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 사상 최초 '기후소송' 상고심 수용, 화석연료 기업 피해 배상 책임에 배수진

▲ 미국 연방대법원이 처음으로 기후소송 상고를 받기로 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방대법원.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최고 법원이 기존 관례를 깨고 사상 처음으로 직접 기후소송을 맡기로 했다.

이에 화석연료 산업계는 물론이고 이들을 상대로 그동안 기후소송을 제기해온 미국 지방 정부도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어느 쪽이 승리하냐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에 이어진 기후소송들의 결과를 놓고 파장이 커질 수 있다.

23일(현지시각) 주요 외신 보도와 미국 지방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미국 연방대법원이 사상 최초로 기후소송 상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에 상고를 받기로 한 소송은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 카운티와 볼더시가 제기한 기후소송이다. 볼더 카운티와 볼더시는 미국 엑손모빌, 캐나다 선코어에너지 등 화석연료 기업들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일으켰고 이에 시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에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볼더 카운티와 볼더시의 손을 들어줬으나 엑손모빌과 선코어에너지 등은 이에 불복하고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연방대법원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상고를 몇 차례나 받았으나 모두 기각했다. 절차상 주 법원에서 발생한 소송은 주 차원에서 결론짓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석연료 기업들은 기후소송에서 요구되는 바가 글로벌 기후대응과 맞닿아 있는 만큼 이는 연방법이나 연방정부 정책에서 다뤄져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커티스 스미스 엑소모빌 대변인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우리가 제출한 서류에서 분명히 밝혔듯이 기후 정책은 파편화된 주 법원 소송을 통해 결정돼서는 안된다"며 "우리는 법원에서 이를 명확히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석연료 기업들이 이같은 요구를 하는 이유는 연방법원으로 기후소송을 이관하게 되면 승소할 가능성이 주 법원과 비교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와 연방법원들은 화석연료 기업들에 친화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이번 볼더시측 변호를 맡은 리처드 헤르츠 지구인권협회 수석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지역 주민들에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며 "주법이 주 내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규정할 수 없다는 엑손모빌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연방대법원이 입장을 바꿔 상고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으로 여겨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연방대법원에 화석연료 기업들의 상고를 수용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연방대법원 사상 최초 '기후소송' 상고심 수용, 화석연료 기업 피해 배상 책임에 배수진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엑손모빌 주유소 간판. <연합뉴스>

미국 법무부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만약 이같은 소송들이 계속된다면 전국의 모든 지방 정부가 기후변화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전 세계 누구든 고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방대법원 상고심은 지방 정부와 화석연료 기업들의 다툼을 종결지을 최종전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주 법원들에는 기후소송 판결 권한이 없다고 판단하면 화석연료 기업들은 더 이상 기후피해에 법적 배상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반대로 주 법원들에 권한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 화석연료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하와이주, 뉴욕주, 버몬트주, 콜로라도주 등에서 나온 판결 결과만 놓고 봐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뉴욕주는 지난해 주 법원이 내린 기후피해 배상 책임 판결을 바탕으로 화석연료 기업들에 향후 25년간 매년 30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금을 징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750억 달러 규모 '기후 슈퍼펀드'를 조성해 기후적응 사업을 실시한다.

또 미국 최고 법원이 화석연료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하게 되면 글로벌 기후대응 차원에서도 큰 진전일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기후대응 재원은 자발적 차원에서 기여되는 자금을 통해 마련됐는데 앞으로는 법적 책임을 물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이번 상고심 과정에서 볼더 카운티와 볼더시 소송 외에도 미국 국내에서 제기된 다른 기후소송들의 상고도 병합해 심리를 진행한다.

공개된 일정에 따르면 변론이 시작되는 것은 올해 10월로 이를 고려하면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내년 상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볼더시의 또다른 변호사인 마르코 시몬스는 "이번 소송은 근본적인 법 원칙, 즉 자신이 초래한 피해에는 자신이 정당한 몫을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다"며 "연방법 어디에도 화석연료 산업이 자행한 기후변화에 관한 기만과 고의적 조작에 이 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