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와 반도체를 탑재한 완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판매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구글 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미국 정부가 그동안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생산 확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해온 가운데, 이번 관세 카드 역시 두 메모리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8일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반도체는 물론 반도체가 들어가는 노트북, 게임 콘솔, 데이터센터용 서버 등 완제품에도 관세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별 관세율과 쿼터를 설정하고, 주요 반도체 제조사별로 미국 내 생산 물량과 개별 관세를 연동해 적용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신규 관세는 일정 기간을 두고 순차 도입하는 방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다만 세부 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일부 품목을 대상으로 반도체 관세를 먼저 부과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H200'처럼 미국으로 수입됐다가 다른 나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에 한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당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내 제조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 및 그 파생 제품 수입에 대해 더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지난 5월 "(반도체 전면 관세 부과)는 적절한 시점에 이뤄질 것"이라면서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반도체 기업들에는 일정 규모의 수입을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반도체 관세 부과 검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설비투자에 대한 직접적 압박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반도체뿐만 아니라 완제품까지 관세 부과 대상으로 삼게 되면 전체적인 범위가 넓어지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미국 내 현지 투자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고율 관세라는 압박 카드까지 꺼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은 현재 데이터센터, 연구개발, 스타트업, 소비자용 등 광범위한 용도의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에 관세를 부과한다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건설 비용이 증가해 자연스럽게 증설 계획도 축소될 수 있다. 이는 세계 D램 메모리의 70%와 고대역폭메모리(HBM) 79%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에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2030년까지 예정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약 20%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 정부는 관세를 무기로 한국 메모리 기업의 미국 생산라인 구축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올해 1월 "메모리를 생산하려는 모든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올해 7월 마이크론이 미국 뉴욕주 클레이 타운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공장 콘크리트 타설 기념식에 참석해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며 "마이크론이 앞장서고 있으니 경쟁사들은 질투심을 느낄 것이고, 결국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HBM 패키징 공장 착공에 들어간 SK하이닉스는 메모리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나스닥 상장식 직후 외신 인터뷰에서 "적합한 입지와 조건이 갖춰진다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종환 교수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것은 반도체 설계에 역량이 집중돼있는 미국으로선 절실한 것"이라며 "중국이 반도체 생산라인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는 만큼,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발전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