔다"며 "한국에서 수입차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이런 전략이 힘을 받지 못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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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현대차의 '쏘나타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선보였다. |
◆ 피아트가 되지 않으려는 현대기아차
현대기아차의 내수 점유율 하락은 이탈리아의 피아트를 떠올리게 한다.
피아트는 현대차그룹과 닮은 면이 많다. 승용차와 상용차를 비롯해 건설기계, 부품, 보험 등 다양한 사업분야에 진출해 있다. 피아트 역시 현대차그룹처럼 이탈리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피아트는 1899년 설립돼 1969년 이탈리아 3위 자동차회사 란치아를 인수했다. 그 뒤 페라리, 알파 로메오, 마세라티 등을 인수하며 이탈리아에서 유일한 자동차회사로 떠올랐다. 피아트의 이탈리아 내수시장 점유율은 한때 60%에 이르렀다.
기아차를 인수하며 국내 자동차업계의 절대강자로 떠오른 현대차그룹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피아트는 전통적으로 해외보다 내수를, 중대형차보다 소형차 중심의 전략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피아트는 내수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당시의 피아트에 대해 “해이해지고 자만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피아트 차량의 고장이 잦아지고 성능도 매번 제자리걸음을 걸으면서 이탈리아 소비자들은 서서히 피아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피아트의 신차도 고객에게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 틈을 타고 수입차가 공세를 펼치면서 피아트는 2000년대 초반 내수 점유율 30%대가 무너졌다. 피아트는 소형차부문을 일본차에게 빼앗겼고 고급차부문을 독일차와 미국차에 내줬다.
피아트의 유럽 점유율도 내수가 무너진 뒤 뒷걸음질했다.
피아트의 유럽 점유율은 1990년만 해도 14%로 폴크스바겐에 이어 2위였지만 2002년 8%, 2004년 5%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피아트가 1990년부터 보험과 중장비 기계사업 등에 진출하며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신규사업 추진으로 자동차 연구개발 투자비용이 제한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결국 피아트는 2002년 창업 이후 최악의 경영 위기를 맞았다. 피아트는 그 뒤 인력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추진하다 2014년 미국의 크라이슬러와 합병해 피아트 크라이슬러로 재출범했다.
최근 현대기아차 내부에서도 피아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높다. 현대차는 지난 4월 내수시장을 분석한 문건에서 올해를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으로 진단하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피아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정의선 부회장의 과제이기도 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7월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정의선 부회장으로 후계경영 구도가 가시화하는 2018년이면 현대차의 경쟁력이 지속될 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회장도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 참석해 현대기아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이 최초로 70% 아래로 내려간 데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수입차 점유율이 10%를 넘은 2012년 “현대차가 해외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우리나라 시장, 우리나라 고객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내수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