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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오른쪽)은 성균관대와 중앙대에 삼성과 두산을 심었다. |
“중앙대라는 이름만 빼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바꾸겠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2008년 박용성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삼성 이건희 회장을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이 회장은 1993년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했다. 이 회장은 성균관대를 인수한 뒤 이렇게 했다.
두산의 중앙대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난 6년 동안 중앙대 서울캠퍼스는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중앙도서관, 기숙사, 약대 강의실, 병원 별관, 공학관 등이 신축되거나 증축됐다. 거의 1천억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말 그대로 캠퍼스를 다시 단장한 수준이다.
겉만 변한 게 아니다. 박 이사장은 취임 직후 “백화점식 학과를 과감히 정리하고 시대 변화에 맞게 재편하겠다”고 선언했다. 2009년 우리나라 대학 최초로 교수 차등 연봉제를 도입했다. 2010년 18개 단과대학을 11개로, 77개 학과를 49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이 이사회에서 통과됐다.
이런 구조조정안에 학생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박 이사장은 거침이 없었다. 박 이사장은 “대학이 열린 공간이라고 한들 모두가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이사장의 중앙대 탈바꿈 시도는 다분히 삼성의 성균관대를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박 이사장은 2008년 6월 취임식에서 “중앙대를 성균관대보다 경쟁력있는 학교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은 1996년 성균관대를 인수했는데,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시점에 성균관대는 이미 전통의 명문사학이라는 연세대와 고려대 턱밑까지 치고 올라와 있었다. 박 이사장에게 삼성의 성균관대는 중앙대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타산지석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성균관대를 인수한 뒤 돈을 아끼지 않고 시설투자를 했다. 2009년 500억 원을 들여 성균관대 수원캠퍼스에 새 중앙도서관인 ‘삼성학술정보관’을 세웠다. 이밖에도 2천 실 규모의 기숙사, 국제관, 법학관, 호암관, 약학관, 화학관, 반도체관 등 서울과 수원캠퍼스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학과 구조조정도 일찍 단행했다. 성균관대는 1998년 법대·의대·사범대를 제외한 모든 단과대를 21개 단위의 학부로 바꿨다. 지금도 삼성경제연구소와 협력해 산학협력 위주로 학제 개편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경영학과·반도체시스템공학전공 등 다른 대학과 차별적인 학과를 개설했다. 이 학과에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졸업 후 삼성에 입사할 수 있는 특혜도 부여했다. 이런 조처는 성균관대 일부 학과의 입시 커트라인이 거의 서울대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라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삼성이 성균관대를 인수하고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 대학은 그 기업을 닮아갔다. 삼성의 ‘1등 DNA’는 성균관대에 이식돼 중앙일보의 2013년 대학평가에서 성균관대는 1위에 올랐다. 두산의 선제적 구조조정과 ‘선택과 집중’은 중앙대를 경영대 위주로 재편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과 다르다. 대학은 자유의 작풍이 있어 기업과 구분된다. 그래서 성균관대와 중앙대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대학을 과연 삼성식으로 두산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본질적 의문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 재계 서열 올리듯 대학 서열 올리기 안간힘
삼성은 성균관대 인수 이후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삼성이 매년 평균적으로 1천억 원을 기부했다”며 “그동안 삼성의 기부액은 1조5천억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별도로 삼성복지재단이 매달 3천만 원을 성균관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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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삼성학술정보관. 삼성이 500억 원을 투자해 지은 이 건물은 성균관대의 상징인 은행잎과 책을 펼친 모양을 함께 나타냈다. |
성균관대의 교육재정은 삼성 인수 전인 1996년 1300억 원에서 2013년에는 약 3천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학생 등록금 의존도는 81.1%에서 40%로 줄어들었다. 교수 1인당 외부 연구비는 기존 3100만 원에서 9140만 원으로 올랐다. 전임교수는 삼성 인수 전 458명이었으나 2006년 벌써 1118명을 기록했다.
