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사진)이 다섯 번째 사내이사 임기를 맞으며 바이오 사업의 성공적 안착을 끝까지 책임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리온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한층 더 장기화되는 것인데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 부회장은 오너3세인 담서원 경영전략본부장 부사장이 경영권을 승계 받기 전 바이오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한편 해외 사업에서도 성과를 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일 오리온에 따르면 26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허인철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의결된다.
이번 연임은 단순히 안정적 경영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리온이 현재 중대한 전략적 전환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리온 그룹은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 사업을 키우는 한편 해외 중심 식품 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허 부회장이 이 모든 과제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이번 재선임에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리온은 2024년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지분 27.73%를 5485억 원에 인수하며 바이오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리가켐바이오는 표적 항암치료제인 항체약물결합체(ADC) 분야에 집중하는 신약개발 기업이다.
당시 허 부회장은 바이오 사업이 단기 실적용이 아닌 장기 전략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미래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부가가치가 높은 바이오 사업을 선택했다”며 “시간이 지난다면 오리온의 가치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이 뛰어든 바이오는 오랜 기간 투자가 필요한 사업으로 꼽힌다. 임상과 기술수출, 상업화까지 통상 수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사진)이 바이오를 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전략을 설계한 경영자가 중간에 교체될 경우 사업의 연속성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허 부회장의 이번 연임은 바이오 승부수를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한 선택으로 읽힌다.
특히 리가켐바이오의 성과는 담서원 부사장의 경영 평가와도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리가켐바이오 이사회에는 허 부회장과 함께 담 부사장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담 부사장이 바이오 전략 의사결정 구조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던 것으로 읽힌다.
담 부사장은 실제로 매주 대전 본사에서 열리는 임원 회의에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가켐바이오는 현재 대규모 비용 집행으로 실적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2025년 연결기준 매출 1416억 원, 영업손실 1065억 원을 기록했는데 2024년보다 매출은 12.4%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확대했다.
리가켐바이오는 손익 변동요인을 두고 개발 파이프라인 증가에 따른 전임상 및 임상시험 관련 비용과 신규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 구축 비용을 지목했다. 사실상 신약 개발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관문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리온이 바이오에 힘으려면 본업에서 탄탄한 실적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오리온을 갈펴보면 현재 실적 체력은 뒷받침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리온은 2025년 매출 3조3324억 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3조 원을 넘어섰다. 2024년보다 7.3%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도 5583억 원으로 2.7% 늘었다.
시장기대치(컨센서스)에 따르면 2026년에는 매출 3조6110억 원, 영업이익 6305억 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영업이익 6천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투자와 설비 확장이라는 대규모 자금 집행에도 불구하고 이익 체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더불어 오리온은 해외 법인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국내와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주요 법인에서 모두 매출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러시아법인이 2024년보다 47.2% 늘어난 매출 3394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오리온은 해외 생산기지 확대를 통해 중장기 성장 기반 또한 다지고 있다. 2025년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계획에 따르면 충북 진천 통합센터 구축에 4600억 원, 러시아 트베리공장 증축에 2400억 원, 베트남 하노이3공장 증설에 1300억 원 등 국내외 공장 준공에 2027년까지 모두 8300억 원을 투입한다.
이처럼 바이오와 식품 사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허 부회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모든 전략을 실행하는 동시에 담서원 부사장의 경영 수업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리온은 담 부사장의 아버지인 담철곤 회장이 2013년 11월 부인 이화경 부회장과 함께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뒤 실질적 그룹 경영을 허 부회장이 도맡아왔다. 2021년 오리온에 입사한 담 부사장은 줄곧 허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체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담 부사장은 2025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해 전략경영본부장을 맡으며 경영 전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다만 아직 30대 중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너3세 시대가 본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오리온 관계자 또한 “경영권 승계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