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기자 swaggy@businesspost.co.kr2024-05-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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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기준 통계지리정보서비스에서 2062년도 인구피라미드 예상도. <통계지리정보서비스>
[비즈니스포스트] 국회 국민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가 소득보장비율을 늘리는 개편방안을 채택한 것을 놓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새로 태어날 세대들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해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소득보장비율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22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야권에서는 공론화위의 방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국민연금 개편에 속도를 내 21대 국회 임기 안에 처리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정치권 안팎에 따르면 국회 국민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더 내고 더 받는' 연금의 소득보장안을 놓고 ‘미래세대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반대 의견이 제기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진 기자화견에서 “공론화위는 다수 전문가가 선호한 재정안정 방안은 무력화시키고 소득대체율을 더 올리자는 위원 중심으로 자문단을 구성했다. 공론화위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근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아닌 기만적 조정"이라며 "연금 구조개혁은 기성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짐을 미래세대에 전가해선 안 된다는 상식과 공정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연금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공론화위원회 안에 따르면 지금 태어난 친구들은 40살이 되면 본인 소득의 43%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며 “지금 태어난 아가에게 ‘너 40살 됐을 때 소득의 43% 낼래’라고 물으면 싫다고 하지 않겠나. 10세 이하 국민들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아래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4월22일 500일 시민대표단 가운데 56.0%가 1안인 '소득보장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1안은 보험료를 기존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소득 대비 노후연금 비율)도 40%에서 50%로 올리자는 것이다.
2안인 '재정안정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 즉 보험료율을 올리는 대신 기존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는 안을 선택한 비율은 42.6%에 머물렀다. 다만 이런 공론화위의 의견은 ‘결정’이 아니라 국회를 향한 ‘권고’ 사항이다.
공론화위에서 내놓은 의견을 반대하는 측의 논리로 우선 그동안 이어져왔던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던 개편 기조와 반대된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1안으로는 국민연금 고갈시기를 기존 2055년에서 2061년으로 고작 7년만 늦출 뿐이어서 ‘개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미래세대들은 2062년부터 소득의 35.6%를 보험료로 납부해야 하는데 한국의 낮아진 경제성장률과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미뤄봤을 때 감당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4월23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공론화 결과, 연금개혁에 대한 연금행동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와 소득대체율 50% 보장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세대들이 소득의 35.6%를 연금비용으로 내기 위해선 ‘유전 발견’ ‘기술 혁명’ 등 새로운 경제적 동력이 발생해 GDP 성장률이 폭발적으로 올라야 하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쉽지 않다.
더구나 건강보험의 적자폭도 매년 커지고 있어 건강보험료 역시 큰 폭의 상승이 예고되고 있어 미래세대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1안이 현실성 있으려면 한국 인구구조가 90년대처럼 피라미드 형태가 유지돼야 하지만 이미 역피라미드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2023년 4분기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5로 도시 국가와 전쟁 중인 국가를 제외하면 전세계에서 가장 낮다. 1안대로라면 100만 명이 태어나던 시기에 지던 것과 같은 부담을 20만 명이 태어나는 시기의 사람들이 메워야하는 셈이다.
구독자 319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경제유튜버 슈카(본명 전석재)는 4월30일 ‘더 내고 더 받기’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서 “미래세대에 35% 내라고 할 게 아니라 지금 부유한 세대부터 20~35% 먼저 내야한다. 당장 내일부터”라며 이번 개편안에서는 ‘지속가능성’ 이야기가 빠졌다고 비판했다.
이런 견해와 달리 민주당에서는 공론화위 의견에 대해 찬성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재정건전화보다는 노후생활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주 민주당 연금특위 간사는 1일 연금개혁 공론화 결과 세부 분석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여당의 반대 기류를 놓고 “정부가 공론조사를 주도하더니 막상 결과가 애초 기대와 다르자 시비를 건다”고 꼬집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연금개혁 목표는 노후생활 보장”이라며 “시민 숙의 과정에서 보면 초기보다 나중에 ‘소득보장 강화안’에 대한 지지가 높아졌다는 점은 노후빈곤이 높은 이 나라에서 국가와 개인이 어떻게 노후를 보장해야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진 것이다”고 말했다.
공론화의 상세 결과를 설명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론조사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애초 재정안정안을 지지했던 시민대표들이 보장강화안으로 점차 기울었다"며 “정보 비대칭성이 극복될 경우, 시민들의 선택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보여준 명백한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슈카월드의 슈카가 4월30일 자신의 유튜브이 '더 내고 더 받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슈카월드 유튜브 갈무리>
이처럼 여야의 견해 차이가 커 국민연금 개편 방안이 5월 21대 국회 임기 안에 마련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담긴 △보험료율 차등인상 △확정기여형 방식 △자동안정화 장치 등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부터 당장 실현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본구조 개편을 이루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보험료 차등인상은 세대 간 형평성과 공정성을 고려해 연령그룹에 따라 차등적으로 인상해 나간다는 내용이나 적은 금액을 오랜 기간 낸 기성세대들이 높은 금액을 ‘지금’ 내야 해서 반대 목소리가 크다.
확정 기여방식은 보험료 수준을 미리 확정하고 기여한 만큼 연금액을 받는 방식이지만 저소득 노인들의 보험료가 내려가는 위험이 있어 노인빈곤 문제에 대한 별도의 보조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안전화 장치는 출산율, 기대수명 증가 속도 등 연금 재정에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에 맞춰 연금 지급액과 보험료율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인데 세대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이런 당면 과제 논의 조차 사그러든 상황에서 구조 개편안을 마련하는 일이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의지만으로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4월2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가진 영수회담에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입법을 마무리 짓기는 어려우니 22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지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가급적 21대 국회 내에서 개편 방안을 확정지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해 정부에서는 바로 진화에 나섰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국회에 나와 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연금개혁은 국회 연금특위에서 논의해서 결정할 사안으로 정부도 적극 협조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