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참여한 컨소시엄의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반발한 미국 웨스턴디지털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매각을 방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주요고객사로 영향력을 갖춘 애플이 SK하이닉스와 같은 편에서 웨스턴디지털을 상대로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2일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쓴잔을 들었다”며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이 애플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다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인수논의를 마무리단계까지 진행하고 계약체결식까지 준비하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협상 중단을 통보받았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매각계약 체결을 며칠 앞두고 인수경쟁자인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이 애플과 손을 잡았다고 밝히며 인수금액과 조건을 대폭 개선한 새 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베인캐피털 경영진은 9월 초 팀 쿡 애플 CEO를 직접 찾아가 컨소시엄 합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인수 참여도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 아닌 비교적 즉흥적인 결정이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들을 놓고 볼 때 웨스턴디지털이 예상치 못한 변화에 대응해 도시바 반도체사업 매각절차 중단을 요구하며 법적대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해석된다.
웨스턴디지털은 홈페이지에 공식성명을 내고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과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위반하며 불법적으로 매각을 강행하고 있다”며 “법적공세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밝혔다.
도시바가 반도체사업을 SK하이닉스와 애플, 베인캐피털과 씨게이트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매각할 경우 웨스턴디지털은 반도체사업에 다방면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글로벌 하드디스크 2위 업체로 기존의 서버와 PC 고객사기반을 통해 낸드플래시를 이용한 SSD 저장장치의 공급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1위 씨게이트가 3위 도시바와 반도체사업 인수를 계기로 협력하면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하드디스크시장은 상위 3개 업체가 100%의 점유율로 과점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와 이번 분쟁을 계기로 반도체 기술협력 등을 중단하게 될 경우 낸드플래시 경쟁력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웨스턴디지털이 그동안 도시바에 기술을 대부분 의존해 자체 연구개발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SK하이닉스 등 웨스턴디지털에 점유율이 뒤처졌던 기업들이 추격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영국 더레지스터는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인수에 참여한 씨게이트와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전방위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어 법적 대응이 유일한 대응책일 수밖에 없다고 파악했다.
하지만 이 방법마저도 SK하이닉스 참여 컨소시엄에 애플이 자리잡고 있어 쉽지 않다.
CNBC에 따르면 애플은 9월 초 도시바 인수전 참여를 결정한 뒤 웨스턴디지털이 계속 인수전에 개입하려 시도한다면 웨스턴디지털의 반도체 수급을 중단할 수 있다는 엄포를 했다.
애플은 아이폰 등 모바일기기와 컴퓨터, 서버에 모두 사용되는 낸드플래시의 대량 수요처로 웨스턴디지털 입장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고객사다. 이런 지위를 이용해 압박을 강화하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웨스턴디지털은 법정에서 도시바에 승리할 가능성에는 자신을 보였지만 이를 통해 협력사들과 관계가 나빠져 반도체사업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흐름대로라면 웨스턴디지털은 계속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중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어느 정도 보상을 요구하며 합의를 이끌어낼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고 웨스턴디지털이 낸드플래시 사업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 참여로 삼성전자와 웨스턴디지털 등 낸드플래시 상위업체의 양강구도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낸드플래시시장에서 비교적 입지가 약한 SK하이닉스가 애플을 지원군으로 삼아 인수전도 무사히 완주하고 상위업체들을 추격하기 위한 계기도 마련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더레지스터는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참여를 통해 낸드플래시 주요업체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며 “장기적으로는 도시바와 기술협력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