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새 정부 중국 배터리·전기차 겨냥 환경규제 강화, 현대차와 K배터리 유럽 경쟁에 변수 

▲ 헝가리 데브레첸 시민들이 7일 열린 중국 셈코프 배터리 공장 반대 시위에 참석해 연설을 듣고 있다. 피켓에는 "헝가리에 더 이상의 배터리 공장은 필요 없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헝가리에 새로 들어선 정부가 환경오염 기업에 세금을 인상하고 그동안 지원했던 세금 감면 혜택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이 BYD와 CATL 등 중국 기업의 현지 공장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중국 전기차 기업 BYD와 배터리 기업 CATL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헝가리를 전초 기지로 삼았다. 다만 현지 정부 정책의 변화로 사업 차질을 빚으면 헝가리에서 이미 사업을 해오던 현대자동차와 삼성SDI 및 SK온 등 한국 기업에 반사 이익이 돌아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 헝가리 새 정부, 중국 배터리·전기차 공장 정조준

20일 블룸버그와 CNBC 등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5월8일에 출범한 헝가리의 페테르 마자르 정부는 유럽연합(EU) 최고 수준의 환경규제와 오염기업 과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페테르 마자르 신임 총리는 지난 17일 연 기자회견에서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대기 오염 유발 기업의 세금을 두 배로 인상하겠고 밝혔다.

전임 정부에서 도입했던 다국적 기업의 세금 감면 혜택도 철회할 계획을 세웠다. 마자르 정부는 이러한 내용을 이날 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12일 총선에서 환경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마자르 총리의 티서당이 압승(199석 중 138석 획득)을 거두며 이번 정책을 실제 추진하게 됐다.

헝가리의 전임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끌던 정권은 2010년에 집권한 뒤 환경부를 폐쇄하고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혜택을 제공하고 환경오염을 눈감아 줬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상황이 완전히 변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정책 변화가 사실상 중국 CATL와 BYD를 겨냥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두 기업 모두 헝가리에 대규모 공장을 지어 생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BYD와 CATL은 각각 헝가리 세게드와 데브레첸에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CNBC에 따르면 BYD는 올해 3분기에 헝가리 공장에서 전기차 조립을 시작한다. 해당 공장은 단계적으로 증설해 최대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75억 유로(약 12조7천억 원)를 들인 연산 100GWh 규모의 CATL 배터리 공장도 올해 6월 기준 공사를 마치고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다비드 비테지 헝가리 교통부 장관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이라고 예외는 없다”며 환경법 위반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임을 예고했다.
 
헝가리 새 정부 중국 배터리·전기차 겨냥 환경규제 강화, 현대차와 K배터리 유럽 경쟁에 변수 

▲ BYD와 CATL을 비롯한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이 헝가리에 대규모로 투자해 생산 설비를 세우고 있다. <그래픽 챗GPT로 제작> 

◆ 중국의 유럽 진출 전초기지였던 헝가리, BYD와 CATL 투자전략 흔들리나

BYD와 CATL 등 중국 기업은 내수 시장의 공급 과잉과 전기차 관세를 피해 유럽 현지에 생산 거점을 적극 구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헝가리의 전임 오르반 정부는 보조금과 규제 완화 등 정책을 적극 펼치며 중국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오르반 정부가 러시아와 중국 등과 정치적 관계를 강화했다는 점도 중국 전기차 관련 기업의 진출을 촉진했던 요소로 꼽혔다. 

이러한 정책에 중국 전기차 관련 기업은 적극 호응했다. 

독일 씽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와 조사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의 유럽 직접투자(FDI) 가운데 30% 이상인 31억 유로(약 4조6천억 원)가 헝가리에 투자됐다. 

이는 같은 해 프랑스와 독일 및 영국 세 국가에 중국이 집행한 투자액을 웃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은 유럽 현지에 거점을 꾸리고 판매를 늘리거나 고객사를 유치했다. CATL이 헝가리 공장에서 제조할 배터리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및 폴크스바겐 등 독일 전기차에 공급된다. 

그러나 마자르 정부가 들어서고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국 기업의 이러한 투자 전략이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실제로 라스로 파프 헝가리 데브레첸 시장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중국 배터리 부품 제조사인 셈코프의 데브레첸 공장 운영을 중단하고 이전할 것을 촉구했다. 

해당 공장은 인근 우물에서 알루미늄이 검출된 이후 지난달 말 생산 허가가 중단됐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소재 투자 자문가는 블룸버그를 통해 “중국 고객들은 셈코프의 사례 이후 헝가리 투자 위험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새 정부 중국 배터리·전기차 겨냥 환경규제 강화, 현대차와 K배터리 유럽 경쟁에 변수 

▲ 헝가리 데브레첸에 위치한 중국 CATL의 배터리 공장 앞에 펜스가 쳐져 있다. <타르카니 졸트 헝가리 티서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사진 갈무리>

◆ 한국 배터리와 현대차도 변수 만났지만, 중국 확장 둔화는 기회

한국 배터리 기업인 삼성SDI와 SK온도 각각 헝가리에 생산 공장을 운영해 현지 정부의 환경 규제의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SDI는 2018년부터 헝가리 괴드에서 연산 30GWh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 가운데 3961억 원을 투자해 헝가리 공장 생산 능력을 두 배로 증설하고 있다. 

SK온 또한 2018년 헝가리에 진출해 이반차와 코마롬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운영중이다. 이반차와 코마롬 공장의 합산 생산 능력은 연간 47.5GWh다. 

다만 한국 배터리 기업은 CATL과 달리 이전부터 공장을 운영해 상대적으로 새 정부의 정책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헝가리 현지매체 텔렉스에 따르면 삼성SDI 헝가리 법인은 지난 5월29일 시민단체(Göd-ÉRT)와 공청회를 열고 공장의 환경오염 정보를 지역 주민과 공유했다. 

이후 삼성SDI는 소음 측정 결과도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직접 게재했다. 삼성SDI가 공개한 측정 수치는 정상 범위에 들어가 있다. 

국내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은 헝가리 새 정부 들어 유럭 정치 인사나 현지 언론 및 지역 사회와 적극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중국 BYD의 유럽 전기차 생산 확대 속도가 환경 규제로 늦어질 경우 현지 시장에서 경쟁 압박을 일부 덜 수 있다. 

헝가리 통신사 MTI에 따르면 헝가리 경찰 당국은 지난 6월17일 성명을 내고 BYD가 세게드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 유독성 토양을 외부에 무단 반출해 환경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스텔라 리 BYD 부사장은 지난 6월19일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통해 해당 의혹을 부인했지만 공장 문을 열기 전부터 조사를 받는 셈이다. 

헝가리 새 정부가 사실상 중국 CATL과 BYD를 상대로 환경규제를 강화하며 칼을 빼든 상황이 삼성SDI와 SK온 및 현대차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부다페스트 코르비누스 대학의 아그네스 슈노마르는 국제학연구소 소장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헝가리를 발판 삼아 유럽에 진출하려던 중국 기업은 이것이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