성균관대의 발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최근 5년 동안 발전평가 종합대학 1위, 교육개혁 최우수대학 5년 연속 선정, 구조개혁 선도대학 1위를 싹쓸이했다. 2008년 로스쿨 정원 배정 때 고려대 연세대와 같은 120명을 배정받았다.
신입생들의 수준도 달라지고 있다. 1996년 당시 수능성적 전국 1% 이내를 기록한 성균관대 신입생은 43명이었다. 그러나 2009년 408명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졸업 후 진로도 달라졌다. 성균관대는 2012년부터 2년 연속 전국 4년제 대학 졸업생 취업률 1위를 차지했다. 2009년 기준 성균관대 출신은 공인회계사 합격자 3위, 사법고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산의 중앙대 지원도 삼성의 성균관대 지원 못지 않다. 두산은 2008년 인수 당시 부채 700억 원에 재단 자산전입금이 1억6천만 원뿐이던 중앙대에 흔쾌히 발전기금 1200억 원을 내놓았다. 이후 매년 100억 원이 넘는 지원을 하고 있다.
박용성 이사장도 개인적으로 취임 후 1년6개월간 총 559억 원을 출연했다. 두산 계열사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2년 105억3천만 원을 내놓았고, 두산중공업이 지난해 130억 원을 기부했다.
이런 두산의 지원에 힘입어 중앙대는 지난해 450억 원 규모의 장학금을 확보했다. 국내 사립대학 중 최상위권이다.
중앙대 입시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다. 인수 직후인 2009년 중앙대에 특목고 학생이 처음으로 지원했다. 2012년 전체 입시 경쟁률 23.4대1로 국내 대학 중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후 학교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다양한 변화를 보이자 학부모와 학생들이 중앙대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고시 합격자도 크게 늘어 2011년 사법고시 합격자 13명과 공인회계사 42명을 배출했다.
삼성과 두산은 성균관대와 중앙대 인수 이후 마치 재계 서열을 올리기 위한 노력처럼 성균관대와 중앙대의 서열을 올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대학 입시기관들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다음으로 ‘서 성 한 중’이라고 흔히 서열을 매긴다. 서는 서강대를, 성은 성균관대를, 한은 한양대를, 중은 중앙대를 말한다.
성균관대는 이미 서강대를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고, 중앙대도 한양대를 넘어섰다고 열심히 홍보한다. 입시 경쟁률, 입시 커트라인, 사법고시와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 등을 열심히 밝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과 두산의 투자는 성균관대와 중앙대의 대학 서열 올리기에 성공했지만, 그 과실이 학생 모두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2011년 한국대학협의회는 대학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를 통해 성균관대와 중앙대의 등록금 상승률이 3%로 4년제 대학 176개 중 공동 5위라는 자료를 내놓았다.
연평균 등록금 역시 성균관대 805만7700원, 중앙대 757만2600원으로 일반대학 평균인 672만 원을 한참 웃돌았다. 그만큼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전체 장학금 규모도 큰 것은 사실이지만, 학생 1인당 장학금 순위는 두 학교 모두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장학금 수혜자가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들에게 편중된다는 의미다.
◆ 대학의 기업식 경영, 그 빛과 그림자
삼성과 두산은 성균관대와 중앙대를 인수하자마자 ‘철밥통’을 흔들어 놓았다.
삼성은 성균관대를 인수하자마자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이사회가 총장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자연히 성균관대 총장은 친 삼성 인사로 채워졌다. 2003년 심윤종 총장 후임으로 이건희 회장의 주치의였던 서정돈 총장이 임명된 게 대표적 사례다. 2011년 김준영 총장 임명 이후 서 총장은 성균관대 재단법인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교수 철밥통이 많이 깨졌다. 성균관대는 2000년 ‘교수 인센티브제’를 실시했다. 교수들의 교육과 연구 업적 평가를 시행해 심(상위 10%) 묘(상위 10~20%) 능(하위 80%) 등 3단계로 평가한다. ‘심’을 받는 교수는 평균연봉에 1개월치 월급을 더 받는다. ‘묘’를 받은 교수는 심을 받은 교수의 절반을 받는다.
