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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빨라지는 분위기 속에 한국 정부와 기업에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이른바 '신남방 지역'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관세와 미·중 경쟁으로 동남아와 인도 전략적 중요성 부각
18일 닛케이아시아와 로이터 등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이 동시에 이어지며 글로벌 제조업 기업이 생산 거점을 중국에서 동남아와 인도 등으로 옮기고 있다.
닛케이아시아는 글로벌 기업이 생산 거점을 옮기는 배경으로 트럼프 정부 관세 정책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꼽았다.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란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기업이 베트남이나 인도 등 지역에 추가로 설비를 구축하는 개념을 말한다.
비용을 비롯한 현실 제약에 당장 중국의 설비를 모두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움직임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아시아태평양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는 640억 달러(96조 원)로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이를 놓고 나이트프랭크는 닛케이아시아에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이 동남아 물류와 산업 성장을 견인하는데 따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와 인도에 설비를 구축하는 기업의 업종은 반도체와 전자장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은 지난 16일 인도 타타일렉트로닉스와 협력해 현지에 반도체 장비 제조 공장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ASML은 네덜란드와 미국 정부의 합의에 따라 반도체 주요 시장인 중국으로 장비를 수출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애플과 구글 등 스마트폰 개발사도 각각 인도와 베트남에서 신제품 개발과 생산을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2025년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량을 2024년보다 53% 늘렸다”며 “대중 관세를 피하기 위해 주력 제품 가운데 4분의 1을 인도에서 생산한다”고 분석했다.
이렇듯 기업마다 지정학 갈등과 관세 등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을 대체할 생산 거점을 찾는 모양새다.
▲ 인도와 베트남 및 중국의 실질 GDP 성장률 그래프. <그래픽 출처 챗GPT >
◆ 한국 기업도 신남방 정책 발판으로 생산 거점 다변화
한국 정부가 최근 인도와 베트남과 잇달아 정상 외교활동을 펼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4월19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인도와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2017년에 추진했던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신남방 정책은 시장 확대와 외교 다변화 성격에 가까웠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공급망 안정과 지정학 리스크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정상외교 활동을 펼쳤다.
한국은 인도와 조선과 방산 및 인공지능(AI), 금융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한다. 베트남과는 희토류와 에너지 및 반도체 공급망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및 LG전자 등 한국의 주요 기업은 이미 각각 베트남과 인도에 스마트폰과 자동차나 가전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정상 외교를 계기로 삼아 협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포스코와 HD현대는 이번 순방을 계기로 인도 현지 업체와 협업해 제철소와 조선소를 짓는 방안을 구체화했다.
정부의 신남방 정책 기조에 발맞춰 기업들도 동남아와 인도에 생산 거점을 구축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 마스크와 작업모를 착용한 노동자가 2020년 12월30일 베트남 흥옌성에 위치한 의류 수출 공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소재 조달 부문에서도 중국을 일부 대체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인도는 반도체와 재생에너지 등 첨단 제조업에 핵심 소재인 희토류 매장량이 690만 톤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인도네시아가 배터리를 비롯한 첨단 산업에 핵심 소재인 니켈 공급량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중국이 희토류를 비롯한 제조업 핵심 소재 장악력에 힘입어 수출을 통제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한국으로선 대체 공급처가 필요한데 동남아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배터리 소재업체 포스코퓨처엠은 올해 3월5일 베트남 타이응웬성에 배터리 소재로 쓸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 거점을 구축할 계획을 내놨다.
인도와 베트남 경제가 공급망 재편 수혜와 내수 성장에 힘입어 고성장을 지속한다는 점으로 볼 때 이 지역은 한국에게 소비 시장으로까지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의 지난해 10~12월 경제성장률은 7.8%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을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2021년-2025년 국가별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보면 인도와 베트남은 상승세인 반면 중국은 5%대에서 횡보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 지난 14일~15일에 진행한 미·중 정상회담 역시 대만 문제 등에 의견차를 노출하며 양국 갈등 관계가 해소되기 보다는 관리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많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무역과 인공지능 및 중동과 대만 문제 등 양국에 갈등을 부르는 수많은 문제에 뚜렷한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고 바라봤다.
결국 미·중 갈등과 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 리스크 장기화 속에서 생산 거점과 물류체계 다변화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 한국 기업도 대비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공급망 재편 흐름이 단순한 제조업 이전을 넘어 희토류와 반도체나 인공지능과 에너지 등 전략산업 중심으로 확대되는 만큼 한국 기업도 신남방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양쪽 모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