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기자 swaggy@businesspost.co.kr2023-08-2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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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의 건 등을 논의하기 위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장제원 위원장의 회의 진행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고위 임명직 인사 검증을 위해 국회 인사청문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청문 결과와 무관하게 임명을 강행하는 사례가 늘면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인사청문 제도 개선을 위해 다양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있지만 통과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이날까지 재송부하도록 요청했으나 이날 보고서가 채택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및 무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 부적격 보고서를 제출하며 "국민의힘이 약속한 일정을 어기고 보고서 채택 논의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보고서가 기한내 채택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25일 이 후보자를 임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에서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16건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가운데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 4명은 국회 인사청문회도 열리지 않고 임명이 이뤄졌다. 갈수록 요식화되는 인사청문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36건이지만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하는 1건의 법안을 제외하곤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가운데에는 인사청문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는 법안이 여럿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을 때 10일 이상 숙려기간을 보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후보자의 의도적 자료제출 지연을 방지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때 관련자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해 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는 내용을 포함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직후보자 비공개 사전 검증을 위한 ‘예비심사소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안을 내놨다. 인사청문회에서 흠집내기식 후보자 검증에 낭비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사전 검증 자료의 국회 제출에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공개 공직윤리청문회와 공개 공직역량청문회로 인사청문회 분리 실시하고 청문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인사청문회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정쟁을 지양하고 충분한 정책적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를 담았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청문회법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청문회 분리실시 및 예비심사소위 신설과 기간 연장 등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다만 국민알권리 충돌 부분과 임명지연 등에 따른 인사권 제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검토의견을 내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도 57건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용어 손질과 관련된 법안 1건 외 모든 법안은 회기종료로 폐기됐다. 국회가 두 번 바뀔 동안 사실상 인사청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인사청문회는 15대 국회에서 비선출 고위공직자의 능력과 자질 및 도덕성 검증하고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도입했다. 다만 제도가 처음 시행된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부터 정책검증보단 도덕적 검증에 치우치면서 맹탕 청문회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사청문 범위는 계속 확대돼 왔다. 현재 인사청문 대상은 대법원장·헌재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부터 국무위원 후보자, 국정원장, 검찰·경찰청장, 합동참모의장, 방통위원장에까지 이른다.
다만 국회는 모든 인사에 대한 인준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무위원이나 헌법재판관 등은 대통령이 행정수반과 국가원수 자격으로 인사권이 보장된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자체를 생략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일도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 4명을 포함해 역대 총 9명이 인사청문회 없이 임명됐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건수는 문재인 정부 33건, 박근혜 정부는 9건, 이명박 정부는 17건, 노무현 정부 3건 등이다. 윤석열 정부는 1년4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16건을 임명 강행해 앞으로 숫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현행법상 국회가 인사 동의안을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본회의 회부 및 처리까지 해야하는 등 인사검증 및 청문회를 하는 기간이 짧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반면 한국이 제도를 참고한 미국은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백악관 인사국 등에서 수 개월간 후보의 자질을 다방면으로 검증한다. 인사청문회를 담당하는 상원은 600여 명의 인사를 검증하지만 충분한 검증 및 숙의 과정으로 부실 검증 논란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 트럼프 행정부 당시 2018년 상원에서 열린 연방 대법원 대법관 후보자 브랫 캐버노(Brett Kavanaugh)의 인사청문회 모습이다. <시카고대학교>
또 미국 대통령은 후보자 선정과정에서 상임위원회 위원장, 의회지도자, 각 정당 지도자 등과 협의를 거치기 때문에 미국 건국(1776년) 이래 상원에서 인준이 거부된 사례는 27건에 불과했다. 인사 논란이 많았던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3건에 그쳤다.
한국은 민정수석실과 인사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민정수석실을 폐지해 법무부 직속 인사정보 관리단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하게 했지만 여전히 하향식 검증방식인 것은 변함없다.
입법조사처는 ‘국회 인사청문회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제도는 기간 부족 등으로 실효성을 갖기 어렵고 검증소위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사청문회 요식화 현상의 배경에는 제도뿐 아니라 정치 양극화와 후보 검증기준 강화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22년 한국행정연구원(KIPA) 조사포럼 제39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야 지지자 간 이념성향은 2008년 이후부터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양극화가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행정부와 입법부, 여당과 야당간 합의는 더 힘들어졌고 집토끼만 잡으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인사청문회도 후보자 비판·낙마를 목적으로 할 때가 많아 제도의 취지를 변질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인사청문회 후보자 역시 이에 맞서 ‘이 때만 넘기면 된다’식의 전략을 채택한다. 짧은 인사청문회 기간을 이용해 자료제출을 최대한 미루고 ‘개인정보 비동의’를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등 청문회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강화된 공직후보자 윤리 기준도 인사청문회의 요식화를 초래한 요소로 꼽힌다.
국민의 검증 기준이 높아져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사안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인사검증 눈높이에 부합하는 고위공직자를 찾는 일조차 어려워져 인사청문회 전 과정에서 고초를 겪게 됐다.
문재인 정부 때 '7대 비리 관련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을 도입했지만 기준을 모두 충족한 후보자는 총 124명 가운데 10명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인사청문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정치 구조와 지형은 한국과 다르기는 하지만 선진 민주주의로 분류되는 국가 가운데 호주, 뉴질랜드 등 인사청문회 자체를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동관 후보자 임명에 이어 방문규 산업자원부 장관 후보자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등의 인사청문 절차를 앞두고 있다. 또 총선을 앞두고 추가적 내각 교체와 인사가 예고돼 인사청문제도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낸 홍영표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인사청문회 법안이 논의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현재 여당과 야당간에 논의가 진전되지 않아 여전히 소위에 계류중이다"고 말했다.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