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최초의 LNG 운반선인 센슈마루호가 운항하고 있다. 모스 형태 화물창을 갖춘 이 선박은 36년 동안 항해한 뒤 2020년 12월에 퇴역했다. <미쓰이 O.S.K. 라인즈>
LNG 운반선은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 수요 증가도 예상돼 일본으로서는 도움이 절실하다. 일본에 한국에 어떤 협력 카드를 내밀지 주목된다.
◆ 세계 시장 장악한 한국 LNG선, 일본은 기술 협력까지 검토
25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일본 조선업계는 자국산 LNG 운반선을 다시 건조해 운항하겠다는 목표에서 한국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35년까지 LNG선 연간 3~5척 생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로드맵을 지난 24일에 발표하며 산업 재건에 착수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이마바리조선과 가와사키중공업 및 나무라조선 등 일본 조선 3사가 2035년부터 일본에서 LNG 운반선을 공동으로 건조하려 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일본은 과거 LNG선 강국이었지만 현재 시장 표준인 멤브레인 화물창 대신 구형 모스 방식에 머물면서 시장 경쟁력을 상실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이 2019년에 각각 LNG 운반선을 한 척씩 인도한 이후 올해까지 7년 동안 LNG 운반선 건조 시장에서 공백기가 이어지고 있다.
구형 탱크인 모스형은 1990년대 전후까지는 LNG 운반선 다수가 채택했지만 용적 효율이 낮다는 약점을 지녔다.
반면 박스 형태의 멤브레인은 선체 벽을 구조적 지지대로 삼고 그 안쪽에 금속막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공간 활용에 장점이 있다. 대신 기술 정밀도가 높아 건조가 어렵다.
현재 글로벌 LNG선 시장은 멤브레인형에 강점을 보이는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 및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사가 사실상 주도한다.
해운 전문매체 마리타임이그제큐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조선사의 세계 LNG 운반선 시장 합산 점유율은 약 70%로 나타났다. 이에 일본이 LNG 운반선을 다시 만들기 위해 한국에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 일본의 조선 생산 능력 비중 추정치. <그래픽 제미나이로 제작>
◆ 기술 수입국에서 공급국으로, 뒤바뀐 한일 조선업 위상
과거 한국 조선사는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왔다. 현대중공업이 1972년 12월에 일본 조선사인 가와사키중공업과 기술 협약을 맺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때 일본은 LNG 운반선에서 모스 방식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장악했었다.
그러나 한국이 멤브레인 방식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LNG선 건조 과정에서 축적한 설계·용접·생산관리 역량까지 쌓으면서 고부가가치 선종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일본이 LNG선 생산 역량을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닛케이아시아가 입수한 일본 정부의 로드맵에 따르면 일본 조선업계는 멤브레인 화물창에 설계 및 시공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에서 LNG선 설계와 건조 기술이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어 실제 기술 이전에는 정부 승인 등 장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협업 가능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LNG선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일 사이에 조선업의 위상 변화가 다시 한번 뚜렷하게 드러나는 모양새다.
▲ 한화오션이 거제 사업장에서 건조하는 멤브레인형 LNG 운반선에 접이식 돛인 윈드 챌린저 시스템을 탑재한 모습. <한화오션>
◆ LNG선 수요 급증에 발등 불 떨어진 일본, 한국에 유리한 카드 제시할까
세계 LNG운반선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로이터는 해운전문 분석기관인 드류리 자료를 인용해 올해 1분기에 신규 발주된 LNG 운반선이 모두 35척으로 지난해 1년 발주량인 37척에 육박했다고 전했다.
미국 LNG 수출 확대와 아시아 수입국의 공급선 다변화로 장거리 운송 비중이 커지면서 LNG선 수요는 2030년대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연히 일본으로서는 한국에 대가를 제공하고서라도 자국에서 명맥이 끊긴 LNG선 건조 기술을 배울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일단 일본은 기술 제공 대가로 한국 조선업의 약점인 노동력 부족을 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칠 공산이 크다.
닛케이아시아는 “노동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조선사는 중국 업체의 기술 발전에 우려한다”며 “일본과의 협력은 한국 조선업계에 유리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일본도 인력 부족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며 선을 그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4월8일에 펴낸 ‘일본 조선업 평가 2026’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조선업이 고용한 노동자 규모는 2016년 9만957명에서 2023년 7만300명으로 22.7% 감소했다.
중국의 추격에 대비해서 협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일본이 내세울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세계 LNG 운반선 시장에서 한국에 이은 2위인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조선소는 올해 들어 4월까지 최소 13척의 LNG선을 수주했다. 이들은 평균 선가보다 약 4~8% 낮은 가격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일본이 어떤 교환 카드를 제공해서 한국에 LNG선 협업을 요청할지 여부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 호세이대학교의 카토 히로유키 교수는 23일 TV도쿄의 유튜브 프로그램 닛케이뉴스넥스트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이 기술 협력을 한 적은 있지만 시장을 공유하기 위한 협력은 아니었다”며 “기술력이 강한 일본 기업은 한국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공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