성균관대는 2004년 ‘펠로우십 인센티브제’를 추가로 도입했다. 연구성과가 탁월한 교수는 2년에 걸쳐 연간 3천만 원씩 총 6천만 원의 특별 장려금을 받는다. 이밖에도 국제학술지나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연구논문이 게재되면 최고 3천만 원까지 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성균관대 교수들의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발표 건수가 인수 전 92편에서 2008년에는 1568편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는 교수 완전 연봉제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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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 정문 전경 |
두산도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이사장이 2008년 이사장을 맡이 지금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 이사장은 인수 당시 박범훈 총장을 연임시키면서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다. 중앙대는 이후 구조조정원회 총괄위원장을 역임한 안국신 총장과 경제학자인 이용구 총장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두산은 박 이사장의 지휘 아래 과감하게 중앙대에 기업식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박 이사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판매가 되듯 대학도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우선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인문사회 ▲자연공학 ▲경영경제 ▲의약학 ▲예체능 등 5개 분야로 묶어 부총장을 뒀다. 부총장은 예산과 인사 등 각종 권한을 부여받아 해당 분야를 총괄 지휘한다. 대기업이 마치 독립채산제 형태의 사업부문을 두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통폐합 수순을 밟았다. 2010년 외국어대학의 독어학과와 불어학과가 폐지됐고 지난해 3월 복지 관련 학과 4개를 사회복지학부로 합쳤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도 높아졌다. 정부가 발표한 2011년 기준 전국 4년제 대학 182개의 졸업 평균학점(백분위 환산)을 보면 중앙대의 평균 학점은 74.5다. 서울대(77.5) 연세대(78.1) 고려대(78.3)보다 더 낮다. 이는 그만큼 평가강도가 세졌다는 뜻이다.
중앙대는 2009년 국내 대학 최초로 ‘교수 연봉제’를 도입했다. 연구·교육·사회봉사 등을 평가 항목 삼아 교수를 S·A·B·C 등급으로 나눠 연봉 인상률을 차동해 적용한다. S등급을 받은 교수와 C등급 교수의 연봉 최대 차이는 약 6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진 시 연구 실적 심사에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정년 보장(테뉴어)이 미뤄진다.
2013년 이용구 총장 체제에 들어서면서 평가가 강화돼 C등급을 받은 교수는 승진·연구년·해외연수·연구조교 배정 등에서 불익을 받는다. 3회 연속 C등급인 교수는 개인 연구실을 쓸 수도 없다.
삼성과 두산이 대학을 기업식으로 경영하면서 대학에 큰 변화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철밥통인 대학을 자극을 줬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학에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사라지고 상명하달 식의 기업 문화만 자리잡은 점은 대학 사회에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
성균관대는 2001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재산 증여 과정을 풍자한 만화를 실은 교지 <성균>을 전량 회수했다가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중앙대는 2010년 4월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대학 구조조정 반대시위를 했던 학생을 퇴학시켜 ‘관용없는 중앙대’라는 비판을 받는 등 홍역을 치렀다.
기업식 경영에 대한 교수들의 반발도 끊이지 않는다. 성균관대는 2010년 밝힌 ‘비전 2020’에서 문과대·사회과학부·경제학부·자연과학부 등을 문리과대학으로 통합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교수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있다. 문과대 교수들은 대자보를 통해 “비전 2020은 대학의 본질을 훼손하며 학문융합의 기반을 붕괴시킨다”고 반박했다.
중앙대는 두산 인수 직후 학과 구조조정을 놓고 인문계열 교수들과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9월 교수 210명이 박 이사장의 대학 운영에 반발하고 나섰다. 교수들은 “일방적 정책 추진을 멈추고 교수들에게 사과하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학 본부에 전달했다. 송수영 교수협 회장은 당시 “대학이 합리적 설명없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하고 있다”며 박 이사장과 두산에 불만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