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26년 4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왕세자와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안보 보장에 한계를 드러냈는데 중국은 에너지 전환 지원을 내세워 원유 공급처인 중동 내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 미국 안보 우산 흔들린 중동, 중국으로 에너지 협력 기울어
23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는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 사이에서 미국이 안보를 보장해 준다는 신뢰가 옅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동 국가들이 입을 피해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고 이란과 전쟁을 시작한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의 마크 린치 국제관계학 교수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를 통해 “걸프만 국가 지도자들이 미국에 느낀 배신감은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이란을 공습하자 이란이 이에 대응해 미군 기지가 있는 인근 중동 국가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시설을 타격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 공격을 전혀 방어하지 못해 중동 국가들로서는 미국을 향한 실망감과 함께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 중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과 에너지 분야 협력을 한층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지난 11일에는 중국 국가에너지국의 송홍쿤 부국장이 베이징에서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의 모하메드 알 카흐타니 사장과 만나 에너지 안보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중동의 다른 주요 국가인 아랍에미리트도 중국과 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 학술 네트워크인 동아시아포럼(EAF)에 따르면 UAE의 국영 재생에너지 기업인 마스다르는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지에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을 추진하면서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입지로서 역할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월 한달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국으로 선적한 원유는 2천만 배럴로 집계됐다.
특히 이란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중국에 매달 5천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의 봉쇄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이 사실상 끊어졌다.
그런데 이란 전쟁을 계기로 중국이 중동국가와 원유뿐 아니라 재생에너지로도 협력 구조가 확대된 모양새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아시아태평양대학원의 아오야마 루미 국제관계학 교수 발언을 인용해 “미국이 벌인 이란 전쟁으로 중동에서 중국의 에너지 분야 영향력이 강화됐다”고 보도했다.
▲ 중동 각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과 목표치. <그래픽 제미나이로 제작>
◆ 중동은 중국 태양광 기술 원하고 중국은 원유 필요, 에너지 협력 ‘윈윈 구조’ 형성
중국의 대 중동 협업은 원유 확보를 넘어 재생에너지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띤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는 이달 6일 아랍 매체 아타카를 인용해 ”이라크의 중국산 태양광 패널 수입 규모는 2024년 0.43기가와트(GW)에서 지난해 1.89GW로 4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UAE와 사우디 및 이집트와 알제리 등은 이라크보다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더 많이 수입한다.
석유가 풍부한 중동은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가 불필요할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란 전쟁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석유 수요를 줄이면서 중동 국가로서는 원유를 수출할 시장이 위축될 상황에 놓였고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태양 복사량도 태양광 발전을 육성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으로 꼽힌다.
카타르 씽크탱크인 국제중동위원회에 따르면 중동 지역의 일평균 태양광 복사량은 1㎡당 최대 6.5킬로와트시(㎾h)에 달한다. 이는 세계 평균치인 4㎾h보다 50%나 높은 수준이다.
이에 중동에서 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원을 다변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조사업체 앰버가 지난 4월21일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국가에서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멘(11%)과 요르단(17%) 및 레바논(30%)의 사례가 지목돼 이들 국가가 중국과 협업을 넓힐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이다.
중국은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세계 공급망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EAF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능력의 80~90%, 풍력터빈 시장의 약 78%를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와 핵심 광물 가공 분야에서도 독보적 공급망을 구축했다.
걸프 산유국이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투자를 확대해 중국 기술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아랍 전통 복장에 형광색 안전 조끼를 착용한 사람이 2023년 11월2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외곽에 있는 알 아프라 태양광 발전소를 걸어다니고 있다. 중국기계공업집단이 건설했다. <연합뉴스>
애초 미국이 지난 2월28일에 시작한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중국의 원유 수입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주요 해상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중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안보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전쟁이 터지기 전에 일일 540만 배럴의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운송했다. 그러나 이란 전쟁 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운송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럼에도 중국은 비축해 둔 원유를 활용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해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수급에서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았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더 크게 확보한다면 이란 전쟁이 중국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중국에게도 중동과 원유를 통한 에너지 협력은 중요하다. 원유는 연료뿐 아니라 플라스틱을 비롯한 산업 소재의 원료로도 쓰여 안정적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란 전쟁을 계기로 석유가 나는 중동까지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기화'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중국의 산업 지배력이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컨설팅업체 트리비움차이나의 코시모 리스 애널리스트는 CNN을 통해 “중동지역에서 전기화로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며 “전 세계 탈탄소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