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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2일 직권남용 등 혐의로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를 받기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미르와 K스포츠에 돈을 댄 기업들의 출연과정 등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사회공헌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자금을 출연했다고 주장해왔으나 출연과정과 성격을 놓고 갈수록 의혹이 커지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와 K스포츠 설립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모금 대상 기업들과 접촉했다”고 밝힌 것으로 2일 전해졌다.
안 전 수석은 미르와 K스포츠 설립 및 기금모금 과정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안 전 수석은 그동안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와 함께 전경련을 통해 각 기업으로부터 재단설립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심리적 부담이 가중되자 박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책임전가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재단설립과 자금모금이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도 불가피해진다.
안 전 수석은 검찰에 출두하며 “잘못된 부분은 모두 책임지겠다”면서도 "검찰에서 모두 사실대로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한 부분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내놓은 자금은 800억 원 가까이에 이른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사회공헌 차원에서 자금을 출연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최근 롯데그룹 고위임원 등으로부터 모금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의 혐의도 현재 뇌물수수죄가 아닌 직권남용이 적용됐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란 의미다. 안 전 수석이 주장한대로 대통령의 직접적 지시까지 있었다면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어서 사실상 기업들이 지금까지 거짓주장을 해온 셈이다.
현재 수사가 초기단계인 만큼 기금모금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 드러날 경우 검찰이 직권남용을 넘어 뇌물죄를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최씨와 안 전 수석에게 ‘제3자 뇌물제공’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일해재단을 만들어 기업 돈을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포괄적 뇌물수수’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경우 기업들에게도 ‘제3자 뇌물교부죄’나 뇌물공여죄가 적용될 수 있다.
법조계는 뇌물죄와 직권남용죄의 적용을 가르는 핵심이 대가성 여부에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제공하거나 출연하도록 하는 것에 대가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검찰수사도 이를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관측된다.
두 재단 출연금 모금과 별개로 최씨가 별도의 기부를 받았거나 받으려 했던 의혹에 휩싸인 기업들의 경우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은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말구입비 등으로 35억 원을 직접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자금이 최씨의 계좌로 흘러들어갔는지를 들여다보기 위해 자금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와 관련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에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으나 "승마 국가 대표였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를 지원하긴 했지만 승마협회장(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회사로서 이뤄진 후원"이라고 말을 바꿨다.
삼성그룹이 두 재단에 대기업 54개사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 원을 내놨다. 그런데도 정씨에게 별도의 후원금을 또 내놓은 것이다. 삼성그룹은 정씨의 독일 현지 승마장을 구입해줬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돌연 승마협회장 회사를 맡고 정씨 개인 후원까지 맡은 배경을 놓고 의혹이 커지고 있다.
롯데그룹이 5월 6개 계열사를 통해 70억 원을 모아 K스포츠재단에 보냈다가 돌려받은 점도 의구심을 낳고 있다. 돌려받은 시점이 6월초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SK그룹 역시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의 발언을 통해 80억 원을 직접 요구받았던 사실이 알려졌다.
최씨가 약점이 있는 기업들을 노려 직접 접근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각에서 나온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롯데그룹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었고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재계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풀려났지만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수감돼 있는 상황이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두 재단 출연이나 후원에 대해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해왔으나 검찰수사 과정에서 강압에 의한 기부를 넘어 대가성이 드러날 경우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최근 낸 의견서에서 출연 기업들이 당시 정부에 총수에 대한 사면·복권 등을 요구해왔다며 이는 부정한 청탁에 해당해 뇌물공여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