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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이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등 방위산업과 화학 부문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다고 발표한 2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에서 삼성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뉴시스> |
“하루아침에 ‘삼성맨’에서 ‘한화맨’이 돼 버렸다.”
삼성테크윈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의 ‘빅딜’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였다.
26일 삼성그룹이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매각하면서 소속이 바뀌는 임직원은 7천 명이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갑작스런 빅딜 발표에 크게 술렁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해 하고 있다.
삼성은 직원들에게 확실한 고용승계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직원들이 한화로 옮기는 데 반발할 수도 있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화도 새로 편입되는 삼성 계열사들과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또 삼성 출신 직원과 한화 직원 사이의 연봉격차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도 해결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한화맨’ 되는 삼성 직원들 ‘당혹’과 ‘기대’ 엇갈려
삼성이 방위산업과 석유화학사업 부문을 한화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자리를 옮기게 된 임직원은 7500여 명이다.
삼성테크윈이 47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삼성탈레스가 1천여 명, 삼성종합화학 300여 명, 삼성토탈이 1500여 명이다. 이는 국내 근무 인력만 계산한 것으로 해외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인원이 더 늘어난다.
이날 매각 소식을 들은 해당 계열사 임직원들은 대부분 크게 당황했다. 일부 임직원들은 전날 입소문을 통해 미리 듣긴 했지만 매각이 발표되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삼성테크윈 등 각 계열사 임직원들은 한화로 이동하는 것에 대체로 불안감을 나타냈다. 삼성과 한화의 기업문화가 서로 달라 어떻게 적응해야 할 지 걱정되는 데다 그동안 누려온 ‘삼성맨’ 프리미엄도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삼성과 한화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그룹이지만 재계 순위는 1위와 9위로 큰 차이가 있다”며 “삼성에서 버려졌다는 느낌을 아무래도 지우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몇몇 직원들은 한화의 핵심사업을 담당하게 돼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에 있을 때 삼성전자 외에 모두 ‘삼성후자’로 불리는 등 비주력 계열사로 분류됐다”며 “반면 한화에서 주력기업이 될 수 있어 한화로 넘어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삼성, 직원들에게 어떤 보상안 내놓나
삼성그룹 관계자는 “한화그룹과 사전에 고용과 관련된 부분을 합의했다”며 “한화가 현재 인력을 100% 고용승계하기로 했기 때문에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테크윈 등 매각되는 계열사의 경영진은 임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당 내용을 설명하며 분위기를 다잡는 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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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김철교 삼성테크윈 사장은 이날 사내담화를 통해 “회사 주력사업부문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향후 사업도 차질없이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3개 계열사 대표들도 임직원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 비슷한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불안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승계를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며 “퇴사를 결정하거나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는 등 우수인력이 유출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삼성이 임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용보장 외에 전환배치 선택권을 부여하거나 위로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한 삼성코닝정밀소재 지분을 미국 코닝사에 전량 매각해 삼성코닝정밀소재를 그룹에서 떼어냈을 때 보상안을 내놨다.
당시 삼성은 임직원들로부터 전환배치 신청을 받고 이중 일부를 전자부문 등 계열사 5곳에 배치했다. 코닝에 남는 직원들에게 일시금 4천만 원과 기본급 10개월 분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또 삼성테크윈이 올해 4월 반도체 부품 사업부를 엠디에스(MDS)라는 신설법인에 넘겼을 때도 6천만 원 수준의 위로금을 줬다.
삼성이 전환배치를 실시하는 것은 한화 입장에서 볼 때 우수한 인재를 빼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코닝 때와 달리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한화는 ‘삼성맨’을 품을 수 있을까
한화가 삼성의 4개 계열사를 손에 넣게 됐지만 물리적 결합뿐 아니라 화학적 결합까지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을 지도 주목된다.
한화는 “인수하는 기업의 고용을 그대로 승계하고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의 문화를 융합해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새로운 자양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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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한화는 이날 직원들에게 삼성에서 한화로 자리를 옮겨오는 직원들을 따뜻하게 환영하고 달라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존중과 배려를 부탁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성 출신 임직원들이 한화에 녹아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의리를 중시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평소 ‘신의’를 최고의 가치로 꼽으며 사훈을 ‘신용과 의리’로 정했다. 이번에 100% 고용승계 원칙에 합의한 것도 이러한 기업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삼성의 기업문화는 군대조직 같은 수직적 조직문화와 ‘성과에 보상있다’는 철저한 ‘성과주의’로 대표된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를 준비하면서 창의적 조직문화로 탈바꿈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조직문화가 삼성을 지배하고 있다.
국내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과 다른 한화의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를 결심하는 임직원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며 “한화는 핵심인력의 이탈을 막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게 삼성맨과 한화맨 사이의 연봉격차도 고민거리다.
지난해 삼성테크윈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7900만 원이다. 삼성토탈 직원은 평균 95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는 한화 계열사 직원들의 연봉에 비해 높다. 삼성테크윈을 인수한 한화의 평균연봉은 5400만 원이고 삼성토탈 지분을 매입한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의 연봉은 각각 6779만 원과 6945만 원이었다.
삼성에서 넘어온 직원들의 연봉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화 직원들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보여 결국 연봉을 비슷한 수준으로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 삼성 출신 직원들이 반발하며 회사를 떠날 수 있어 한화가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